“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유신 때에나 가능했던 일을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방송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MBC가 오래전에 종편 채널의 하나 정도로 전락한 상항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KBS의 상황이 중요하다. 지난해 길환영 사장이 퇴진하는 등 변화가능성이 기대됐던 KBS가 최근에는 완전히 국정방송이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KBS는 해방70주년 특집기획으로 준비했던 탐사보도팀의 취재 내용을 몇 달째 방송하지 않고 있어서 살아있는 권력은 물론, 박정희와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비판마저 금기로 만들고 있다. 친일이나 간첩조작마저 방송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KBS의 현실이다”_뉴스타파 최승호 앵커

KBS 신임 사장에 ‘불공정’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고대영 전 보도본부장이 최종 후보로 낙점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가운데, 비영리독립언론 뉴스타파가 KBS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리포트들을 선보였다. KBS에서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긴 박중석·김경래 기자가 취재를 맡은 점은 더 의미가 깊다. 두 기자는 KBS재직 시절 고대영 사장 후보로부터 폭행을 당한 당사자들이다.

뉴스타파, “이런 고대영 씨가 KBS 사장으로 복귀하려 한다”…도청의혹 집중 조명

뉴스타파는 청와대가 고대영 씨를 공영방송 사장 후보로 낙점한 까닭을 2016년 20대 총선과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탄했다.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 14명의 KBS 사장 후보자들 중 청와대에 가장 유리하게 KBS 보도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적임자를 고대영 후보로 판단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 뉴스타파 화면 캡처

뉴스타파는 <고대영은 ‘KBS 국정화’ 용?> 리포트(▷링크)에서 고대영 사장 후보와 관련해 “‘국정방송 KBS를 위한 맞춤형 사장’이라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래 기자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이후, KBS에서는 사장이 선임될 때마다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며 “사장 후보를 결정하는 이사회는 사장을 뽑을 때마다 무언가에 쫓기듯 속전속결로 처리하고, 청와대 낙점설이 제기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선임된 사장은 비판적 뉴스 프로그램을 방해하고 축소하고 틀어막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고 지적했다. 고대영 후보의 선임 과정에서도 ‘청와대 낙점설’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부분은 이 발언이 KBS 사장 공모에 지원한 강동순 전 후보자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강동순 전 후보는 친 여권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강동순 전 KBS 사장 후보는 뉴스타파의 인터뷰에서 “(KBS 이사회)맨 마지막 단계에서 7표를 몰아준 사람은 VIP”라며 “이렇게 해서 (여당 추천 이사들은)자기들끼리 공개리에 논의를 해서 결정한다. 공개투표”라고 폭로했다. 이 같은 지적에 KBS 차기환 이사는 “어느 분이 적절한지 당연히 (여당 추천 이사들끼리 모여)토론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KBS 이인호 이사장은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뉴스타파는 KBS 고대영 사장 후보가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권력 비판 보도가 수차례 누락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KBS 도청의혹, △천성관 총리 후보자 검증 보도 축소 등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고대영 사장 후보는 KBS 도청의혹과 관련해 이를 무마시킨 당사자이며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검증 보도 특종을 누락시킨 장본인이다.

KBS 도청 의혹 사건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1년 6월 국회는 새누리당이 주도해 KBS 수신료 인상안을 강행처리하려는 움직임에 논란이 일었던 때다. 당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KBS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당대표실에서 비공개 회의를 진행했다. 그런데, 다음날 새누리당 한선교 문방위 간사(현 미방위)가 “이것은 틀림없는 발언록 녹취록입니다. 몇 줄만 읽어드리겠습니다”라면서 민주당의 비공개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토씨하나 다르지 않게 언급했다. 그 후, 국회 출입이었던 KBS 장 모 기자가 도청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돼 경찰수사를 받았다. 경찰은 당시 장 기자의 휴대폰 등을 압수해 조사했지만, 밝혀진 건 없었다. 장 기자가 “(도청 의혹이 있던 날에 사용했던 휴대폰을)술에 취해 분실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고대영 당시 보도본부장이 장 기자에게 새 휴대폰을 선물한 것은 그래서 더 많은 의문을 낳게 했다. 결국, KBS 도청의혹 사건은 ‘의혹’만 키운 채 무마됐다.(▷관련기사 :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도청' 경찰에 수사의뢰)

▲ 뉴스타파 화면 캡처

뉴스타파는 “당시 고대영 보도본부장은 휴대폰을 분실했다는 기자를 불러 새 휴대전화를 선물했다”며 “보도본부장이 입사한지 얼마 안 된 기자의 사소한 비품 분실을 챙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고대영 본부장은 KBS를 위기에 몰아넣었던 도청과 관련해 아무런 진상조사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당시 도청의혹에 대한 책임있는 자리에 있던 이가 고대영 KBS 사장 후보라는 지적이다.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스폰서 논란에 대한 특종 기회를 무산시킨 장본인 또한 고대영 KBS 사장 후보였다. 야당의원들은 천성관 후보가 스폰서와 해외여행을 갔다는 의혹을 집중 제기했지만, 천 후보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KBS 보도국 기자들은 천성관 후보자가 스폰서로 지목된 자와 해외여행을 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스폰서의 비행기표를 천성관 후보자가 자신의 신용카드로 결재했던 사실을 확인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대영 당시 보도국장은 “증거를 가져오라”며 보도를 막았다.

▲ 뉴스타파 캡처

뉴스타파를 통해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정홍규 간사는 “(천성관 스폰서 의혹에 대해서는)복수의 취재원으로부터 크로스체크해서 확인된 사실이었다”며 “근데 고대영 보도국장은 ‘그냥 취재원으로부터 들은 것밖에 아니지 않느냐’, ‘증거를 가져와 봐라’라고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김경래 기자는 “기사는 결국 누락됐다”며 “다음 날 KBS취재 정보를 입수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전격 사퇴했다. 그리고 KBS는 뒷북 뉴스를 내보냈다”고 전했다.

뉴스타파 김경래 기자는 “이런 길을 걸어온 고대영 씨가 이제 사장으로 복귀하려고 한다”며 “고대영 씨는 편성규약을 개정해 게이트키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일선 제작진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는 것”이라며 우려했다.

뉴스타파, KBS 간부들이 막고 있는 ‘훈장’에 주목…“박정희 비판마저 금기되고 있다”

뉴스타파는 <‘훈장’ 대특종 가로막는 KBS>라는 제목으로 KBS에서 불방 되고 있는 <훈장>과 관련한 리포트를 함께 배치했다. 해당 리포트에서 ‘간첩조작 사건’의 고문피해자 박동훈 씨는 “제대로 보도가 안 되리라 생각해 KBS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밝혔고,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제도권 언론에서 정면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인지…”라고 우려했다. 그리고 이들의 우려대로 <훈장> ‘간첩과 훈장’, ‘친일과 훈장’ 편은 불방상태에 놓여 있다.

뉴스타파 박중석 기자는 “대법원이 지난 1월, KBS 탐사보도팀 기자가 행정자치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훈장을 받은 명단을 즉각 공개하라’고 판결했다”며 “1948년 이후, 비공개했던 전체 서훈자의 명단(70만 건)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KBS는 서훈자 가운데 ‘3·15부정선거 주도자’, ‘5·18민주화운동 진압자’, ‘간첩조작 대공수사관’, ‘친일행적인사’ 등에 대한 분석을 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KBS 취재진은 고문을 통해 간첩을 조작했던 대공수사관 중 일부가 보국훈장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해당 프로그램에는 공안기구가 발표한 간첩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선전도구 역할을 해왔던 과거 KBS에 대한 반성도 담겨 있었다”고 덧붙였다.

▲ 뉴스타파 화면 캡처

뉴스타파는 “KBS 간부들은 데스킹 명목으로 두 달 가까이 원고 수정을 요구했다”며 “이 과정에서 고문피해자의 인권보다는 대공수사관의 명예를 더 신경 쓰는 듯한 발언들을 쏟아냈다”고 지적했다. KBS 간부들이 ‘대공활동 전체에 대한 폄훼가 없어야 한다’, ‘국방부 반론을 더 넣어라’, ‘무죄사건은 전체 간첩사건 중 극소수라는 것을 적시하라’, ‘(원래)간첩인데 고문 등 수사 절차상 하자가 발생해 무죄가 선고된 경우도 있다. 조작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는 얘기다.(▷관련기사 : KBS ‘훈장’ 삭제된 내용은 ‘박정희가 기시 노부스케에 보낸 편지’)

뉴스타파 박중석 기자는 “KBS 탐사보도팀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협업을 통해 일본인들이 대거 훈장을 받은 이유가 뭔지 집중 취재했다”며 “하지만 KBS 간부들은 박정희 정권시절 무더기로 친일 인사들에게 훈장을 준 것을 방송하는 것을 꺼려했다”고 지적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해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년 장기집권을 했다”며 “그런데 그 부분을 드러낸다면 대한민국 훈장의 역사를 조명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박 기자는 “KBS 안에서 살아있는 권력은 물론, 박정희와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비판마저 금기가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뉴스타파>는 <방송불가…‘박정희-기시 노부스케 친서’> 리포트를 통해 “KBS 간부들은 여러 가지 내용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그 중 하나가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협정 체결과정에서 기시 노부스케 일본 총리에게 보낸 두 장의 친서”라면서 국사편찬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는 친서의 사본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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