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시각 : 10월 29일 오후 6시 16분

벌써 석 달째 기약 없이 방송이 미뤄지고 있는 KBS <훈장 2부작>에서 시사제작국 간부들이 삭제를 요구한 부분은 1965년 한일회담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에게 보낸 친서 등 ‘박정희’ 관련 내용인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훈장> 제작진은 지난 26일 성명을 내어 간부들이 △2부 <친일과 훈장>에서 삭제 요구한 내용 대다수가 박정희 정권 때의 내용이고 △1부 <간첩과 훈장> 편에서도 전체 간첩 사건 중 무죄 사건은 극소수라는 점을 적시할 것 등 세부적인 지시를 내렸으며 △두 달 넘게 데스킹 중인데도 여전히 방송날짜를 잡지 못해 불방 수순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형덕 시사제작국 탐사제작부장은 같은 날 사내 게시판에 <훈장> 불방 수순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며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순연’된다고만 했을 뿐 어느 시기에 방송할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김형덕 부장은 가장 논란이 됐던 ‘박정희 시대 부분 삭제 지시’ 주장에 대해 ‘박정희’라는 이름을 적시하지 않은 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는 이유로 6·25 전쟁영웅에게 수여된 무공훈장 수여가 적절했는지 따지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라며 “한일 수교와 관련된 수교훈장 수여 부분에서도 제작진은 외교상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표현이 담긴 서신 내용을 문제가 많은 것처럼 서술했다”고 말했다.

또한 <훈장>의 기획의도는 “광복 70년 동안 훈장수여가 적절히 이뤄졌는지 비판적으로 따져보는 것”이었는데 제작진이 준비한 내용은 “6·25 전쟁 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운 전쟁영웅들이 받은 무공훈장 수여와 한일수교 전후 수교에 공이 있는 일본 측 인사에 대한 수교훈장 수여를 시비 삼는 내용”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언론 최초로 촬영한 박정희 친서, 방송 안 되나

<훈장> 제작진은 29일 성명을 통해, 김형덕 부장이 삭제하라고 한 부분 중 일부가 ‘박정희 대통령이 기시 노부스케 일본 총리에게 보낸 친서’라고 밝혔다. 특히 이 친서를 직접 촬영해 공개하는 것은 국내 언론 가운데 KBS가 최초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 KBS <훈장 2부작>에서 시사제작국 간부들이 삭제를 요구한 부분은 1965년 한일회담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에게 보낸 친서를 포함해 ‘박정희’ 관련 내용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 (사진=대통령 기록관)

성명에 따르면 김형덕 부장이 당초 삭제를 요구했던 부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시 전 총리에게 한일수교협상과 관련해 보냈던 두 번의 친서였다. 기시 전 총리는 현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의 외조부다. 제작진은 초고에 “귀하에게 사신을 드리게 된 기회를 갖게 되어 극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는 인사말을 포함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시 전 총리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제작진은 “인사말을 넣은 것은 이 부분이 당시 분위기를 어느 정도 대변해 주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며 “(부장은) ‘외과 관례상 의례적으로 등장하는 표현’이라고 했으나, 친서의 분위기는 ‘한국의 최고 권력자와 일본의 막후 실력자’ 사이의 대등한 위치보다는 ‘사병과 장교’, ‘제자와 스승’ 관계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하지만 부장의 의견을 수용해 관련 부분을 삭제했더니, 그 다음 요구는 일본인 훈장 관련 내용 전체를 다 삭제하라는 것이었다. 원고 수정을 요구하고 나서 나중에는 ‘데스크 필요 없으니 내용 자체를 다 삭제하라’는 요구가 타당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11월 2일 열리는 한일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총리를 만나서 ‘이렇게 만나게 된 기회를 갖게 되어 극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고 인사할까? 솔직해지십시오”라고 꼬집었다.

제작진은 <친일과 훈장> 주 내용이 “6·25 전쟁 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운 전쟁영웅들이 받은 무공훈장 수여와 한일수교 전후 수교에 공이 있는 일본 측 인사에 대한 수교훈장 수여를 시비 삼는 내용”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제작진은 “3차 기획안에서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뿌리는 3·1운동으로 대표되는 독립운동이라는 것을 명확히 한 선언이다. 대한민국은 과연 존엄한 헌법적 가치대로,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과 부역한 친일을 엄밀하게 평가해왔을까’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며 △친일인사 훈장과 건국훈장, 이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대한민국은 왜 외국인에게 훈장을 주었나? △친일행적 162명,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다 3가지를 주요 취재 내용으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4,389명 중 000명이 000건의 훈장을 받았는데 이를 주요 수훈자, 훈장 종류, 공적 사유, 정권별 포상 추세와 특징 등을 분석하기로 했다”면서 “1950년에서 1970년대 무렵에 주로 이뤄진 친일 행위자에 대한 훈장 수여를 그 시대적 상황을 도외시한 채 2015년 지금의 관점으로 평가한다는 지적, 우리 사회가 사실상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는 점을 고려해 팩트와 의견(해석)을 철저하게 분리했다”고 밝혔다. 친일 사료와 훈장 DB에 기초해 친일 행위자의 훈장 사유와 종류, 규모 등의 뉴스는 제작진이 생산하되, 생산된 팩트를 해석하는 것은 보수 진보 양쪽의 대표적 역사학자에게 맡겨 균형 있게 담았다는 설명이다.

또한 외국인에게 수여된 훈장을 문제제기한 것은 “기획안에서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기에 이뤄진 일본인 70여 명에게 수여된 수교훈장을 주요 취재 내용으로 애초 담고 있다. 이들 중 일부가 일제 강점에 책임이 있거나, 일제 강점을 미화한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훈장>을 제작한 한 기자는 “방송에 나가기로 했던 편지의 주요 메시지는 ‘한일 회담을 꼭 성사시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처음 원고를 수정할 때는 인사말만 삭제하라고 해 놓고 나중에는 인사말이 문제가 아니라 외국인 훈장 내용까지 다 들어내라고 하더라”라며 “이밖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러이러한 이유로 무공훈장을 받았다는 내용들도 빼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언급도 빼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훈장>이 불방되면 국내 언론으로는 최초로 촬영한 친서가 KBS에서 못 나간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 대한민국 훈장 (사진=KBS)

“KBS가 단독 확보한 훈포장 전수자료 방송 못하는 것은 큰 수치”

제작진은 또한 판결문에 ‘조작’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사건만을 간첩조작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간부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조작은 법률용어가 아닌 만큼 판결문에는 해당 단어가 좀처럼 쓰이지 않는다”며 “데스크의 주장대로라면 간첩조작 사건은 거의 없다”고 맞섰다.

제작진은 “이현주 시사제작국장은 21일 회의 자리에서 ‘27일에는 시청자칼럼 특집이 편성돼 방송은 또 미뤄질 것,’ ‘또 그 다음주에는 조희팔 관련 방송이 나갈 것’, ‘훈장 방송 날짜는 미확정’이라고 말했다. 회의가 끝나가는 시점에 10가지 정도의 새로운 지적사항을 제시했다”며 “두 달여 동안 부장 데스킹 과정을 보내왔는데, 국장이 또 전면 수정을 하라니요. 부장과 국장은 도대체 소통을 하기나 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제작진은 “<시사기획 창>에서 갑자기 대체 프로그램이 편성될 경우, 방송 순서는 기존에 정해져 있던 순서대로 순연돼 왔다. 하지만 <훈장>은 달랐다. <훈장> 취재를 시작할 때 기획조차 없었던 후발 아이템들이 먼저 나가는 광경을 몇 개월째 지켜보고만 있다”며 “KBS가 3년의 소송을 벌여 KBS만이 단독으로 확보한 <훈포장 전수 자료>라는 빅데이터를 방송하지 못한다면 큰 수치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수많은 특종상을 독차지했던 KBS 탐사보도팀의 취재 역량과 경험 많은 데스크의 합리적 리더십이 제대로 어우러져 <훈장 2부작>을 조만간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보도가 나간 후, 김형덕 탐사제작부장은 KBS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제작진은 현재 정상적인 데스크 과정을 거부한 채 회사 대내외로 일방적인 주장을 퍼뜨리며 일탈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조속히 정상 제작에 임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간첩과 훈장>은 주간 편성회의에까지 방송 예정일자가 보고된 사안이다. 분명히 한다. <훈장>KBS 시사 프로그램으로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한 채 방송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글에도 ‘11월 중 방송정도의 대략적 방송 예정시기는 명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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