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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효종, 이하 방통심의위)에서 법정제재를 받은 프로그램 제작진들을 보다 손쉽게 징계하는 방향으로 사규를 개정하려고 해 논란이 예상된다. 정권친화적 프로그램에는 낮은 수위의 징계를, 정부비판적 프로그램에는 중징계를 내려 ‘청부심의’ 지적을 받고 있는 방통심의위에 힘을 실어주고 제작진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전망이다.

KBS PD협회(협회장 안주식)는 12일 <청부심의를 징계로 손쉽게 이어가려는 사규개정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어 사측을 질타했다. 현행 KBS 사규는 ‘당해년도 기간 내에 외부기관(방송통신위원회 등) 또는 심의담당부서의 경고 누계가 3회 이상인 경우 관련자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KBS는 이 조항에서 외부기관과 사내 제재를 분리했고, 외부기관 제재 시 경고 혹은 주의를 받았을 경우 인사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게 개정을 추진 중이다.

사측의 개정 취지는 방통위 제재가 방송사 재허가 시 회사 평가에 반영되고, 제재 사실을 자막으로 고지해 회사 신뢰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9일 사규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내일(13일) 경영회의 최종의결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규 개정은 경영부서 관계자들만 참석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제작부서 인원은 포함되지 않아 불만이 높다.

KBS PD협회는 사규 개정을 “매우 우려할 만한 개악”이라고 단언했다. KBS PD협회는 “현재 방통위의 행태에 대해 청부심의라는 반발이 여전한 상황이다. 추적60분의 천안함 의혹, 간첩조작 방송에 대한 징계가 행정소송을 통해 무효화되고 있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며 “특히 국가기관인 방통위가 언론에 대해 심의를 하고 징계를 하는 예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민망하고 부끄러운 제도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KBS PD협회는 “그런데도 이를 수용해 오히려 제작자들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의 폭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기가 찰 뿐이다. 추후 개별 소송에 의해 징계가 무효가 되면 그 몇 년간의 불이익에 대해 어찌 보전할 것인가”라며 “방통위의 징계가 사내 징계로 손쉽게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제작자들, 특히 고단함을 무릅쓰고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현업자들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라고 반문했다.

KBS PD협회는 “현장이 무너지면 미래는 없다. 당신들은 지금 단순히 제작 현장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며 “최전선에 몰려있는 제작 현장에 대한 존중을 담아 개정 시도를 당장 철회하라.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제작자들과 논의하라. 당신들도 몸담았던 현장임을 잊지 말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경쟁력 줄고, 비판적 프로그램 나오기 더 어려워질 것”

방통심의위는 방송심의소위에서 민원이 들어온 프로그램을 심의한 후 징계 수위를 논의한다. 비교적 낮은 수위의 제재인 ‘행정지도’와 중징계인 ‘법정제재’가 있는데 법정제재의 경우 방송사 재허가 시 감점 요인(KBS가 사규 개정안에 명시한 경고는 벌점 2, ‘주의는 경고 1점)이 될 수 있다.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나면, 방통위가 방송사에 제재를 내린다.

그러나 여당 추천 위원들이 다수를 점하는 방통심의위는 천안함, 국정원 간첩조작 등 정권이 불편해 할 만한 프로그램에 중징계를 내리고, 정부여당 편에서 막말을 일삼는 종편 프로그램에는 솜방망이 제재를 내리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노출해 ‘자판기 심의’, ‘청부 심의’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방통위의 방송사 제재가 부당했다는 판결도 속속 추가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한 박창신 신부를 인터뷰했던 CBS <김현정의 뉴스쇼>도, 책임 주체 논란이 일었던 천안함 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도 방통위 대상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KBS PD협회 안주식 협회장은 “사규 개정이 실행되면 인기 예능 프로그램은 요주의 관찰 대상이어서 지금도 주의, 경고를 받는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인사고과로 바로 연결되지 않아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규가 개정되면) 당장 경쟁력이 엄청나게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정치적인 징계가 부당하다고 소송까지 걸고 있는데 도리어 회사가 (방통심의위 심의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고 하면… 비판적인 내용이 나오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규 개정 작업에 현업 PD, 기자 등 제작부서를 대변할 만한 사람이 한 명도 들어가 있지 않다. 제작본부장, 국장이라도 들어갔다면 미리 알았을 텐데 경영 쪽만 들어가 있어 까맣게 몰랐다.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KBS는 불필요한 징계를 강화하기 위한 조처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KBS 관계자는 “사규 개정안은 방통위로부터 주의 또는 경고를 받았을 때 인사위에 회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강제 조항이 아니라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임의 규정’이다”라며 “현재 KBS 심의규정은 사내 심의지적평정위원회 제재와 사외 제재(방통위 등)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개정하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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