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고경표(선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엄친아이기에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형적인 남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여동생이 너무 귀여워 그냥 지나가지 못하는 다정한 오빠. 생선 가시처럼 계란 껍질을 발라내야 하는 엄마의 요리를 꾸역꾸역 먹고 들어가는 최고의 아들. 학생회장에 당연히 노력한 만큼 공부도 잘한다. 심지어 하나라서, 고를 필요 없이 그저 주인공인 혜리(덕선)의 첫사랑인 것 같은 연출마저 부여받는다. 그래서 그는 남주인공이 아닐 것이다. 너무나 의외성이 없는 멋짐을 가졌으니까.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그에 반해 류준열(정환)은 '그럴 줄 몰랐는데'가 마치 아이덴티티 같은 인물이다. 불성실함에도 전교회장과 1,2등을 다투는 천재성에 비사교적인 듯하면서 슬그머니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으며 딱히 트러블 없이 발도 넓다. 모두가 미쳐 날뛰는 덕선이의 피켓걸 퍼레이드를 참 무심한 얼굴로 감상하다가 입꼬리만 슬쩍 올려 슬그머니 웃고야 마는 클로즈업 씬이 이 드라마의 첫 번째 로맨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포스터
사실 이런 분석 따위도 필요 없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코어팬이라면 한 달 여전에 공개한 포스터 두 장만으로도 이미 그가 남주인공임을 짐작했을 테니까. 덕선의 스킨십에 별 반응 없이 사진 찍히는 사람의 표정에만 신경 쓰고 있는 선우와 달리, 기어코 싫은 티를 내고야 마는 그. 전매특허의 팔짱 끼는 포즈까지.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주인공이 갖는 집요할 정도의 캐릭터 고유 성격이 그에겐 이미 포스터에서부터 부여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집착적으로.

질투에 미친 선배들에게서 애처로운 친구를 구해내기는커녕 도리어 탓하고 화를 내는 비겁한 캐릭터로 만들어버렸을 때, 설마 이 사람들이 처음으로 놀던 판을 뒤엎으려나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지만. 그건 역시나 최고로 멋진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추진력으로 쓰였을 뿐이었다.

선우의 목걸이가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정보로 시청자를 울컥하게 하고 분노가 최고치로 치솟았을 때 정환의 주먹이 상황을 종결한다. 시청자는 사라진 스트레스에 고마워하며 정환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게 된다. 골리앗 같았던 선배들마저 정환에겐 한 주먹감이라는 의외성. 또한 그만큼의 힘이 있음에도 참을 수 있었던 의외의 인내심에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

선우(고경표), 정환(류준열), 택(박보검). 장난기를 배제한 진짜 남주인공 컬렉션을 셋이나 준비했다. 어째 1994 느낌 같기도 하지만 시청자는 딱히 고민할 필요도 헷갈릴 이유도 없을 것이다. 너무나 의외가 많은 정환의 매력 때문에 이 드라마의 남편 찾기는 의외성이 사라진 것이다. 정환이 아닌, 다른 남자가 덕선의 남편이기를 바란다면 차라리 스토리나 캐릭터의 성향이 아닌 제작진의 변덕에 기대 보는 것이 더 유리하리라.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낚시질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제작진은 오히려 우직하리만큼 원패턴의 로맨스를 지향한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그간의 틀을 깨고 최초로 성인 역할의 배우를 따로 섭외하였다. 제작진의 '최초'가 응답하라 1988의 남주인공에게도 부여되었을지가 이 드라마의 유일한 반전 요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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