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시리즈의 빠뜨릴 수 없는 퍼레이드 중 하나 '그가 당신에게 반하는 순간'이다. 그가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된 계기, 응답하라 시리즈는 이 순간을 굉장히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데, 때문에 그 반하는 순간들은 남녀 주인공의 결합이 아니었음에도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의 명장면으로 자리매김하곤 했다.

반하게 만든 대상이 A군, 반해버린 상대가 B였을 때. A에게는 최상의 판타지를 제공하여 '저렇게 멋지니까 반할 수밖에 없었겠구나'라는 설득력을. 폭풍처럼 몰아칠 첫사랑의 징후에 패닉한 B의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시청자 또한 그 순간 B가 되는 짜릿한 감정이입을 선사한다. 이때, 말을 잃은 B의 터질 듯한 심장을 변호하는 SOS가 바로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다-너의 목소리가 들려-.

▲ tvN '응답하라 1994'
이 노래가 터지는 순간의 특이사항이라면, 남녀 주인공이 아닌 조연의 시그널로 쓰인다는 것. 심지어 이성 관계도 아니다. 동성에게 반한 조연의 사랑을 설명해야 했기에 제작진은 그 설득력에 더 공을 들였는지도 모르겠다. 사교성 없는 빙그레가 연고지 없는 서울에 올라와 학연과 지연으로 묶이는 선후배 관계에 풀이 죽었을 때, 그 모든 상호 이익을 무시하고 부조리 위에 우뚝 선 우리의 쓰성이 얼마나 멋있었던가.

다음날 선배들의 후배 군기잡기 일환이었던 억지 산타기에 빙그레가 힘들어할 때 그의 가방을 대신 둘러메고 산을 오르는 쓰레기는 또 얼마나 특별했던가. 그 또한 선배이면서, 출신과 이전 학교를 묻지 않고 빙그레를 선택했으며 다른 선배들이 군기잡기에 빠져있을 때 그는 역으로 후배 빙그레의 가방을 들었다. 선배 대접은커녕, 아저씨라 불리면서도 선배의 권위를 가르치려 하지도 않았다.

그가 선배에게조차 박수 받는 까마득한 분임을 알릴 때조차도 어설프게 입은 티셔츠로 얼굴을 감추다가, 마치 미식축구 선수들의 등장처럼 흩어져 나오는 쓰레기의 모습을 보일랑 말랑하게 비추며 경악하는 빙그레의 얼굴과 함께 겹쳐 나온 비지엠이 바로 '너의 목소리가 들려'다. 시청자는 설득 당한다. '아, 그래서 저 사람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겠구나'라고. 그 순간과 대상에 최상의 판타지를 제공하여 같은 남자라도 반할 수밖에 없겠다는 설득력을 부여해줌으로써 동성에게 빠진 조연의 첫사랑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 tvN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7’의 준희 또한 윤제와 마주치는 순간에 앞으로 그에게 몰아칠 사랑의 징후를 느끼며 '너의 목소리'를 외친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린다니. 피하려 해도 걷잡을 수 없는 심장의 두근거림을 이보다 효과적으로 묘사한 메시지가 있을까. 애를 쓰고 피해야만 하는 사랑. ‘차우차우’가 여주인공 성나정이 아닌 빙그레 혹은 준희의 시그널이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덕선이가 귀여워졌지 않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벌게진 얼굴에 몽롱한 눈빛으로 꿈꾸듯 누군가를 그리다 "어..."라고 대답했던 선우. 이미 덕선의 짝사랑 상대임이 정해진 지금, 응답하라 제작진은 힌트를 가장한 트릭으로 그에게도 3년간의 짝사랑 대상이 있다고 밝힌다. 3년 전 선우의 반하는 순간은, 그가 너의 목소리를 들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는 그들의 1997년 데뷔 앨범이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시간을 뛰어넘어 1994에 같은 비지엠을 실었다. 이것이 응답하라 시리즈의 시그니처로 자리잡힌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직 우리에게는 최상의 설렐 순간이 남아있다. 응답하라 역대 퍼레이드였던 빙그레와 준희의 '반하는 순간'이 1988에 등장하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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