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후 6차례 구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면서도 해당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혀, 최고권력기관의 직무수행 내용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됐다.

녹색당·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한국기록전문가협회·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20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청와대의 부실한 기록관리 시스템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단체는 녹색당이 제기한 정보공개거부 처분취소소송 과정에서 청와대가 법원에 제출한 <4·16 세월호 사고 당일 시간대별 대통령 조치사항> 문건에 나타난 내용을 공개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15분까지 서면 11회, 구두 7회 등 총 18회 보고를 받았다.

▲ 지난해 4월 16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또한 문건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보고를 듣고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지시를 6차례 내렸다고 나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전 10시 15분 안보실에서 보고를 받고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여객선 내 객실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인원이 없도록 할 것”을 주문했다.

오전 10시 22분에는 안보실장에게 ‘철저히 구조할 것’을 재차 강조했고, 해경 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인원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오후 2시 11분에는 안보실장에게 전화를 해 구조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현장 상황파악을 했다. 오후 2시 57분에 다시 안보실장에 전화를 해 190명이 추가로 구조됐다는 보고는 잘못됐다는 점을 확인받았다.

마지막으로 오후 5시 15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중대본을 현장 방문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자를 빨리 구출하는 것이니 총력 기울일 것”, “일몰까지 시간이 없으니 생사를 확인하고 최대한 구출하는 데 힘을 쏟길 바란다”, “(저도) 지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나왔는데 가족들 심정은 오죽하겠나”, “가족들에게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설명도 드리고 세심하게 준비를 해 달라”고 말했다.

‘구두’로 한 것이라 기록하지 않았다? 보고 회수도 오락가락하는 청와대

하지만 청와대는 안보실, 비서실 등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과 박근혜 대통령의 6차례 내린 지시사항 전부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고 밝혔다. 보고와 지시가 ‘구두’로 이루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는 “국무회의와 같은 공식 일정에 있어서는 속기록을 작성하는 반면 대통령이 평소 사용하는 업무전화기를 통해 국가안보실장 등 참모진들에게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는 경우나 직접 면전에서 구두로 지시·보고가 있는 경우에는 그 통화와 구두 내용은 별도로 녹음하거나 이를 녹취하지 않는 것이 업무의 관행이자 행태”라고 설명했다.

녹색당 등 이들 단체는 청와대의 해명이 지난해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와 다르다며 “보고 회수도 오락가락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서면과 유선으로 20~30분 간격으로 21차례에 걸쳐 보고를 받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으나, 이번에는 서면과 구두 보고 회수를 18회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는 “조선시대의 왕도 말 한마디, 행동하나가 모두 사초로 기록되어 있는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기록으로 남지 않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이는 당대의 정치적 평가와 후대의 역사적 평가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최고권력기관이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비판했다.

▲ 지난해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청해진해운 소속 세월호가 침몰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들 단체는 세월호 참사 당시의 대통령의 직무수행 관련 내용을 남기지 않은 행태는 대통령 직무수행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의무화한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7조 1항을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에는 △대통령의 모든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기록으로 관리할 것 △현재의 부실한 기록관리 시스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기록관리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혁신할 것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가 의무화돼 있는데도 청와대가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정보목록 및 예산집행내역 등을 공개할 것을, 국회에는 △청와대의 법 위반 행태에 대해 조사하고 녹음 등을 입법으로 강제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녹색당은 지난해 10월 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의 정보공개 거부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녹색당은 “세월호 참사 관련 기록 등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보들이 공개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청와대 역시 정보공개법을 준수해야 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 받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소송은 오는 21일 결심공판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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