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이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에 '기준'과 '원칙'이 없다는 비판을 제기하며, 이사 선임 연기를 주장했다. 오는 31일로 예정된 KBS와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신임 이사 선임이 연기될지 주목된다.

방송통신위원회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29일 오전 11시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영방송의 이사를 추천·임명할 때에는 최소한의 인선 기준과 원칙이 필요하다”며 “이는 법령이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사의 ‘자격 기준’이나 ‘결격 사유’와 달리 ‘제3기 방송통신위원회의 인사원칙’으로서 상임위원들의 인선 협의를 위한 기본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상임위원은 “이런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인 인선을 위한 절차에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방송통신위원회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허원제 위원장, 이기주·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KBS와 방문진 이사 선임을 위한 내부 간담회를 열었지만 이견은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내부 간담회에서 두 상임위원은 인선에 앞서 기준을 세우자는 요청을 했지만 정부 여당 측 상임위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두 상임위원은 퇴장했다.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 “기준 없이 최소한의 원칙 없이 인선 절차 들어갈 수 없다”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공영방송 이사 선임과 관련해 △각계각층의 대표성을 반영하되 특정 후보자의 ‘3연임’ 금지, △정파적 나눠먹기 인선 반대, △공영방송의 공적책임 및 공공성·공정성 구현 적임자 선임의 3대 원칙을 제시했다.

▲ 방송통신위원회 김재홍(왼쪽)·고삼석 상임위원은 지난달 11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석우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시청자미디어재단 초대 이사장 내정 철회를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특정 인사의 공영방송 이사 3연임(9년)은 전례가 없을뿐더러 이사직 독점으로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을 해치고 정치권과의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지해야 한다”며 “비상임 이사제도의 취지를 고려할 때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인사들이 공영방송 이사회에 고루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연임’은 현 방문진 차기환 이사를 겨냥한 발언이다. 차기환 이사는 방문진 8·9기 이사를 지냈고 이번에는 KBS이사에 공모했다. KBS와 방문진을 오가며 3년 연임을 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지만 이미 언론계 안팎에는 차기환 이사의 ‘임명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사 선임을 앞두고 ‘정치권 몫 나눠먹기’ 잡음도 있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을 비롯한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이 주장하고 있는 '최소한의 인선 기준과 원칙' 요구를 일축하고 있는 배경에는 어차피 여야 몫으로 나눠 먹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준과 원칙은 의례적인 것일 뿐이란 인식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관행대로 KBS 11명의 이사 중 7명을 정부여당에서 추천하고 4명을 야당에서 추천(방문진 6대3/EBS 7대2)하면 끝나는 문제라는 인식이다.(▷관련기사 : KBS·방문진 이사 선출 앞두고 벌써부터 ‘잡음’)

이와 관련해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정파적 나눠먹기 인선은 더 이상 안 된다”며 “공영방송의 이사 추천비율을 여야 정치권이 나누어 가지는 방식이 관행화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법령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적임자 인선이라는 인사원칙에도 걸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 여론도 ‘정파적 나눠먹기’를 비판해 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방통위원 간 협의를 통해 합리성과 전문성, 그리고 품격을 두루 갖춘 최선의 적임자가 인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 몫’이 아닌 전체 명단에서 부적격 인사를 걸러내자는 요구다.

KBS·방문진 이사 ‘나눠먹기’로 가나…언론노조, “차기환·고영주·김광동 등 집어넣겠다는 뜻”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또한 “무엇보다 공영방송의 공적책임과 공공성 및 공정성 구현의 적임자를 선임해야 한다”며 “공영방송 내·외부에서 방송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편성·제작의 자율성을 현저하게 해치는 행동이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을 이사로 선임하거나 연임시켜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편성·제작의 자율성을 해치는 행동이나 발언한 인사’는 KBS 이인호 이사장(연임)을 비롯해 방문진 차기환 이사(3연임), 방문진 고영주 감사, 방문진 김원배 이사(연임) 등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인호 이사장은 KBS 역사다큐 <뿌리깊은 미래>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으며 최근에는 KBS <뉴스9>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설 보도를 비판하면서 임시이사회를 소집하는 등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KBS내부에서는 이인호 이사장이 공모에 지원한 사실만으로도 ‘이미 청와대로부터 추인을 받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돌고 있다. 차기환 이사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비하 등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반인륜 극우사이트 일베에서 확인되지 않은 게시물을 퍼 나른 전력이 있다.

고영주 감사는 영화 <변호인>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로 피해자들이 33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자 “사법부가 좌경화됐다”며 맹비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당대표에 대해 각각 ‘종북인사’, ‘공산주의자’라는 색깔공격을 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MBC 보도와 관련해 “해경이 79명을 구조했는데 (MBC 보도에선)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느냐”라고 지적하는 등 정부 두둔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밖에도 김광동(3연임)·박천일(연임) 방문진 이사 또한 이번 공영방송 이사에 지원서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부적격’ 논란이 크다.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끝으로 “지금 시민단체와 정치권 주변에서 공영방송의 이사 일부가 확정된 것처럼 명단이 나돌고 있다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따른 이사 인선 절차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아직 진행 중이다. 현재 기초 단계가 마무리 됐을 뿐 본격적인 인선 협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 김환균 위원장은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여당 추천 방통위원들이 공영방송 이사 추천에 대한 인선기준 논의조차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은 KBS이인호 이사장과 차기환·고영주·김광동 등 부적격 인사들을 꼭 집어넣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환균 위원장은 “(정치권은)이번 공영방송 이사선임을 선거용으로 보면서 차기 정권구도까지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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