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MBN PD가 외주제작사의 독립PD를 폭행해 안면골절상을 입혔다. 방송계의 오랜 악습인'갑을 구조' 문제가 곪아 터진 사건이란 지적이 높다. 그동안 독립PD 등 방송국 내 비정규직들은 사실상 노동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려 있었다. 워낙에 갑을 관계가 확고하고, 비정규직의 처지가 '파리 목숨'이다보니 제대로 된 노동 실태 조사 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MBN PD의 폭행을 계기로, 독립PD들이 당했던 비인간적 대우 등을 폭로하는 증언 대회가 열렸다.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실태 긴급 증언대회>가 개최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독립PD협회가 공동주최한 이날 증언대회는 실태 증언이 영상으로 대체됐다. 모습을 드러내 말하기 조차 어려운 현실 때문이었다. 이 자체가 독립PD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실태 긴급 증언대회>가 개최됐다. 증언대회는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독립PD협회가 공동주최했다(사진=언론노조)

<외주제작 프리랜서 PD 노동인권 실태> 제목의 영상을 통해 증언에 나선 독립PD는 총 3명이다. 외주제작 프리랜서 김경수 PD(가명)는 방송사 광고국의 ‘상품에 대한 직접광고’를 거부했다가 해당 프로그램에서 잘렸다. 이주원 PD(가명)는 한 케이블 방송사 정규직 PD에게 ‘말대꾸’를 한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다. 종편 편집실 하종길 감독(가명)은 방송사 PD의 취향에 따라 수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고충을 말했다.

“작년 9월에 프로그램 격주로 제작사 두 곳이 3개월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다른 소속사 후배가 연락을 해서 ‘이거 선배님이 하는 프로그램인데 우리가 하게 됐다’고 이야기를 했다. (방송사 측에서는 사전에)나한테 한마디 얘기도 없이 다른 제작사를 구해놓은 것이다. 두개 제작사가 하나의 프로그램을 같이 제작하던 상황이었는데, 시청률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이게 협찬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이다. 광고국에서 협찬을 따와서 제작하는 것인데 상품에 대해 직접적인 광고를 하라고 요구를 해왔다. 그때마다 내 결정사항이 아니니 제작국이랑 협의를 하라고 이야기를 하며 해당 방송사 광고국과 싸웠다. 결국, 광고국에서 제작국에 얘기해 나를 일방적으로 자른 것이다”_외주제작 프리랜서 김경수 PD(가명)

“PD입문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배PD와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다툼이 있었는데, 일방적인 언어 폭행이었다. 그 과정에서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정확하게 말을 했더니 ‘뭐, 지금 말대꾸하냐’라며 폭행을 당했다. 체력적으로 밀려 폭행을 당한 것보다 조연출이 PD에게 대들었다가는 PD 입문을 할 수가 없고 그 조직을 떠나야 하니 10대를 맞든 20대를 맞든 내가 올려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선배PD에게 따귀를 맞았는데 풀 스윙으로 때려서 부은 정도였다. 나중에 그 분이 사과를 해서 다시 친하게 지내기는 했다. (하지만)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항이었다. PD가 되어야 하니까”_외주제작 프리랜서 이주원 PD(가명)

“(방송사의 요청에 의해)재종편이 되면 추가 요금이 발생하는데 힘들다. (방송이 나간 후 수정요구도 있나?) 가끔 발생한다. 오타 등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라면 당연히 수정해야하겠으나 그런 게 아니라 본사 내부 PD의 취향에 따라 다시 작업해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중략)…현실적으로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시간 대비 종합편집료 책정이 다시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월요일에 시사하는 것 자체가 갑질 아니냐고 얘기한다. 월요일 오전 시사를 하려면 우리는 주말 내내 일을 해야 한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 연휴 끝난 다음 날 시사하는 것도 바꿔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사람처럼 살지 않겠나”_종편 편집실 하종길 감독(가명)


(영상 제공=한국독립PD협회)

3명의 독립PD들을 찾아다니며 피해사례를 영상으로 담은 한국독립PD협회 복진오 권익위원장은 “외주제작사 독립PD들이 모이면 대화의 80%는 방송사에서 당한 이야기들이었다”며 “그런 이야기들을 영상에 담아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복진오 권익위원장은 “이 영상은 ‘카더라’가 아니다. 세 분이 당사자로 직접 경험한 사례들”이라며 “앞으로도 이 같은 사례 영상을 만들어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 공개되지 않은 영상에서 20년차 한 PD는 모 방송사 특집 프로그램을 하며 동료PD가 욕설 등 언어폭력에 시달렸고 자신 또한 해외촬영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스텝 스크롤에는 이름이 빠졌던 이야기를 털어 놓기도 했다.

복진오 권익위원장은 MBN 폭행사건을 설명하며 “독립PD들이 분노한 것은 그나마 ‘(물리적)폭행’은 없어진 줄 알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해당 사건 이후, 사례자로 나온 이주원 PD가 본인도 당했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래서 분노와 문제의식이 더 폭발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복진오 권익위원장은 “이주원 PD에게 풀 스윙으로 뺨을 올려친 분은 케이블사 정규직 PD였다. 다행히 사후 처리가 잘 돼 지금도 그 회사에서 꾸준히 일을 하고 있지만 불합리한 구조들은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개탄했다.

한국독립PD협회는 향후,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는 MBN와 관련해 재승인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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