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병을 만든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겪고 있는 우리들 중 누구든 한번쯤은 떠올렸을 경구다. 무능한 정부의 방역 대책이 ‘세계 一流’라고 자신하던 삼성서울병원의 오만과 맞물려 ‘비밀주의’를 고집하더니, 결국 한국을 세계 2위의 메르스 발병 국가로 만들었다.

한번 뚫린 방어벽은 메르스를 병원 공간에 겉잡을 수 없이 전파시켰고, 이어 터져나오는 감염 경로들은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병원 내 상시, 지속업무의 외주 하청 비정규직 문제다.

▲ 폐쇄된 병동을 청소하고 있는 한 노동자, 저 노동자는 직접 고용되어 있을까? (사진=연합뉴스)

삼성서울병원 환자이송을 담당하는 노동자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관리대상에서 제외되어 증상이 있는 채로 9일을 일해야 했고, 대청병원 등 병원 전산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역시나 확진 전까지 관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아산병원 응급실 보안요원도 N95마스크도 없이 환자를 이송하다 메르스에 감염됐다.

그리고 다른 병원과 다르게 가장 많은 메르스 감염 환자를 내고도 단 한번의 응급실 폐쇄조치조차없던 삼성서울병원이 결국 비정규직인 환자이송 노동자 감염으로 부분폐쇄를 했다. 병원이 가장 홀대하고 무시했던 노동자의 감염 노출로 인해 병원이 폐쇄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미 누적되고 예견된 문제기도 하다. IMF때부터 시작된 병원 내 비정규직은 현재 보건의료종사자의 30%가 넘는다. 병원 간 경쟁이 심화되고 신증축과 대형화가 진행되면서 병원들은 과잉설비 투자에 대한 손실을 인건비 감소에서 찾으려 했고, 그 대책이 바로 병원인력을 외주하청으로 돌리거나 비정규직으로의 전환하는 것이었다. 현재 청소, 급식, 시설 관리 등을 하는 노동자들은 70%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병동업무를 보조하는 환자이송 등 진료보조 업무도 50% 이상이 비정규직이 된지 오래다.

환자가 아파 병원에 이송돼 와, 응급실에 들러 병동에 입원을 하고 치료식이나 병원급식을 먹고 퇴원할때까지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환자이송, 보안(안내)요원, 치료보조노동자, 급식노동자,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을 안 거칠 수 없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이 외주하청업체 직원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감염예방과 자기보호에 제외되어 있다. 환자와 ‘밀접 접촉’을 할 수 밖에 없는 병원 내 상시, 지속업무분야가 거의 외주하청업체에 맡겨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고용은 ‘간접’인데, 감염은 ‘직접’인 병원 노동자들이다.

병원 감염관리는 통합적이고 일원화돼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촘촘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통합적이고 일원화된 관리는 특히 병원인력 감염관리에 필수적이다. 병원 감염은 ‘사람’ 자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원 내 업무가 외주화 되면서 이들에 대한 감염관리가 이원화됐던 것이 이번 메르스 감염을 확산시킨 원인이 됐다. 병원은 우리가 고용의 책임이 아니니 감염관리에서도 제외시켜 버린 것.

병원 감염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병원 내 근무하는 모든 인력에 대한 주기적 교육과 정보제공 그리고 훈련 프로그램들이다. 관련 인력들이 감염예방을 위한 수칙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며 감염예방을 위해 필수적인 보호장비인 마스크, 장갑, 보호복 등이 모두 넉넉하게 지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감염될 수 있는 공간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고, 감염이 의심될 경우 적극적으로 관리체계에 보고하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와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면회 제한을 알리고 있는 삼성서울병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병원 내 비정규직들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현재 배제돼 있다. 교육과 훈련, 그리고 적절한 보호구, 감염에 노출 되었을시 보고할 대상, 그리고 후속조치 그 모든 것에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다. 병원 내 비정규직에 대한 감염관리 지원으로부터의 배제와 차별이 결국 메르스 사태에서 병원 감염을 확산시키고 지역사회 감염으로까지 확산될지도 모를 위험을 낳은 것이다.

문제는 이런 병원 내 감염관리와 인력 관리를 규제하는 법제도가 없다. 현행 의료법과 파견법이 그나마 관련 규정을 담고 있는데 의료인(의사, 간호사 등)과 의료기사(방사선과, 임상병리사 등)외에 병원 내 비의료인에 대한 인력 규정이 없기 때문에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속한다.

그나마 병원들의 감염관리에 대해 평가를 하고 이에 따라 ‘의료기관 인증’을 해 주는 ‘의료기관 인증평가제’가 있지만, 이 평가는 그 자체도 허술하기 짝이 없거니와 병원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민간기관이 해 짜고치는 고스톱이란 비판이 많다. 그런데 이 유일한 평가때도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아예 병원인력으로 카운트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감염관리 및 보호는 아무런 고려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병원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비율이 그 병원의 의료의 질과 수준을 나타내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판단해 이를 병원 평가시 평가 기준에 반영해야 한다고 수없이 지적했으나 정부정책에는 아무런 반영도 되지 못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 문제는 메르스와 싸우고 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반드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다.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이 병원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곧 환자의 건강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공간보다도 깨끗해 보이고 위생적으로 보이는 공간. 병원. 그러나 병원은 언제든 치료의 공간임과 동시에 감염의 공간이다. 그 번듯해 보이는 병원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 십가지 노동자들의 수고로운 노동이 함께 존재한다.

온갖 의료상업화와 영리화 정책 덕에 이제 호텔로비처럼 화려함까지 갖추게 된 대형병원 1층 로비 아래로는 영화 ‘설국열차’의 어느 장면처럼 제대로 된 감염예방과 보호장비도 없이 일하는 시설관리, 급식, 청소, 간병, 진료 보조 업무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메르스 감염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메르스 전과 후, 한국 보건의료제도가 달라져야 할 문제 중에 병원 내 비정규직 문제는 필수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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