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성난 화가>에서 유준상이 연기하는 ‘화가’는 범법자들에겐 저승사자와도 같은 무서운 존재다. 평소에는 도축업자 또는 화가로 살아가지만, 범죄자를 응징할 때에는 그의 숨통을 끊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를 도려내어 장기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이식을 해준다. 아이들에게는 ‘천사’와도 같은 따뜻한 존재지만, 범법자들에게는 그 자리에서 사형 집행을 하고는 장기까지 도려내는 ‘암흑의 천사’와도 같은 존재를 유준상은 연기하고 있다. 특히나 몸짓과 무표정한 얼굴로 연기하는 분량이 많아 대사가 많은 일반 영화를 소화할 때와는 다른 애로점을, 그의 연기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 배우 유준상 ⓒ박정환
- 보통 영화가 아니라 액션 영화라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찍으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영화를 찍는 내내 힘들었고, 심지어는 영화를 찍었다는 기억이 통째로 날아갔다. 작년에 영화를 찍었다. 그러다가 인터뷰를 하면서 영화를 찍은 기억이 되살아나 깜짝 놀랐다. 두 달 동안 몸을 만들었다. 몸만 만든 게 아니다. 무술도 익혀야만 했다. ‘액션 스쿨’ 친구들이 저랑 잘 아는 친구들이다. 아는 친구들이라 쉬엄쉬엄 익힐 수도 없었다.

영화 <전설의 주먹>에서 대역을 했던 친구가 이번 작업에도 함께했다. 그 친구를 봐서라도 열심히 했다. 한때는 ‘상업영화 액션도 아닌데 이렇게 열심히 해도 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찍으면 찍을수록 오기가 생겼다. 오기가 생겨서 더욱 열심히 참여하게 되었다. 감독님에게 넘어간 게 아닐까.(웃음)

제가 맡은 화가가 ‘천사’ 설정이다. 원래는 날개가 나오는 설정이었다. 감독님이 마지막까지 날개가 나온다고 했는데, CG 작업에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고 해서 날개를 포기하게 되었다. 화가가 천사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편집했다. 천사는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서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천사는 (사람 연기와 달리) 표정의 변화가 없다. 무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해서 힘들었다. 천사는 범법자를 잡아서 내장을 꺼낸다. 그런데 기술팀이 진짜 사람의 내장처럼 열심히 표현했다. 기술팀이 리얼하게 가야 해야 한다고 해서 내장 몇 개를 더 심어놓아서 더욱 힘들었다.”

- 천사의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천사는 범법자의 장기를 적출한다. 장기를 뺀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내장을 뺀다는 건 천사가 하는 행동이 아니다. ‘천사인데 잔인하게 죽여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 연기하면서도 힘들었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힘들었다. 감독님이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한 것 같다. ‘누가 누구를 벌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한 것 같다.”

-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나.

“감독님이 몇 년 전부터 알던 분이다. 제작 PD는 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PD가 제게 ‘선배님, 영화 한 번 보아주세요’해서 살펴보았다. (<성난 화가> 이전의) 영화가 어렵고 끔찍해서 힘들게 다가왔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영화를) 자꾸만 보게 되더라.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하는 심리가 궁금해서 감독님이 다음 영화를 만들면 계속 보았다. 어떤 영화제에서는 감독님과 제가 상을 받은 적도 있다. 함께 상을 받으면 돈독해지는 느낌이 있잖은가.

감독님의 작품을 보며 감독님이 작업하는 치열한 현장을 느끼고 싶었다. 시나리오 제의를 받았을 때 기꺼이 한다고 했다.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영혼이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묘하게 다음 영화가 기다려진다. 괴로워하면서도 보게 되는 게 감독님의 작품이다. 현장에서는 즐거웠다. 예산이 부족해도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찍을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영화를 찍다가 난관에 부딪힐 때 타협해서 찍으면 감독님이 생각한 구상은 온데간데없이 엉망이 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감독님은 (불리한 상황과 타협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안다. ‘저러면 안 될 텐데 왜 가만히 계시지’ 했지만, 그럼에도 이런 감독님의 기다림이 편하게 느껴졌다.”

- 그동안 제작비가 풍부한 영화를 많이 찍다가 제작비가 부족한 영화를 찍었다.

“알게 모르게 저예산 영화를 많이 찍었다.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만 다섯 편을 작업했다. 홍 감독님의 영화 제작비는 일억 원 미만이다. 홍 감독님의 영화를 찍으면서 단련이 되었다. 심지어는 스태프 다섯 명과도 찍어본 적도 있다. <성난 화가> 같은 작품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상업영화에서는 펼쳐보지 못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상업영화는 <성난 화가> 같은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인터뷰 2에서 이어집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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