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어느 정부도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다. KBS 사장으로 임명된 사람은 모두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실제 어떠했는지는 그간의 행적이 보여준다. KBS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무엇보다 사장 선임과 이사회 구성의 틀을 바꿔야 하겠지만 이것은 KBS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이기에 현재의 틀 속에서 가능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독립성 확보를 위한 그간의 논의와 실제적인 경험을 토대로 구성원이 함께 실효성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보도에 대한 경영진의 개입 문제가 표면화한 지 1년이 지났다. 경영진은 이 문제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KBS의 지난해 5월은 몹시 뜨거웠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관련 실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은 직을 사퇴한다는 긴급 기자회견에서 ‘뜻밖의 폭로’를 쏟아냈다. 길환영 사장이 청와대 지시 아래 보도와 인사에 사사건건 개입했다는 것이었다. 보도국장이 자신을 임명한 사장을 정면 저격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공공연한 비밀’처럼 여겨져 왔던 청와대 편향 보도의 민낯이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드러나 파장이 컸다.

▲ 2014년 5월 17일 KBS <뉴스광장> 보도

가장 먼저 마이크를 내려 놓은 것은 KBS 기자들이었다. 이후 각종 협회가 행동에 나섰고, KBS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갈라진 후 처음으로 힘을 모아 함께 싸웠다. KBS이사회는 지난해 6월 5일 길환영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가결했고, 청와대는 10일 그를 해임했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 폭로 이후 한 달여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최근 공개된 <KBS 2014사업연도 경영평가보고서>에서는 지난해 보도개입 사태를 언급하며 KBS이사회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들이 ‘보도독립성 보장’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시사기획 창> 같은 시사 프로그램을 KBS 편성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경영평가보고서는 KBS이사회가 위촉한 경영평가단이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2014년 한 해 동안의 방송 경영 전반에 대해 평가한 것이다.

1. 보도 : 빠지지 않는 세월호 오보… 실효성 있는 보도독립 장치 확보 필요

경영평가단은 “KBS는 2014년에도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신뢰도 1위의 언론으로 꼽혔다. 그러나 신뢰도지수가 떨어졌고 어느 해보다 안팎에서 보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다”며 세월호 참사 보도를 언급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지난해 4월 16일, KBS 역시 다른 방송사들과 마찬가지로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를 냈다. 또한 “투입된 경비함정만 81척, 헬기 15대가 동원됐고 200명에 가까운 구조 인력 등 육해공이 총동원돼 하늘과 바다에서 입체적 구조 작업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 투입된 수색인원은 16명이었다. 4월 18일에는 경찰의 무선교신 내용을 바탕으로 “선내 엉켜있는 시신 다수 확인”이라는 소식을 전했으나 이후 오보로 판명됐다.

4월 17일 <뉴스9> 보도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경영평가단은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구조 활동 독려...실종자 가족 위로> 리포트에서 대통령의 약속 장면, 박수 받는 모습을 강조한 반면에 더딘 구조 작업에 대한 가족들의 항의와 원망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지 않았다. 특히 영상에 배경음으로 들어간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가 빠졌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KBS는 당시 현장음 픽업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경영평가단은 “이전년도 경영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보도의 정확성 제고를 위해 KBS 보도본부는 2012년과 2013년에 ‘협업을 통한 정확성 강화’ 의지를 밝혔다. 협업을 통한 정확성 강화는 기자가 혼자서만 취재하지 않고 다른 팀원과 팀장까지도 크로스 체크하고 게이트 키핑도 팀별 선임기자 와 팀장, 부장으로 이어지는 2중, 3중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라며 “세월호 사고 보도 때 이렇게 시행이 되었는지 의문스럽다. 현지의 보고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영평가단은 “세월호 보도는 정확성 제고를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각별히 재난보도주관방송임을 강조해온 공영방송 KBS가 다른 방송사와 차이를 보이지 못했다”며 △정부·기관의 발표를 재확인하는 절차를 두고 사실 확인을 전담하는 인원을 두는 등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할 것 △속보에서 정확한 보도로 중점을 옮길 것 등을 권고했다.

보도독립성의 실현 여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지난해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폭로로 불이 붙은 ‘길환영 사장의 보도개입’이 어김없이 거론됐다. 경영평가단은 “당시 길환영 사장은 이를 부인했지만 상당수 여론은 그동안의 의혹이 확인된 것이라며 KBS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례로 지적했다”며 “독립적인 보도는 저널리즘 종사자라면 당연히 지향하는 목표다. 부당한 경영진의 개입과 간부의 지시로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반성과 이에 대한 제도 개선 요구가 일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KBS 보도는 정부가 설정한 의제를 따르고 정부가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각별히 대통령 보도는 저널리즘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보도에서는 청와대의 발표를 옮기고 성과를 과장하는 경우가 많다”, “KBS의 대통령 보도에서 논평은 드물고, 있다고 해도 대통령 발언과 청와대 발표의 내적 의미나 문제점 지적, 대안 모색이 아니라 발표내용에 대한 해설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등의 평가가 있었다.

경영평가단은 보도독립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를 조사대상국 197국 중 68위로 매긴 국제 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 결과를 언급하며 점차 언론자유가 축소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KBS 경영진은) 노동조합, 기자협회와 PD협회를 포함한 직능단체들과 함께 논의하고 중지를 모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권했다. 경영평가단은 “방송법 제46조 제1항은 이사회가 KBS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함을 명시하고 있다”며 KBS 최고의결기구인 KBS이사회에게도 ‘보도독립성 실현을 위한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 2014년 6월 11일 KBS <뉴스9> 보도

경영평가단은 “저널리즘은 모든 언론사에 배포되는 보도자료에서는 나오기 어렵다. 상당한 기간 발품을 들인 독자적 취재를 통해야 얻을 수 있다”며 <육군 28사단 윤일병 폭행사망사건> 보도, <고위공직자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 보도>, <시사기획 창-해외 부동산 추적보고서>, <추적60분-라돈의 공포> 등을 바람직한 저널리즘이 실현된 사례로 소개했고, 앞으로도 이 같은 보도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경영평가 보고서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인 종편채널 JTBC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경영평가단은 “오보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이 필수적이지만 오보인 것이 확인되면 즉시 사과하고 정정해야 할 것이다. 당당하게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매체를 더 믿을 만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수용자는 앞으로도 실수가 있으면 고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서 JTBC를 언급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생존자에게 무리하게 인터뷰를 시도해 비판받았던 JTBC는 손석희 보도 담당 사장이 바로 고개를 숙였고, 이후 200여일 동안 팽목항을 지키며 현장을 보도해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경영평가단은 “팽목항을 지키며 쪽잠을 마다 않고 유가족, 실종자 가족과 동고동락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해준 현장 취재기자들의 직업정신은 높이 살만했다”며 “메인뉴스 시간에 생방송으로 연결해 참사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한 열정과 노고는 충분한 수상감”이라고 한 국제앰네스티의 평을 옮겨 잘된 사례라고 소개했다.

2. 시사 : “시청자 관심에서 비켜나 있어… 시사 프로를 편성 중심에 둬야”

경영평가단은 “KBS의 시사 프로그램은 현재 편성 시간과 시청자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다. <시사기획 창>이 수요일 밤 10시, <취재파일 K>가 금요일 밤 11시 40분, <세계는 지금>이 토요일 밤 10시 30분 등 나름대로 노출도가 높은 시간대에 편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가 인지하는 ‘간판’ 시사 프로그램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KBS에 두드러진 ‘간판’ 시사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편성 요인과 함께 시사기능 미흡으로 인한 콘텐츠 경쟁력 약화와 관련이 높다고 판단된다”며 “인력과 예산의 확충, 혁신적인 기획력도 중요하지만 전혀 손색이 없는 ‘간판’ 시사프로그램을 육성하고 과감하게 프라임타임에 편성하여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영평가단은 KBS 시사 프로그램 중 <시사기획 창>, <추적60분>, <생방송 심야토론>, <KBS 파노라마>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지난해 총 33편을 방송했고 그 중 9편이 외부 기관 상을 수상한 <시사기획 창>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지향하는 것이 비해 “주제의 무게나 비판의 강도가 예전(과거 <시사기획 쌈>, <시사기획 KBS10>)만 못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미 FTA,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삼성의 나라, 두 얼굴의 진실> 등 정치권력, 경제권력을 감시하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한 과거에 못 미친다는 설명이다.

▲ 2014년 6월 24일 KBS <시사기획 창>

지난해 8월 방송된 <4대강에게 안부를 묻다>는 ‘뒤늦은 보도’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4대강 사업이 끝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 방송된 이 내용은 “다른 여러 프로그램에서 여러 차례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좀 더 일찍, 문제가 커지기 전에 제작, 방송되었다면 의미가 컸을” 것으로 보여 시의성 측면에서 아쉽다는 설명이다. 경영평가단은 “시의성 있는 비판은 기획력뿐만 아니라 결기도 필요하다. 시의성을 놓치면 프로그램의 영향력도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추적60분> 역시 예전보다 “추동력이 다소 약해진 듯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추적60분>은 김인규 사장 시절이었던 2010년 6월 보도본부로 이관됐는데, 당시 KBS PD협회는 ‘아이템 조정과 원고 수정이 보다 용이한 보도본부 아래에 두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한 바 있다. 경영평가단은 <추적60분>이 2013년 10월 TV본부로 복귀한 이후, 2014년 한 해에만 세월호 참사(<세월호 173톤 조작 미스터리>), 노동자의 현실(<파업손배소의 덫>, <삼성전자 수리기사의 죽음>) 등을 방송해 “사회적 문제를 비교적 충실히 다뤘다”고 보면서도 “공영방송 정체성을 나타내는 저널리즘 부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KBS의 대표적인 시사토론 프로그램 <생방송 심야토론>은 “주제 선정, 패널 구성, 사회자 진행에서 전반적으로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선 이슈 면에서는 정부의 의제에 맞춰 선정한 경우가 많았다고 보았다. 이를테면 <규제개혁, 바람직한 방향은>(3월 22일) 방송에서는 중립적이지 않은 ‘개혁’이라는 표현을 써 “규제는 당연히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고 어떻게, 어느 정도만 할 것인지 논하면 된다는 식으로 토론의 틀이 설정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출연자도 경제부총리, 전경련 부회장, 경영학과 교수, 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 등으로 적절한 규제의 필요성이나 규제 폐지의 위험성을 논할 만한 토론자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경영평가단은 아이템 선정과 패널 구성에 경영진이 개입했다는 <심야토론> CP의 주장은 거론한 후 “<심야토론>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제작자율성 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문제의 핵심을 중심으로 토론이 전개될 수 있도록 이끄는 사회자의 확보, 그리고 시청자 의견을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은 <심야토론>이 한국의 대표 시사토론 프로그램으로 가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라고 말했다.

4대 스페셜(<과학스페셜>·<역사스페셜>·<환경스페셜>·<KBS스페셜>)이 사라지고 2013년 4월 봄 편성에서 신설된 <KBS파노라마>에 대한 평가는 가혹했다. 경영평가단은 “다큐멘터리 형식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딱히 어떤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KBS파노라마>의 성격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히 정할 필요가 있다. 시청자에게는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고 제작자에게는 제작의 기본 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시사 보도 기능이 약하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경영평가단은 “총 73편 중 시사성 주제를 다룬 프로그램은 <세월호를 기억하라>, <무능과 부패의 네트워크, 관료마피아>, <세월호 참사 100일 기획 2편- 고개 숙인 언론> 등 17편 정도”라며 “<KBS파노라마>의 전신 <KBS스페셜>이 시사적 주제를 자주 다뤘던 것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3. 경영 : 당기순이익 34억 발생

▲ 최근 발행된 KBS 2014사업연도 경영평가보고서
이번 보고서에는 지난해 KBS의 경영실적 및 재무상태 안정성에 대한 평가도 포함됐다. KBS는 총수입 1조 5618억을 달성하고 총비용 1조 5584억원을 집행해 당기순이익 34억원이 발생했다. 이는 전년대비 20.8% 감소된 수치다. 2014년 말 KBS 재산현황은 자산 1조2853억원, 부채 6401억원, 자본 6452억원으로 2013년 말에 비해 자산은 762억원, 부채는 537억원, 자본은 225억원이 감소했다.

경영평가단은 “KBS가 어려운 여건에서도 흑자경영을 달성하고 단기적으로나마 재무안정성을 확보한 점은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그런 성과의 일부분은 감가상각비로 조성된 재투자 재원으로 차입금을 상환하고 투자를 축소해 달성된 것이어서 장기적으로는 경쟁력 약화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KBS는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등 상당한 자구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큰 틀에서 조직을 재정비하고 과다한 상위직급 인력구조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은 더 필요하다”며 “성과평가에 따른 능력급제를 전 직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상위직의 직무재배치를 과감하게 추진하고 신입 또는 경력사원 채용을 늘려 경륜과 창의성이 한데 어우러지는 역동적 조직이 되어야겠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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