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과 방송법 시행령, KBS 정관에 따라 작성돼 매년 공개되는 ‘KBS 경영평가 보고서’ 논의를 두고 KBS는 올해도 홍역을 치렀다.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KBS 경영평가단과 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가 보고서에 어떤 내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다. 경영평가단이 세월호 참사 보도 지적, 보도 독립성 위한 제도 요구, 시사 프로그램 양적·질적 확대 등의 문안을 넣은 것을 두고 여당 추천 다수이사들이 심하게 반발해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올해도 경영평가단이 작성한 원안은 KBS이사회의 제안과 지적사항이 반영돼 5월 25일 한 차례 수정됐다. 여기서도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아 4인 위원회(경영평가 위원 2명, 여야 이사 각 1명)를 꾸려 최종안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총 14곳이 수정됐다. 수정된 내용을 종류별로 살펴보면, 문구 수정 5번, 경영평가단이 작성한 원안으로의 변경 1번, 단어 삭제 1번, 인용 단락 삭제 3번, KBS이사회 추가의견 반영 1번, 단어 변경 1번 등이다. 내용을 보면, 전반적으로 ‘비판’의 강도가 완화됐다. KBS의 편향성을 지적하거나 내부에서 일어난 민감한 일을 묘사할 때는 좀 더 ‘부드러운’ 표현으로 바뀌었으며, KBS의 보도 행태를 가늠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인 ‘통계’가 3개나 삭제됐다.

◇ 이승만 정부 망명 보도 후폭풍 묘사 ‘약화’

지난해 6월 24일 KBS <뉴스9>는 <“이승만 정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 망명 타진”>이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이승만 정부가 6·25 전쟁 당시 일본 정부에 6만명 망명 의사를 타진했고, 일본이 한국인 피난캠프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의 문서를 바탕으로 한 단독보도였다. 보수단체들이 1인 시위를 하고 <공영방송 KBS의 정상화를 위한 기자회견>을 여는가 하면, 조선일보는<KBS가 이런 報道(보도) 하라고 시청료 내야 하나>라는 칼럼으로 ‘이승만 보도 때리기’에 나섰다.

금세 ‘뜨거운 감자’가 된 이승만 망명 보도는 결국 큰 후폭풍을 맞아야 했다. 원 기사는 물론, 관련된 인터넷뉴스까지 삭제됐다. 이후 KBS는 이승만기념사업회의 주장이 주를 이루는 반론보도를 내보낸 데 이어, 보도국 국제부와 인터넷뉴스국의 주간·국장·부장 4명이 교체되는 인사를 단행했다.

2015년 6월 24일, 이승만 망명 정부 단독보도 이후 보수세력의 거센 항의를 받았던 KBS는 7월 3일 반론보도를 내보냈다.

KBS이사회도 이 논란의 당사자였다. 뉴라이트 역사학자로 유명한 이인호 이사장은 ‘보도의 정확성 제고 방안에 관한 보고’를 듣겠다는 명목으로 긴급 이사회를 소집했고, 이날 이사회에서는 여당 추천 다수이사들의 ‘성토대회’가 열렸다. 야당 추천 소수이사들은 ‘보도’에 대해 이사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압박이 될 수 있다며 내용·절차적으로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으나 소용없었다. 더구나 여야 3:2 구조 탓에 설득력 떨어지는 심의를 해 온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해당 보도를 문제 삼으며 법정제재 ‘주의’(벌점 1점)를 주면서 논란은 더 가열됐다.

2015사업연도 경영평가 보고서에는 이 같은 맥락이 충분히 나타나 있지 않다. 경영평가단이 작성한 원안에는 △방통심의위에서 주의 처분을 받은 점 △이승만 망명정부와 관련된 역사적 논쟁은 많은 학설이 있는 점 △다른 정부 문서 등 심도 있는 취재 및 객관적 자료가 뒷받침되지 않아 오해가 발생한 점과 함께 “보도국 국제주간과 국제부장 등 일부 보직자에 대해 사실 확인이 불충분했던 데스킹 과정의 책임을 반영한 인사가 이뤄졌으며 이 보도와 관련한 나머지 후속조치들은 ‘과잉’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는 점이 기술돼 있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최종안에서 “(…) 나머지 후속조치들은 논란을 야기시켰다”로 정리됐다. 유사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172쪽에서도 당초 회사의 인사조치가 ‘과잉으로 보인다’이라는 표현은 ‘논란을 야기시켰다’로 달라졌다.

◇ 보도 ‘편향성’에 대해선 쉿?

수년째 지적되어 오고 있는 KBS의 보도 편향성에 대한 언급을 아꼈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경영평가단의 원안(42쪽)은 2015년 11월 16일부터 29일까지 민중총궐기 관련 KBS 보도에 대해 “보도량은 14건으로 지상파 3사 중 가장 많았다”면서도 “KBS는 ‘시민피해’ 프레임을 많이 사용했다. 공정성을 사안에 대해 균형 잡힌 관점을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개념으로 본다면 위 기간 동안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한 KBS 메인뉴스 보도는 일정한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종안에는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노조들의 요구 사항의 적법성 여부에 대해서는 시비의 소지가 있었고 시민들의 피해가 있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시민 피해 프레임은 일정 부문 타당성이 인정된다”며 KBS의 보도를 옹호하는 내용이 추가됐고, “일정한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표현은 “균형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로 달라졌다.

2015년 11월 14일자 KBS <뉴스9> 민중총궐기 보도

유사 내용을 다룬 176쪽에서도 “공정성을 사안에 대한 균형된 관점을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개념으로 본다면 위 기간 동안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한 KBS 메인뉴스 보도는 일정한 편향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원안의 문장은 사라졌고, ‘편향성’은 ‘균형성’이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 민언련·미디어오늘 통계 누락

KBS의 보도 흐름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언론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과 미디어비평지 미디어오늘의 통계가 누락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경영평가단이 작성한 원안과 KBS이사회의 제안이 반영된 수정안에도 존재했던 민언련 통계 2개는 최종안에서 빠졌다.

획일화된 역사관 주입, 친일과 독재 미화, 헌법정신과 국제인권규약 조항 및 UN의 역사교육 권고 위배 등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KBS가 어떻게 보도해 왔는지 알 수 있는 통계가 누락된 것이다.

우선, 175쪽에서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국정화를 발표한 10월 12일부터 26일까지의 초기 동안에 KBS의 보도량은 22.5건으로 다른 지상파 방송사와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국정화 반대 여론(야당 입장 제외) 보도는 1.5건(6.7%), 국정화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는 1건에 그쳤다””(링크)는 내용이 사라졌다.

176쪽에서는 “2015년 11월 16일부터 29일까지 민중총궐기 관련 KBS 보도량은 14건으로 지상파 3사 중 가장 많았다(MBC 7.5건, SBS 7건). 14건의 헤드라인 프레임은 ①정부·여당·경찰 비판 프레임 0.5건, ②집회참가자·야당 비판 7건, ③양비론 2건, ④판단불가 4.5건이었다(민주언론시민연합, 2015.12..)”(링크)는 통계가 빠졌다.

KBS가 박근혜 대통령 보도를 얼마나 했는지 알 수 있는 미디어오늘의 전수조사 결과(링크) 역시 원안, 수정안에서 살아있다가 최종안에서 빠졌다. 미디어오늘은 2015년 1월 1일부터 7월 10일까지 191일간 <뉴스9>를 전수조사해 박근혜 대통령 보도가 155건(하루 평균 0.81건)이라고 밝혔다. 또한 톱 뉴스부터 3번째 꼭지까지 대통령 보도로 채운 경우가 31.6%(39건)를 차지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2015년 6월 25일자 KBS <뉴스9> 톱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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