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_ 지난 10일 본지 박장준 기자가 쓴 '절박한 수신료 인상? 시청자는 이미 지상파에 4000원 넘게 낸다'는 분석 기사에 대해 공공미디어연구소 정미정 연구팀장이 반론을 보내왔다. 정미정 연구팀장은 본지 기사가 지닌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이해는 하지만, 지상파 문제에 있어 비판해야 할 지점과 논점을 달리 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을 '사업자' 관점에서 비판한 박장준 기자의 분석에 정미정 연구팀장은 '제도'의 의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상파라고 하는 무료 보편 서비스가 그 공적 책임과 기능을 보다 생산적으로 수행해나가길 기대하며, 논쟁에 깊이를 더할 또 다른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기대해본다.

이 글은 지난 10일 미디어스 기사 ‘절박한 수신료 인상? 시청자는 이미 지상파에 4000원 넘게 낸다’를 반대하는 내용이다.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글과 해당 기사의 궁극적 목적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기사에 담겨 있는 의미를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왜 그러한 표현이 나왔는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잡아야 할 것이 있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디어스 기사가 말하는 내용과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현재 지상파방송사가 우리 사회의 공공서비스 영역의 주체로서 제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판받아야 함에는 동의하지만 지적한 주된 논점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청자가 지상파에 4000원 이상을 납부하고 있단 것에 대하여

재송신 논란과 관련한 본격적인 소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지상파방송사업자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는 일종의 공생관계에 있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케이블 방송이 시작된 이래 10년 넘는 기간 동안 이렇다 할 양측의 갈등은 없었다. 케이블방송사업자에게 지상파 콘텐츠는 사업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으며 지상파방송사업자에게 난시청을 극복하고 커버리지를 확대하는데 케이블방송사업자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상파콘텐츠를 이용, 사업을 영위해 나가며 성장한 케이블방송사업자는 이제 지상파방송사업자와 경쟁관계에 이르게 되었다. 아울러 다른 신규 플랫폼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지상파의 위상은 감소하게 됐다.

동시에 오랜 기간 동안 무료로 제공하던 콘텐츠를 유료로 전환한다는 지상파방송사업자들의 결정은 케이블방송사업자들의 큰 반발을 사게 되었다. 또한 지상파의 부실한 직접수신환경은 케이블방송사업자가 난시청해소를 위한 자신들의 재송신을 ‘보편적 서비스’의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후 소송이 끊이지 않았고 여러 차례의 블랙아웃이 있었다.

하지만 2009년 소송에서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재송신행위는 지상파방송에 대한 수신보조행위와는 다르다고 판결되었다. 케이블방송사업자들의 재송신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명백한 사업행위라고 판명된 것이다. 단적인 예로, 케이블방송사업자를 포함한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지상파방송 채널 사이사이에 홈쇼핑 채널을 배치하여 이득을 취하고 있다. 2014년 홈쇼핑의 유료방송 송출수수료는 1조원을 돌파했다. 명백하게 지상파콘텐츠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다.

유료방송이 지상파콘텐츠를 이용하여 벌어들인 수익을 분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CPS는 그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시청자가 유료방송사업자를 경유하여 지상파에 지불하는 금액’으로 단정 짓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지상파콘텐츠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이 유료방송 대기업 주주들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게 더 나은 지도 따져볼 문제다. 이 수익은 콘텐츠를 생산한 지상파방송사업자에게 분배되어야 하며 콘텐츠의 제작에 재투자되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CPS는 유료방송가입자가 아니라, 지상파콘텐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 유료방송사업자가 지상파방송사업자에게 분배하는 대가이다.

VOD 가격 비판에 대하여

이 문제를 거론한 이유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 VOD 가격인상 문제를 따져보자면서 가격규제가 전무하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양에 따라 책정된다. 사업자가 정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비싸면 결국 가격이 조정될 것이다. 잘 팔려서 수익을 낸다면 적절한 가격을 책정했다고 볼 수도 있다.

미디어스는 VOD 이용과 유료결제가 늘어날 것을 고려하여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앉아서 버는 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콘텐츠를 제작한 측이 판매 대가를 정당하게 얻는 것을 ‘앉아서 버는 돈’이라는 표현으로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만들어진 콘텐츠는 추가 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이는 방송콘텐츠뿐만이 아니라 미디어콘텐츠상품이 가지는 특성이다. 그렇다고 추가 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제로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반드시 지불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격은 시장에서 결정될 문제다. 다만 합리적인 가격의 결정이 이루어지려면 경쟁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조건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수신료 인상에 대하여

수신료 인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수신료를 올려야 지상파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묻고 싶다. 그럼 수신료는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가? 말하고 싶었던 게 이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비판하고 싶었던 대상도 수신료 자체는 아닐 게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면 이제 수신료는 인상해야 한다.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 이용하더라도, 그들의 요구가 다른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더라도 수신료는 이제 인상해야 한다. 이유는 공영방송의 재원이 국민으로부터 근거할 때만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재원규모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수신료만 달랑 올려서 될 문제는 아니다. 올해는 공영방송의 이사진이 전면 교체되는 해이다. 거버넌스의 개편 논의를 수신료 논의와 함께 진행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낼 때라고 판단한다.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거버넌스와 수신료 현실화는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우리가 잃는 것은 ‘얄미운’ 지상파사업자가 아니다

가장 나쁜 시장은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동통신시장에서 이를 경험하고 있다.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시장에서 소비자의 이익은 없다. 사업자의 이윤만 안정적으로 획득될 뿐이다. 방송시장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 방송시장에서 90% 넘는 가구가 비용을 지불하고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무료방송과 유료방송 사이에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료방송의 영역을 담당하는 주체가 지상파방송사업자다. 아울러 공공플랫폼의 영역이기도 하다. 상업화의 기조가 점점 거세져 가는 상황에서 날로 축소되는 공공영역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이는 지상파방송 ‘사업자’ 이윤 감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공서비스로서의 지상파방송 ‘제도’ 위기인 것이며 이 위기는 시청자의 이해와 민주주의에 직결되는 문제다.

유료방송과 경쟁할 수 있는 무료방송의 영역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는 게 마땅하다. 시청자들이 지상파를 떠날 수 있다. 지상파는 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잃는 것은 ‘얄미운’ 지상파사업자가 아니고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다치는 것은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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