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관의 통신 감청과 사찰이 날로 교묘해지는 상황이어서, <사이버사찰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14년 경찰, 검찰, 국정원, 군 등 수사기관이 감청한 전화번호 수는 총 5846건이었다. 자체적인 감청 장비를 사용한 감청 비율은 제외된 수치다. 위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기지국 수사 또한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의 영장 없이 국민 4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숫자의 전화번호가 수사기관에 넘어갔다.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 이하 미래부)는 지난 21일 기간통신사업자 74개, 별정통신사업자 42개, 부가통신사업자 52개 등 총 169개 전기통신사업자가 제출한 2014년 하반기 통신제한조치(감청) 협조와 통신사실확인자료 및 통신자료 제공 현황을 집계해 발표했다.

미래부는 ‘통신제한조치’가 문서 기준으로는 145건(337->192건), 전화번호 기준으로 641건(2492->1851건) 각각 감소했다고 밝혔다.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건수’ 또한 문서 기준으로 4917건(13만20700->12만7153건), 전화번호 기준으로 259만35건(673만4543->414만4508건) 감소했다는 것이 미래부의 설명이다. 다만 ‘통신자료 제공 건수’만 문서 기준으로 2만8888건(47만9623->50만8511건), 전화번호 기준으로 219만5478건(474만7043->694만2521건) 증가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닌 숫자가 의미하는 내용이란 반론이 제기됐다.

국정원의 전화번호 수 감청 93.7% 점유

진보네트워크센터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으로 구성한 사이버사찰긴급행동은 미래부의 발표 중 먼저 ‘국정원 감청’ 수치에 문제를 제기했다.

▲ 2014년 하반기 감청 등 제공현황(자료=미래부)

미래부의 자료에 따르면, 감청이 문서건수(592->570건)나 전화번호/아이디수(6032->5846건)에서 소폭 줄어들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국정원 감청 비율은 여전히 높다. 2014년 하반기만 놓고 봤을 때, 192건 중 국정원은 119건(69.9%)을 기록했다. 전화번호를 기준으로 하면1851건 중 1736건(93.7%)이 국정원의 감청이었다.

이 같은 수치는 통신사업자가 제출한 자료만 포함된 내역이다. 사이버긴급행동은 “국가정보원이 자체적인 감청 장비를 이용해 직접 집행하는 감청 현황은 제외됐다”며 “그런 점에서 전체적인 감청 규모가 얼마나 이를지 짐작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범죄수사를 담당하지 않는 국정원이 이렇게 많은 감청을 집행하면서 제대로 된 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의 감정이 대폭 상승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경찰은 2012년 139건의 감청을 진행했으나 2013년에는 96건, 2014년에는 무려 301건의 전화번호/아이디에 대해 감청을 실시했다. 전년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사이버긴급행동은 “경찰의 감청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지국 수사’ 폐해 여전…문서 1건당 44.2건의 전화번호 넘어가

수사기관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수사 대상자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받는다. 통신 사실 확인자료는 수사대상의 상대방 전화번호 및 통화일시·시간 등 통화사실과 인터넷 로그기록(IP주소) 등이 포함 된다. 미래부의 자료에 따르면, 이 같은 통신사실확인자료 역시 문서건수(26만5859->25만9184건)와 전화번호/아이디수(1611만4668->1028만8492건) 역시 소폭 감소했다.

▲ 2014년 하반기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현황(자료=미래부)

그러나 주목해야할 대목은 수치 감소가 아니라 경찰의 통신 사실 확인자료 제공현황이다. 경찰은 2014년 하반기 기준, 9만1625건의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제공받았다. 그런데 문서 1건당 전화번호수가 무려 44.2건에 달했다. 이에 대해 사이버사찰긴급행동은 “여전히 한 개의 문서로 수십 개의 전화번호를 쓸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인망식 ‘기지국 수사’가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발신기지국 위치추적자료로 수사하는 것은 끊임없는 논란을 야기해왔다. 범죄와 전혀 상관 없는 이들의 통화 내역이 같은 발신기자국 내에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기관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에서 ‘돈봉투’ 살포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은 관련 사안을 조사한다며 이통 3사에 가입자 전체를 대상으로 당일 행사장 주변 기지국을 거쳐간 659명의 통화기록을 무단 조회했다. 당시 취재차 있었던 기자들의 통화기록이 검찰로 넘어가면서 논란이 야기됐었다.

법원 영장 필요없는 ‘통신자료’…국민 4명당 1명 통신자료 수사기관에

사이버긴급행동은 ‘통신자료 제공 건수’가 늘어난 점에도 의구심을 표했다. 통신자료는 전기통신사업법에 의해 영장없이 제공되는 이름, 아이디, 주민등록번호 등을 일컫는 자료들이다.

사이버긴급행동은 “2014년, 100만1013건의 문서와 1296만7456건의 전화번호가 수사기관에 제공됐다”며 사상 최대치라고 지적했다. 2013년에는 문서는 94만4927건, 전화번호 수 957만4659건이었다. 1년 새 1.4배 증가한 것이다.

▲ 2014년 하반기 통신자료 제공 현황(자료=미래부)

사이버긴급행동은 “포털의 무영장 통신자료 제공이 2012년 11월경부터 중단되고 압수수색으로 대체됐음을 생각하면 이 수치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며 “2014년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국민 4명당 1명, 경제활동인구 2명당 1명 꼴로 통신자료가 수사기관에 넘어갔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사상 필요성이 해를 거듭할수록 급증하는 것인지 아니면 영장없이 제공된다는 허점을 이용해 수사기관의 오남용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사이버긴급행동은 이번 통계와 관련해 “통신비밀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하며 “국가정보원의 감청 권한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법원과 국회의 감청 통제가 강하될 필요가 있다. 통신사실확인자료와 관련한 저인망식(기지국) 제공을 제한해야 한다. 통신자료 제공은 즉각 법원의 통제 하에 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같은 문제의식을 담아 국회에 입법청원된 <사이버사찰금지법>을 국회에서 적극 수용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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