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세월호 추모 집회 때 서울 광화문 일대에 6겹에 달하는 차벽을 세워 ‘과잉진압’ 비판을 받자 지난 19일 “집회 중 (시위 참가자들이) 갑자기 도로로 뛰어나와 진출하기에 급박한 위험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해명은 거짓말이었다. 416연대가 20일 공개한 경찰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추모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촘촘히 차벽을 쳐 시민들의 통행을 막을 계획을 수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4월 18일 오후 5시 경 서울 광화문 일대 모습 (사진=미디어스)

416연대는 20일 열린 <경찰당국의 416 1주기 추모 탄압 규탄 및 시민 피해상황 발표 긴급 기자회견>에서 시민 제보로 얻은 경찰 문건을 공개했다. 해당 문건에는 4월 18일 서울 주요 도심에서 일어나는 행사와 경찰의 대응이 담겨 있다. 경찰은 오후 1시부터 164개의 부대를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고, 집회가 끝나기에 앞서 이미 총 477대의 차벽과 101개의 안전펜스를 설치해 두었다.

경찰은 19일 기자회견에서 전날 집회를 ‘불법·폭력 시위’로 규정한 후 “집회의 기본 방향 자체가 청와대로 가 인간띠를 잇겠다는 것이었고 집회 중 갑작스레 도로로 뛰어나와 진출하기에 급박한 위험으로 판단했다”며 “차벽은 시위대가 도로를 본격적으로 점거한 오후 4시 30분 이후에 설치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잇따른 연행 때문에 집회가 급히 마무리됐던 오후 4시 30분 경, 6겹의 차벽은 이미 쳐져 있는 상태였다.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를 점거한 것이 아니라 길을 광화문으로 나가는 길을 모두 차단했기에 사람들이 도로에 주저앉은 것이다.

“경찰 차벽은 ‘급박하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쓰는 최후의 수단”

경찰이 치밀한 사전 계획 아래, ‘급박한 위험 대비’가 아닌 시민들의 통행을 막기 위해 차벽을 쳤다는 것은 경찰 문건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문건에는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도심 거점에 어느 정도의 인력을 투입하고, 몇 m까지 막을 것인지가 상세히 기재돼 있다. 차벽은 유가족들이 시민들과 만나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던 광화문 누각을 비롯해 조계사 앞, YMCA~젊음의 거리, 광교북단~보신각, 종로구청, 미 대사관, 일 대사관, 사직터널 서쪽까지 20곳이 넘는 곳에 촘촘히 설치됐다.

▲ 416연대가 18일 집회에 참가했던 시민으로부터 제보 받아 20일 공개한 경찰 문건 (사진=416연대)
▲ 416연대가 18일 집회에 참가했던 시민으로부터 제보 받아 20일 공개한 경찰 문건 (사진=416연대)

세월호 집회 감시대응팀이 발표한 <세월호 집회 인권침해 감시 보고서>에 따르면 18일 경찰이 보여준 모습은 “점령 수준”이었다. 감시대응팀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시민들, 경복궁역과 안국역 일대 주빈들은 사실상 경찰에 의해 봉쇄된 거리와 인도로 갈 수 없었다. 종각역과 안국역의 경우 출입구까지 봉쇄돼 지하철 이용 승객마저도 통행이 불가능했다”며 “지하철 출입구를 봉쇄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국민의 통행권을 침해하는 위헌, 위법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특히 2011년 6월 헌법재판소에서 7:2로 ‘위헌’ 판결이 난 차벽을 무분별하게 설치한 경찰의 행태를 강력 비판했다. 감시대응팀은 “4월 16일, 4월 18일 경찰의 차벽 설치는 ‘위헌’이며 ‘불법’이고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단이다. 차벽은 모든 통행을 금지하는 전면적 통재행위이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봉쇄조치”라며 △개별적인 위법행위에 대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만을 취하는 것이 원칙이고 △차벽 설치는 개별적 집회의 금지나 해산만으로는 방지할 수 없는 급박하고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취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6조 1항에 따라 집회 봉쇄 조치를 했다는 경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집회 봉쇄 조치가 적법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해지려고 할 경우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입히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기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할 경우라는 요건에 해당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경찰관직무행정법 1조 2항이 규정하는 것과 같이 경찰권 행사는 ‘그 직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행사돼야 하며 이를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요건도 준수해야 한다”며 “이러한 요건에 비추어 볼 때 경찰의 차벽 설치와 이동차단 등의 조치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불법”이라고 꼬집었다.

4월 16일, 18일 집회 현장에 동행했던 세월호 유가족 법률대리인 박주민 변호사 또한 “18일 차벽은 16일 차벽을 대부분 유지한 상태였다. (경찰은) 마치 서울광장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차벽을) 쳤다는 것처럼 얘기했지만, 16일 쳤던 걸 온전히 둔 상태에서 낮 1시부터 보강하고 있었다”며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다는 요건 자체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한 박주민 변호사는 “헌화, 추모는 집시법의 적용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차벽 설치가) 적법한 것인 양 얘기하고 있고 시민들의 저항에 대해서만 불법이니 엄단하겠다고 이야기한다”며 “경찰과 국가가 법을 집행할 때에도 요건과 절차,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를 준수해야 한다”고 전했다.

▲ 18일 세월호 추모 집회 이후 서울 도심 곳곳에는 경찰 차벽이 꼼꼼히 설치되어 있었다.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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