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14일자 BBC의 민중총궐기 보도

최근 몇 년 중 가장 규모가 큰,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거리집회에서 공권력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경찰은 보수적인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최루가스가 섞인 물대포를 쏘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집회에는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다. 오늘 집회에는 대통령의 친기업적인 정책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등을 포함해 여러 그룹이 함께 했다. 다른 한편은 한국의 과거 독재를 미화하는 국정 역사교과서에 반대하는 무리였다.

다수의 참가자들은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공권력은 청와대로 향하기 위해 경찰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려고 시도한 일부 시민들에게 최루가스를 쏘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2년이 지났다. 그는 고용주들에게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는 더 많은 가능성을 줌으로써 노동시장을 더욱 유연하게 만드는 논쟁적인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2015년 11월 14일 BBC 보도 ‘서울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다’ (원문 보기)

14일 오후,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 등 도심에서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및 노동개혁 등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 10만여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6만 8000여명)이 광장에 모여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가 열리기 전부터 각 부처 장관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불법 폭력시위는 엄벌하겠다’고 공표한 만큼, 이날 경찰의 진압 강도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250여개 중대 2만 2000여명의 경력이 투입됐고, 경찰버스 700대와 차벽 트럭 20대는 시위대뿐 아니라 시민들의 발마저 묶는 ‘벽’으로 기능했다. 경찰은 행진 시작 3시간 여 전부터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내린 차벽을 세웠고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 물대포를 반복해서 직사했다. 또한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버스를 전복시키지 못하도록 바퀴 틈에 실리콘을 발랐고, 버스에 올라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식용유를 뿌렸다.

경찰의 ‘강경진압’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 4월 18일 열린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 때도 물 3만 3200리터, 파바(물에 타는 최루액) 30리터를 써 비판 받았던 경찰은, 14일 하루에만 물 18만 2100리터, 파바 431리터를 사용했다. 캡사이신과 유색물감도 각각 651리터, 120리터 쓰였다. 7개월 새 살수량은 5.5배, 최루액은 14.7배 늘었다. 줄기차게 쏘아 댄 물대포 때문에 시위에 참가한 농민 백모씨는 중태에 빠졌다.

국제앰네스티는 “경찰이 시위대를 대상으로 무분별하게 무력을 사용한 것으로 보여 참담하다”며 “경찰 차량을 이용해 거대한 차벽을 설치하고 공격적으로 물대포를 사용하는 것은 결국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고 꼬집은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신 BBC조차 ‘민중총궐기’를 보도하면서 경찰의 ‘강도 높은 진압’에 주목했다. 그러나 공영방송 KBS, MBC를 비롯해 지상파 3사는 주말 메인뉴스에서 경찰의 위법적인 대응을 지적하기보다는, 공권력과 시위대의 ‘충돌’ 프레임 안에서 차벽을 뚫고자 한 일부 시위대들의 ‘폭력성’을 강조했다.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 때 보도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버스 부수는 시위대의 ‘폭력’은 있지만, 경찰 진압의 ‘위법성’은 없는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14일자 KBS <뉴스9>, SBS <8뉴스>, MBC <뉴스데스크> 보도

민중총궐기를 바라보는 방송 3사의 시각은 한 방송사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일치했다. 집회 당일이었던 14일, KBS <뉴스9>·MBC <뉴스데스크>·SBS <8뉴스>는 ‘도심’, ‘대규모 집회’, ‘충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유사한 제목으로 해당 소식을 전했다.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경찰 버스를 부순 시위대의 폭력은 있었으나, 차벽 설치와 물대포 사용의 위헌·위법성이나 ‘과잉진압’, ‘강경진압’ 등의 표현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부 시위대가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경찰 버스를 부숩니다. 밧줄을 연결해 버스를 끌어당기기도 합니다. 경찰도 살수차와 최루액을 동원해 저지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 양측에서 부상자가 발생했고, 집회 참가자 일부가 연행됐습니다.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을 막기 위해 경력 2만 명을 투입하고, 차벽을 설치한 경찰은 불법폭력행위자에 대해선 끝까지 추적해 검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KBS <뉴스9> (▷링크)

“집회 참가자들이 바퀴에 밧줄을 묶고 경찰 버스를 끌어내리려 시도합니다. 경찰들이 물대포와 최루액을 쏘며 시위대를 밀어냅니다. (…) 일부 참가자들이 청와대 방향 행진을 시도하면서 이를 막는 경찰들과 충돌했습니다. 경비 인력 2만 2천 명을 광화문 일대에 집중 배치하고 대응한 경찰은 폭력 시위 혐의로 참가자 10명을 연행했습니다” - MBC <뉴스데스크> (▷링크)

“시위대는 청계광장 교차로에 설치된 경찰 차벽을 해체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밧줄로 경찰 버스를 6대를 끌어냈습니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에 대해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캡사이신 용액을 넣은 물대포와 소화액을 쏘며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성군 농민회 소속 70살 백 모 씨가 머리를 다쳐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지는 등 경찰과 시위대 양측에서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집회 시위 현장에 경력 2만 2천여 명을 투입한 경찰은 과격 시위 혐의 등으로 10여 명을 연행했다고 밝혔습니다” - SBS <8뉴스> (▷링크)

MBC, SBS가 집회 당일 여러 대학에서 논술시험이 치러졌으나 도심 집회와는 장소와 시간이 많이 겹치지 않아 큰 문제가 벌어지지 않았다고 보도한 것과 달리, KBS <뉴스9>는 <서울 시내 교통 마비에 논술 수험생 발 ‘동동’> 리포트를 통해 애꿎은 수험생만 피해를 봤다고 보도했다. <뉴스9>는 “앞서 보신 대규모 집회로 시내 교통이 마비되는 바람에 시험을 치르지 못한 학생까지 생기고 말았다”며 한 학교에서 시험을 치른 뒤 다른 학교 고사장으로 가려다가 교통 체증으로 시험을 치르지 못한 학생 사례를 소개했다.

정부의 폭력시위낙인은 사실, ‘강경진압비판은 주장?

3사 메인뉴스는 정부의 주장대로 ‘폭력시위’라는 말을 고민 없이 사용했고, 법무부 장관의 ‘엄단’ 계획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의 행위는 자세히 묘사된 반면, 경찰이 어느 정도로 투입돼 얼마나 물대포와 최루액, 캡사이신을 썼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KBS, MBC는 집회 다음날인 15일에서야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위독한 상태에 빠진 농민 백모씨 소식을 뒤늦게 전했다.

▲ 11월 15일자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보도

KBS <뉴스9>는 15일 “정부의 노동정책과 국사 교과서 국정화 등에 반대하는 민중총궐기대회에 뒤이은 폭력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 양측의 부상자가 속출했다”며 ‘법질서와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정부와 ‘미리 준비해 온 불법 시위 도구로 폭력 시위를 벌였다며 주도자들을 형사처벌하고 민사상 손해배상도 청구하기로 했다’는 경찰의 입장을 나란히 전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책임이 경찰 측에 있다는 민중총궐기 주최 측의 반박은 ‘주장’으로 처리됐다.

MBC <뉴스데스크> 역시 “어젯밤까지 이어진 도심 집회는 결국 폭력이 난무하는 시위로 변질됐다. 시위대, 경찰 할 것 없이 부상자가 속출했다. 과잉진압이냐, 과격시위냐 입장이 팽팽하다”, “격해진 시위대는 경찰에 쇠파이프를 휘두른다. 사다리로 경찰버스를 치고 밧줄로 버스 바퀴를 묶어 강제로 끌어낸다”, “시위대는 밤늦게까지 뭉쳐 광화문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100여 명이 다쳤고 버스는 50대가 파손됐다” 등의 설명으로 집회의 ‘폭력성’을 부각시켰다. <뉴스9>와 마찬가지로 <뉴스데스크> 또한 ‘경찰이 평화 집회를 방해한 것’이라는 주최 측의 반박과 ‘물대포 과잉진압으로 농민 백모씨의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는 사실조차 ‘주장’으로 보도됐다.

SBS <8뉴스>는 <물대포 맞은 농민 중태…경찰 '과잉진압' 논란>라는 리포트로 피해 시민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했다. <8뉴스>는 “병원으로 옮겨진 백씨는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살수차 운용지침에 의하면 직사살수를 하더라도 안전을 고려해서 가슴 이하 부위를 하도록 하고 있다. 머리 부분이 즉각적으로 가격을 당했고 넘어진 상태에서 가격을 당했다”는 민변 조영선 변호사의 말을 전했다.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을 과도하게 진압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이었다.

▲ 11월 15일자 SBS <8뉴스>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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