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둘러싼 보수언론의 ‘판짜기’가 점점 노골적이 돼가고 있다. ‘금품 메모’를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의도를 ‘복수심’으로 규정하고 불법정치자금 문제는 여야 모두에 걸친 것으로 몰아가면서 박근혜 정권이 모처럼 정치권의 부패에 대응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스>는 16일 이 사건에 대한 보수언론의 지면을 분석한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보도와 사설을 종합하면 보수언론이 그리고 있는 사건의 실체(?)가 대략적으로 그려진다. 성완종 전 회장은 경남기업을 방만하게 운영했고, 정치권의 압력을 통해 기업의 위기를 극복해왔으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정치권에 돈을 뿌려왔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더 이상 이런 방법이 제대로 먹히지 않자 성완종 전 회장이 앙심을 품고 ‘복수심’에 벌인 일이며, 박근혜 정권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정치권 전체에 만연한 정경유착 관행을 뿌리뽑는데 나선다는 게 유력한 시나리오다. 또 흥미로운건 보수언론이 이완구 총리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어를 포기한 듯 보인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성완종 리스트', 야당으로 불길 옮기는 보수언론>

17일 보수언론들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지면 편집을 선보였다. 가장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것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검찰이) 여야 유력 정치인 14명에게 불법 자금을 제공한 내역을 담은 로비 장부를 확보한 것으로 16일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해당 장부에 현 정부 인사 일부에 더해 새정치민주연합 중진 K의원과 C의원 등 야당 정치인 7~8명에 대한 로비 자료가 포함돼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4면에 <盧 정부 때 ‘成 자금 담당’ 임원 조사…野도 수사 받는 새국면>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해당 의혹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소문으로만 돌던 성완종 로비 장부를 검찰이 확보하면서 여당 정치인에게 집중된 ‘성완종 리스트’ 수사 판도는 달라지게 됐고,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성완종발(發) 후폭풍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조선일보 17일자 4면 기사.

그러나 그러면서도 <조선일보>는 “검찰이 성 전 회장의 로비 장부와 관련 진술을 확보했지만 여야 정치인들의 혐의 입증 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 “금품 공여자인 성 전 회장이 사망한 상태에서 로비 장부 내용을 입증해 줄 추가 물증 확보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기사의 뒷부분에서 마치 금방이라도 야당 정치인들이 수사를 받을 것처럼 서술해놓고 실제 수사 전망에 대해서는 소극적 태도를 유지한 것이다.

이 소극적 태도의 이유는 검찰이 <조선일보>의 해당 보도를 부인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검찰은 이날 그간의 압수물품 중 종이 문서 등의 아날로그 자료에 해당 로비가 없는 것으로 안다는 입장을 밝혔다. USB 등 디지털 자료는 분석 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수사팀이 접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러니 ‘카더라식’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사안의 본질을 흐리려는 검찰의 치고빠지기식 언론 플레이가 또 시작된 게 아닌가하는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면서 “야당도 있다더라는 ‘카더라식’ 기사를 흘리는 것은 현 정권에 쏠린 따가운 시선을 돌려보려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김성수 대변인은 “혐의가 있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며 야당도 이를 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짓말을 뒤집는 새로운 증언과 증거가 연일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증거 인멸을 시도한 사실까지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이 총리의 비서관부터 당장 소환해 조사하고 이 총리는 즉각 물러나 당당하게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 조선일보 17일자 칼럼.

그러나 <조선일보>가 깔아둔 프레임은 이 기사 하나만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는 이날 지면에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명의의 <성완종, ‘난장 정치’의 희생자냐 가해자냐>라는 제목의 칼럼을 함께 게재했다. 여기서 박은주 부본부장은 성완종 전 회장 사망 이후 언론이 ‘망자에 대한 예우’로서 그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왔다면서 “이제 ‘망자에 대한 예우’ 대신 ‘실체적 진실’을 추궁할 때다. 그에 대한 미화는 상황에 눈멀게 하고, 폄훼 역시 진실에 눈감게 한다”고 썼다. 또, 박은주 부본부장은 “‘죽은 자가 반드시 진실만 말하는 건 아니다’는 걸 우리는 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망자의 메모를 진실이라 믿거나 믿고 싶어 한다”면서 “우리 정치가 ‘인간관계’라 부르는 ‘비리 사슬’로 움직이는 걸 알기 때문이다”라고도 썼다. 이 논리는 성완종 전 회장의 ‘의도’를 ‘복수심’으로 규정하고 ‘금품 메모’를 통해 고발된 친박 실세들을 ‘피해자’의 지위에 놓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비춰지기에 충분하다.

박은주 부본부장은 “그(성완종 전 회장)의 주변에는 돈을 받고 도움을 준 사람과 돈을 받고 도움을 주지 않은 사람 등 두 종류의 ‘유력자’가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인사들은 후자에 해당하는데 그보다 더 나라에 해악을 끼친 전자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고도 적었다. 즉, ‘금품 메모’에 등장하는 친박 실세들은 성완종 전 회장의 ‘구명 로비’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으며 오히려 그 메모에 나와있지 않은 나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이 이 리스트를 두고 “로비가 안 통하는 정권이라는 증거”라고 발언한 것과 김무성 대표가 이날 “성완종 리스트로 시작되는 우리 대한민국 정치계의 부정부패를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면서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박은주 부본부장이 여기서 상정하는 ‘나쁜 사람’들은 참여정부 시기의 인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 조선일보 17일자 칼럼.

<조선일보>의 영리한 움직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이날 <망자와의 진실게임에서 지고 있는 8인>이란 제목의 박정훈 디지털뉴스본부장 명의 칼럼을 지면에 실었다. 여기서 박정훈 부장은 순수하게 법리로만 볼때 ‘금품 메모’에 오른 친박 핵심 8인이 불리할 것이 없는데도 “친하지 않다”, “만나지 않았다”, “아니다”, “모른다”는 등의 대응으로 오히려 자살골을 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정훈 부장은 “하지만 빠져나올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까놓고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국민의 신뢰를 쌓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 루트다”라고 적었다. 앞서 <조선일보>의 보도를 연결해서 보면 어느 정도의 상처를 각오하더라도 야당을 대상으로 한 ‘피장파장’ 프레임으로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느껴진다. 즉, 이 칼럼의 내용은 친박 핵심 8인에 대한 <조선일보>의 ‘훈수’에 가깝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떠올릴 수 있다. ‘금품 메모’에 오른 사람들 중 이미 자살골을 너무 많이 넣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대표적인 것은 이완구 국무총리다. 이완구 총리는 사건 초기 위의 박정훈 본부장이 예시한 부적절한 대응으로 자살골을 넣으며 “목숨을 걸겠다”고까지 했다가 음료수 박스에 3천만원을 넣어 전달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그로기’상태에 내몰렸다. 심지어 이완구 총리 측이 당시 운전기사였던 모씨에게 성완종 전 회장과 독대를 했다는 사실을 입막음 하기 위한 회유를 시도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국무총리가 이 정도의 추문에 휩싸여 검찰수사를 받는 게 불가피해진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 조선일보 17일자 1면.

<조선일보>의 해법은 간명하다. <조선일보>는 이날 1면에 <李총리 교체로 가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배치했다. 제목만 보면 청와대가 이완구 총리를 사실상 경질하기로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내용을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제목은 “두 사람(박근혜-김무성) 간 회동에서 이 총리를 교체하는 쪽으로 정리가 됐느냐”라는 질문에 여권 관계자가 “박 대통령이 귀국할 때까지 특별한 상황의 반전이 없다면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얘기가 됐다”고 답변한 것을 근거로 하여 정해진 것이다. 즉, 굳이 이렇게까지 한 것은 <조선일보>가 ‘특별한 상황의 반전’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마침 이날 <동아일보>와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이완구 총리의 자진사퇴를 직접적으로 촉구한 것은 보수언론이 이 상황에 대한 판단을 이미 끝냈다는 걸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이완구 총리를 ‘버린’ 것이다.

이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보수언론이 야당 정치인이 포함된 ‘리스트’를 여러 형태로 거론하며 사실상 정치권 전체가 연루된 사건으로 이를 계속해서 몰고가는 것이다. 또, 성완종 전 회장이 정경유착으로 형성된 인맥에 기대 얼마나 부도덕하게 기업을 경영하였는가도 지속적으로 강조될 것이다. 이것이 성완종 전 회장의 ‘복수심’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마무리는 역시 검찰의 수사 결과에 달렸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개혁’을 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과 그간 검찰의 성향을 고려할 때 이 수사 결과는 여당과 야당 인사들을 적절하게 균형을 맞춰 포함시키고 재계 일부에서 추가 희생양을 골라내는 것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라는 차원에서 다뤄질만 했던 이 사건은 이렇게 우리 사회 모두가 잘못을 한 사건이니 이제부터는 그러지 말자는 적당한 결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이날 경남기업 본사 등의 압수수색을 통해 휴대폰 21대와 수첩 34개, 파일철 257개 등을 확보해 검토를 마쳤다고 발표했다. 검찰에게 사실상 ‘백지수표’가 주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권이 이를 통해 기가 막힌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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