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폭력 약자에 대한 배척을 자랑하고 과시할수록 존경을 받는 일베 유저가 KBS 기자라는 이름으로 현장을 누빌 때 시청자는 우리 뉴스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1년 전 4월 1일, 3개월의 수습기간을 마치고 정식으로 ‘KBS 기자’가 되어 갓 1년을 보도국에서 보낸 막내들이 “일베 유저를 후배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외쳤다. KBS 직원 대부분이 소속돼 있는 11개 협회도 4월 1일 정식 사원이 되는 ‘일베 기자’의 임용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 KBS 41기 기자들이 일베 헤비 유저 A 기자의 정식 임용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30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일베 수습’ 임용 결사 반대>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경영협회·기술인협회·기자협회·방송그래픽협회·아나운서협회·여성협회·전국기자협회·촬영감독협회·촬영기자협회·카메라감독협회·PD협회 등 KBS 사내 협회 11곳이 주최한 기자회견에는 일베 헤비 유저 A 기자의 한 기수 선배인 41기 기자들도 참석했다.

지난달 순환근무 배치를 받아 각 지역국으로 옮겨간 41기 기자들 중 9명이 휴가도 반납하고 서울로 온 이유는 명료했다. “일베 기자가 들어온 뒤에도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약자에 대한 배려와 평등, 사회 통합을 추구한다고 우리 입으로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고, 따라서 “일베 유저를 후배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십니까. KBS 보도국 막내 41기 기자들입니다. 저희는 오늘 위기에 놓인 KBS 뉴스를 지키고자 각자의 의지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수습 시절 선배들이 했던 말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너희 한 명 한 명은 이제부터 개인이 아닌 공영방송 KBS를 대표하는 KBS의 얼굴들이다’

저희는 리포트를 맺을 때마다 ‘KBS 뉴스 누구누구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지난 1년은 제 이름 앞에 붙는 KBS가 갖는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깨닫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수많은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를 기자 개인이 아닌 KBS 그 자체로 대했습니다.

앞으로 이틀 뒤면 특정 지역 혐오와 성 차별을 숨기지 않았던 한 수습사원도 KBS 뉴스를 대표하는 기자가 됩니다. 묻고 싶습니다. 차별과 폭력 약자에 대한 배척을 자랑하고 과시할수록 존경을 받는 일베 유저가 KBS 기자라는 이름으로 현장을 누빌 때 시청자는 우리 뉴스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일베 기자가 들어온 뒤에도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약자에 대한 배려와 평등, 사회 통합을 추구한다고 우리 입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저희 막내들은 일간베스트, 이른바 일베 유저를 후배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저희는 자신이 없습니다. 지키고 싶은 가치를 잃을까 두렵습니다. 회사의 막내가 간곡히 요청합니다. 선배들이 저희에게 누누이 강조하시던 공영방송의 가치를 지킬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11개 협회, ‘임용 취소 촉구 서명’ 내일 중 조대현 사장에게 전달 예정

11기 협회 역시 공동 기자회견문을 통해 A 기자의 정식 임용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KBS의 주인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KBS는 모든 국민들이 납부해주시는 소중한 수신료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며 “KBS는 우리 사회 다양한 갈등의 거시적 중재자이며 공적 가치의 수호자이고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다. 또한 권력을 견제하고 자본을 감시하며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고 모든 형태의 차별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 장기간 무차별적 조롱과 야유를 공공연히 일삼아 온 폭력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의 회원이 이제 KBS의 기자가 되려 하고 있다”며 “이는 공정성, 신뢰성이 생명인 공영방송 KBS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 따라서 KBS 내부의 모든 구성원들은 ‘일베 수습기자’의 정식 임용을 결단코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대현 사장과 경영진은 문제가 된 신입사원의 임용절차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신입사원 공개 채용 절차를 전면 보완해야 한다”며 “이 같은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KBS 전체 구성원들은 앞으로 조대현 사장 불신임 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합법적 불복종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사진=미디어스)

사내의 비판 목소리가 거센 상황이지만 KBS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 KBS가 보인 가장 적극적인 ‘행동’은 오늘 발생했다. 당초 본관 내 민주광장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11개 협회 기자회견을 불허해 밖으로 내보냈고, 시청자 광장에 기자회견 현수막을 거는 것도 막았다. 파문이 벌어진 지 1달이 넘었지만 공식입장 없이 사내 구성원들의 반발을 바라보고만 있는 셈이어서, 내부에서는 사측이 A 기자를 정식 임용하겠다는 무언의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재 A 기자는 서울시내 라인별 경찰서를 출입하며 수습생활을 보내고 있는 동료들과 달리, 협회의 문제제기로 내근만 하고 있다. 문제는 입사 전 그의 ‘일베 활동’이 문제가 돼 정상적인 수습 기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데도, 인사평가는 타 기자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수습 기간 해당 부서장의 인사평가를 통해 (정사원으로 받아들이기)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인사실에서 인사위원회를 열고 임용을 취소할 수 있는 사규가 있다. 그런데 A 기자에 대한 업무평가는 다른 기자들과 별 차이가 없다. 직무수행을 하는 데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점수를 계속 잘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다 보니 인사부에서는 보도본부에서 평가가 잘 나오는데 어떻게 신분을 취소하느냐고 하고, 보도본부는 직원의 신분을 취소하거나 유지하는 문제는 인사부 업무라며 서로 (책임을) 넘기고만 있다”며 “정상적으로 (수습 평가) 점수를 잘 주면서, 감사실 의견과 사규를 근거로 결정하겠다는 건, 임용을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KBS는 최근 감사를 통해 감사 결과만을 가지고는 A 기자의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는 사장 면담을 제안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KBS 11개 협회는 지난주부터 각 협회가 A 기자의 임용 취소 및 채용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11개 협회는 서명을 취합하여 임용 전날인 내일(31일) 조대현 사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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