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드 파리>는 집시계의 양귀비, 항아, 클레오파트라라 할 수 있는 에스메랄다를 만남으로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 세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랑의 대상인 에스메랄다를 바라보는 세 남자는 페뷔스와 프롤로라는 나쁜 남자와 콰지모도라는 착한 남자의 이분법적 구도로 바라보기 쉽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그랭구와르와 클로팽을 빼고 나면 세 남자는 모두 나쁜 남자다. 콰지모도 역시 극의 출발점만으로 보면 나쁜 남자라는 이야기다. 왜냐고? 콰지모도가 형틀에 묶인 이유를 생각해 보라. 죄가 없는 사람이 그냥 형틀에 묶인 것이 아니다.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고 했었기에 죗값을 치르느라 형틀에 묶인 거다.

페뷔스와 프롤로야 그냥 나쁜 남자지만, 콰지모도도 엄정하게 보면 자신을 납치하려고 한 납치 미수범 콰지모도에게 물을 먹이는 에스메랄다의 따뜻한 마음씨에 반해 ‘에스메랄다 바라기’가 된 후천적인 착한 남자다.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콰지모도가 마음을 고쳐먹은 나쁜 남자라고 한다면, 프롤로와 페뷔스는 에스메랄다의 몸을 탐하는 나쁜 남자다. 프롤로는 자신의 마음을 뒤흔든 에스메랄다를 향해 루시퍼의 정녕이냐고 묻는다. 프롤로는 평생을 신과 함께하기로 서약한 주교. 신과 평생을 약속하다 보니 다른 이성이 들어올 틈을 허락하지 않았을 남자다.

그럼에도 에스메랄다의 아름다움은 평생을 신과 함께하기로 한 프롤로의 신조를 송두리째 잊어버리도록 만들 만큼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었다. 평생의 신조가 아름다운 집시 여자 하나 때문에 흔들린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 프롤로가 에스메랄다를 향해 루시퍼의 정령이냐고 묻는 건 당연하다.

페뷔스도 에스메랄다를 탐하기는 마찬가지. 근위대장 페뷔스는 에스메랄다를 만나기 전에 엄연히 플뢰르라는 약혼녀가 있었다. 하지만 페뷔스는 약혼녀에게 사랑을 맹세하면서도 에스메랄다와 한 참대에 있을 정도로 두 집 살림하기 바쁜 남자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지만 약혼녀 외의 매력적인 여자도 놓치기 싫어하는 나쁜 남자 말이다.

그렇다면 프롤로와 페뷔스 가운데서 진짜 나쁜 남자는 누굴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에스메랄다를 회유하고, 에스메랄다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씌우는 프롤로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페뷔스 역시 프롤로 못잖은 나쁜 남자다. 페뷔스는 에스메랄다와 바람을 피운 행각이 약혼녀에게 들통 나자 에스메랄다를 몹쓸 여자로 취급한다. 집시 여인에게 잠시 딴 눈을 판 거라고 약혼녀에게 변명을 한다. 침대에서는 당장 간이라도 내어줄 것처럼 메스메랄다에게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던 페뷔스의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마스트엔터테인먼트
달콤한 사랑을 나누었던 에스메랄다를 부정한 여자 취급하고는 약혼녀에게 되돌아가는 페뷔스는, 약혼녀와 결혼을 한다 해도 에스메랄다에게 빠진 것처럼 아내 아닌 다른 여자에게 얼마든지 눈을 돌릴 수 있는 나쁜 남자다. 프롤로처럼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만 나쁜 남자가 아니라, 결혼할 여자 외의 다른 여자에게도 얼마든지 곁눈질할 수 있는 페뷔스도 만만치 않은 나쁜 남자라는 걸 <노트르담 드 파리>는 보여준다.

하지만 페뷔스라는 나쁜 남자를 통해서도 배울 점은 있다. 사랑은 뜨거운 정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에게 평생을 다해 헌신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는 걸 나쁜 남자 페뷔스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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