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의 원작 <웃는 남자>와 <노트르담 드 파리>가 뮤지컬로 무대화돼서 관객을 유혹할 채비를 갖췄다.

EMK가 국내 초연으로 선보일 예정인 <웃는 남자>는 그윈플렌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그웬플렌은 입모양이 정상인과 다르다. 배트맨 영화의 악당 조커처럼 입모양이 웃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주인공의 외모처럼 뮤지컬, 아니 빅토르 위고의 원작 제목 자체가 <웃는 남자>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의 <노트르담 드 파리> 속 주인공인 콰지모도 역시 못생긴 얼굴을 한 꼽추다. 오죽하면 미치광이들의 축제에서 교황으로 뽑힐 정도일까. 인터파크 랭킹 상위 다섯 작품 중 두 작품 속 주인공은 정상인과는 거리가 있는 외모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 더, <웃는 남자>와 <노트르담 드 파리> 모두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이라는 공통점이 더해진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사진제공=마스트엔터테인먼트)

그간 필자는 <노트르담 드 파리> 리뷰에서 디오니시스와 아폴론적인 관점, 혹은 콰지모도와 프롤로 및 페뷔스 중 누가 가장 나쁜 남자인가 하는 관점으로 분석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기존 분석과 달리 진정한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에스메랄다의 비극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에게 반한 이유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외모도 외모지만 에스메랄다의 착한 마음씨 때문이다. 프롤로의 지시로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던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고 했지만 근위대장 페뷔스에게 체포되어 형틀에 매달린 채 목마름에 시달린다. 그 상황에서 오로지 한 모금의 물을 갈망한다.

이때 콰지모도에게 물을 건네준 사람은 에스메랄다였다. 납치 미수범에게 착한 행동을 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에스메랄다는 달랐다. 자신을 납치하려고 한 납치 미수범에게도 서슴지 않고 물을 건넬 줄 아는 착한 마음씨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사진제공=마스트엔터테인먼트)

납치 미수범에게 물을 주는 사랑스러운 마음씨에 반해 그녀를 남몰래 사랑하게 된 이가 콰지모도다. 하지만 에스메랄다에게 ‘백마 탄 왕자’는 따로 있었다. 에스메랄다는 콰지모도의 납치 시도라는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준 파리의 근위대장 페뷔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를 사랑한다.

2막에서 에스메랄다를 도와주고 진심으로 아껴주는 이는 페뷔스가 아닌 콰지모도다. 페뷔스에게 있어 에스메랄다는 에로스적인 사랑의 대상일 뿐이지 에스메랄다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전인격적인 사랑’이 아니다.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조차 하지 못한다. 에스메랄다를 도와주기만 하지 진심은 전하지 못한다. 결국 에스메랄다는 자신이 백마 탄 왕자라고 믿고 있던 페뷔스로부터 비극적인 판결을 선포 받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전락한다.

에스메랄다는 자신을 납치하려고 한 납치 미수범인 콰지모도가 목말라할 때 마실 물을 건넬 만큼 마음이 따뜻한 아가씨다. 하지만 에스메랄다는 백마 탄 왕자라고 믿고 있던 ‘나쁜 남자’ 페뷔스에게 판결을 받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바로 곁에서 사랑의 진심을 고백하지 못하던 콰지모도라는 ‘사랑바라기’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사진제공=마스트엔터테인먼트)

<노트르담 드 파리>를 에스메랄다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이 뮤지컬은 분명 ‘엇갈린 사랑의 비극’이다. 사랑을 순진하게 바라만 보던, 아니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었음에도 그 시랑을 알아보지 못하던 집시 여인의 비극이다.

다른 한편으로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면 에스메랄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 사랑의 비극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1막에서 자신을 납치하려 한 콰지모도로부터 구해준 페뷔스를 ‘백마 탄 왕자’로 본, 보고 싶은 것만 바라보던 사랑의 비극 말이다.

알고 보면 페뷔스는 약혼녀의 말 한 마디에 휘둘리는, ‘예비 공처가’에 가까운 나쁜 남자였음에도 말이다. 나쁜 남자를 백마 탄 왕자로 착각한 사랑의 비극이 에스메랄다의 서사 안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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