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배급사 리틀빅픽쳐스 엄용훈 대표가 ‘흥행실패’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 든 생각은 ‘왜 배급사 대표가 사퇴할 수밖에 없었는가’였다. 김혜자, 최민수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가 흥행실패라니. 보통 한국 영화의 경우 유명 배우가 출연한 영화들은 배급사 대표가 사퇴할 만큼 흥행실패를 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게다가 이 영화는 TV 영화 프로그램에 소개됐을 뿐 아니라 인터넷 관객 평도 나쁘지 않았다.

▲ 한 달도 안 돼 영화관에서 내려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사실 관객 평이 꽤 높은 영화였다. (사진=네이버 영화평 캡처)

이렇게 생각하게 된 또 다른 근거로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독립다큐멘터리영화가 큰 흥행몰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2의 <워낭소리>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배우도, 엄청난 제작비도 들어가지 않은 “독립 다큐멘터리”였지만 성공적 관객몰이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리틀빅픽쳐스 대표가 사퇴까지 하며 책임을 진 데에는 뭔가 구조적 문제가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문제는 배급사의 정체성이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배급한 리틀픽쳐스가 중소기업이라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배급사는 바로 대기업 배급사 CGV였다는 점이다. 각 작품이 갖고 있는 메시지와 완성도의 차이가 관객과 얼마나 소통하였는가를 통해 성공을 논할 수도 있지만, 이는 독점적 구조라는 외부적 요인에 떠밀려 상영관수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을 간과한 논의다. 극장에서 볼 수 없다면 관객의 취향과 반응은 아예 확인할 수 없다. 실제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영화 상영 초반 좌석점유율은 높았지만, 오히려 상영관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예매과정 역시 불공정했다. 극장체인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대기업 영화사가 제작·투자한 영화들은 2주전부터 예매가 가능하지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경우 개봉 바로전날 예매창구가 열렸다. CJ 계열사인 CGV아트하우스가 배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개봉상황을 보면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봉 후 일주일 내내 200개 상영관을 유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2015년에는 더 늘어 520여개 상영관을 차지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엄용훈 대표가 현장에서 겪었을 구조적 문제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일상적 관행’이 된 소수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독점

▲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
사실 국내의 영화산업이 갖고 있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CJ, 롯데, 메가박스라는 소수 대기업의 주도하에 전국 극장 체인망이 형성되었고, 제작·투자·배급의 수직계열화가 이루어졌다. 1990년대 후반 영화산업에 소수의 대기업이 진출한 이후 약 20여년 만에 영화 산업 구조가 완벽하게 독점적 구조로 재편되었다. 그리고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그 피해사례 중 하나인 것이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 천만관객으로 주목받았을 때, MBC <100분토론> 패널로 출연했던 김기덕 감독은 천만관객 영화에 감춰진 문제점, 즉, 대기업의 투자배급 횡포가 갖는 영화산업의 현실을 비판했었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이 연출하거나 제작한 영화들은 여전히 국내 극장에서는 많은 관객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나타난 불공정 사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3년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주연배우의 해외일정으로 개봉일을 갑작스럽게 앞당기면서 다른 영화들의 개봉일정과 상영관 수가 일방적으로 조정된 사례가 이에 해당된다. 당시 같은 개봉시기에 있었던 영화 <공모자들>은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개봉일정 변화로 다른 영화와 교대로 상영되는 교차상영을 통보받았다.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며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2014년 영화사 메인타이틀픽쳐스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변칙개봉’을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이 일어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기업 중심의 제작·투자·배급의 수직계열화라는 독점적 구조로 인해 스크린 수와 상영기간의 차별이 일상적 관행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기업이 투자하거나 배급하는 영화 중심으로 배급라인이 주도되면서, 독립영화들은 제한된 적은 상영관을 두고 서로 상영관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 결과 관객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필자 역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얼마 남지 않은 관람기회를 잡기 위해 서둘러 극장으로 갔다. 평일 오전 시간, 텅 비어있을 줄 알았던 극장 안은 예상보다 많은 관객으로 붐볐다. 원작이 유명한데다 가족영화라는 점 때문인지 어린이부터 노부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을 볼 수 있었다.

왜 관객들은 오전시간대라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극장에 왔을까.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개봉관을 확보하지 못해 2015년 1월 21일까지만 서울 상영이 결정되어 있었고, 상영시간 역시 관객이 보기엔 불편한 시간대였다.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극장을 찾은 사람들이 그들이었고, 한국에서 이와 같은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져야만 하는 근거이자 이유이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공정경쟁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법제도의 정비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개선의 가능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작년에 이루어진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조치다.

영화 상영업체인 CJ CGV와 롯데쇼핑(시네마)이 계열 배급사 또는 스스로가 공급하는 영화에 대한 스크린 수와 상영기간 등을 유리하게 차별적으로 제공, 공정거래법을 위반해 과징금 55억원을 부과받았고 검찰에 고발조치되었다. CJ와 롯데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독립적 중소 영화배급사와 협의 없이 영화할인권을 발행한 행위, CJ E&M이 제작사와 투자계약을 맺으면서 금융비용을 받을 수 있도록 거래 조건을 설정한 행위에 대해서도 시정명령을 받았다. 대기업 계열사들의 영화산업 수직계열화로 인해 독립적 중소 영화업체들이 차별 대우를 받는 폐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일 것이다.

관객들이 자발적 홍보 나서고 있지만 역부족… 배급과 상영 분리 등 현실적 제도 개선 필요

한편, 관객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영화완성도와 가치 등에 비해 구조적 문제로 극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SNS를 통해 홍보하거나 상영관 확대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있다. 실제로 그 노력의 결실이 나타나고 있는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상영관 확대를 위한 대관 릴레이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한극장이 1월 20일, 아트나인이 1월 23일부터 상영을, 24일에는 강릉 독립예술극장, 27일에는 부산 꿈팡팡624 등 예술극장들이 상영을 했거나 확정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원작자인 바바라 오코너가 상영관 부족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 지난해 12월 31일 개봉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사진=<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이와 같은 관객의 노력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기업의 독과점적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전제되어야한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처럼 대기업의 영화 제작 참여 제한, 배급과 상영 분리 방안, 저예산·독립 영화관 확대 등을 고려해 국내 영화산업구조에 맞는 대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상업논리에 맞긴 채 정부가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독립영화들의 상영관 확보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러한 불합리한 상황이 방치된 채 지속된다면, 영화 속 주인공인 지소가 집을 얻기 위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것처럼, 보고 싶은 영화를 찾기 위해 관객들이 직접 ‘상영관을 차지하기 위한 완벽한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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