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1월 8일자 1면 머리기사.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가 지난 8일부터 강성노조 등을 ‘기업의 적’으로 규정하는 기획기사를 내놓고 있다. 19일자 지면에는 자유경제원이 선전한 ‘반(反)시장’ 국회의원까지 대대적으로 알렸다. 매경 19일자 신문 4~5면에는 이런 구시대적 선동을 담은 6건의 기사가 실렸다. 제목만 종합해도 이 신문이 국회와 청와대, 그리고 독자에게 전하려는 이야기는 분명하다. 8일자 신문 4~5면에 실린 내용을 거칠게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사회에는 기업의 적이 너무 많아요. 민주노총, 그 강성노조 아시죠? 이 놈이 가장 나빠요. ‘뒷다리 잡는’ 시민단체도 문제에요. 기업에 대한 규제는 과도한 지경입니다. 제대로 된 국회라면 기업의 적들을 물리치고 국가와 경제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데, 여당은 맨날 야당에 끌려다녀요. 기업 활동 가로막는 규제는 빨리 단두대에 올리고, 새로운 산업 키워야 하는데 맨날 국회가 발목을 잡아요. 새정치도 변했습니다. 최저임금 결정하는 데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자네요! 이명박 정부 시절 18대 국회도 박근혜 정부 19대 국회도 법안 성향을 분석해보면 반시장적인 게 더 많습니다. 어떻게 좀 해봐요!

19일자 지면만 살펴보자. 매일경제 4면 머리기사 <촘촘히 막은 정리해고·징벌적 손배…19대국회 더 커진 대못>은 한 정리해고 사업장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난해 12월24일 대법원은 대림자동차공업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하는 데 공정하지 못했다”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에 대해 회사가 복직 여부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매일경제 1월 19일자 4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사실관계를 전하려 사례를 제시한 게 아니다. 매일경제는 “19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경제민주화’ 바람을 등에 업고 기업들의 정리해고를 사실상 더 어렵게 만드는 ‘대못 입법안’들이 대거 상정된 가운데 재계가 다시 긴장 모드로 돌입했다”며 “인력 구조조정을 제대로 못해 한계기업으로 내몰리는 기업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기업을 위해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라는 이야기다.

매일경제는 이 대목에서 한국경제연구원이 2014정책리스크 평가 보고서에서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해고요건 강화 개정안들이 모두 입법화될 경우 우리나라는 시장경제를 운영 중인 189개 국가 가운데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튀니지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갖게 된다”고 전망했을 정도라고 보도했다.

맙소사. 이 정도면 기사라는 외피만 썼지 사실상 구조조정 명단을 검토 중인 기업 오너의 입이나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쓴 논평에나 나올 내용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철밥통인 공무원과 공공기관 정규직에게 실적에 따라 급여를 차별하고, 2~3년 연속 성과가 나쁘면 퇴출시키겠다는 청와대,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돌리고 계약기간을 늘리려는 정부, 직접고용 노동자가 해야 할 일을 외주화해 비용을 줄이는 데 앞장서는 재벌이 있는 사회가 경직적이라니, 매일경제가 친시장적으로 평가할 만한 나라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퇴직해도 돈을 벌어야 생존할 수 있는 ‘반퇴시대’가 됐는데 통신계의 철밥통 KT 직원 8304명은 자발적으로 회사를 걸어나갔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사실 닥쳐올 구조조정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쌍용차는 또 어떤가. 2009년 옥쇄파업 이후 6년을 거리에서 보냈지만 정리해고자 복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영여건이 좋아지면…”이라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말이 정규직이지, 원청은 하청을 언제든지 잘라낼 수 있다. 하청은 1년마다 폐업을 걱정해야 한다. 씨앤앰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해고자와 비해고자를 가리지 않고, 그리고 씨앤앰 정규직과 간접고용 노동자가 같이 움직인 것은 상시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하청 노동자를 반은 노동자, 반은 사장님으로 만들었다. 한국의 기업들은 정리해고하기 쉬운 조건들을 이미 마련해뒀다. 소위 ‘갑질’의 원조는 원청이고 재벌이고 자유기업이다.

최근 들어 거짓임이 드러났지만 박근혜 대통령 또한 공공부문부터 간접고용을 없애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매일경제가 주장하는 포퓰리즘은 선거에 매번 등장하는 단골메뉴이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이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각종 규제완화와 기업인 가석방의 명분은 ‘낙수효과’(트리클다운 이펙트)였지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 건 보다 정교화된 학대해고 프로그램과 외주화, 그리고 창조적인 노무관리 컨설팅 정도뿐이다.

이런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법안들이 속속 발의됐지만 여전히 통과되지는 않고 있다. 통과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매일경제가 모를 리 없다. 다만 이런 흐름을 차단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런 기사를 쏟아내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매일경제가 예로 든 대표적인 반시장 법안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다. 심 의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요건’이라는 정리해고 요건에 ‘경영악화로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를 추가했다. 매일경제는 이 법안 발의가 “선진국이 글로벌 상황에 맞춰 노동시장 유연성을 보완하고 나선 것과 대조를 이룬다”고 썼다.

분명 금융헤게모니가 휘청거리면서 소위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온 것은 맞다. IT혁명의 효과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으나, 금융자본들은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절약하는 편향적 기술진보와 구조조정을 더욱 강하게 추진하는 흐름이다. ‘지금 정세는 자본이 노동을 유연화하고 노동 몫을 줄이려는 방식으로 위기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 좌우가 합의한 인식이다.

매일경제가 자가당착에 빠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매일경제는 일본은 법원 판례를 통해 미래의 경영부진까지 정리해고 요건으로 인정하고 있고, 미국은 정리해고 요건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어 사실상 기업에 일임권을 부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자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일본은 20년이 넘도록 대불황을 탈출하지 못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금융위기와 함께 ‘오큐파이’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나. 매일경제는 한쪽 눈을 가린 수준이 아니라 아예 두 눈을 감았다.

▲매일경제 1월 19일자 5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가 5면에 실은 ‘가업상속공제법’을 통과시키지 못한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의 반성문을 보자. 기사 제목은 <‘부의 세습’ 극단적인 반대논리 지양해야>다. 매일경제는 좌절된 이 법안에 대해 “개정안은 공제 적용 대상 기업을 ‘매출액 3000억 원 미만’에서 ‘5000억 원 미만’으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고 소개했다. 매출 수천억 원짜리 기업을 7년 이상 경영하면 이게 ‘가업’이 되고 상속세와 증여세를 공제하자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피케티 정도도 수용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피케티는 이윤율이 성장률을 하회하면 불평등이 개선되지만, 21세기에는 성장률이 하락해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하고, 이 같은 불평등을 부유세 등 과세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신대 윤소영 교수에 따르면, 피케티의 이 같은 주장은 그의 스승인 앳킨슨과 앳킨슨의 스승인 미드의 주장과 같은데 미드는 영국 노동당이 국유화 조항을 폐기하고, 우경화하는 과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결국 불균등한 재분배로 자본주의가 위기가 심화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고쳐쓰자는 게 피케티의 정치적 입장인데 매일경제는 이 같은 관점에도 동의하지 않는 셈이다.

매일경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반하고, 사업자 특혜가 우려되는 지점에서도 비난을 강행했다. 매일경제는 5면 머리기사 <야 ‘재벌 특혜’ 반발에 끌려다닌 여… 경제법안 처리엔 ‘뒷짐’>에서 “경제법안이 지연되는 건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입법부가 정쟁에 함몰돼 기업들이 정작 필요한 투자·고용 활성화 법안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는 셈”이라고 국회를 비난했다. 매일경제는 “야당이 경제 법안과 야당 협안 법안을 묶어 패키지로 처리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엉뚱한 경제법만 발목이 잡히는 꼴”이라는 비난도 덧붙였다.

매일경제는 극단적인 우파의 스피커만 자임할 뿐, 제대로 된 분석과 철학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기업의 적’으로 규정한 “‘무소불위’ 기업 오너”에 대한 가석방을 촉구하는 기사를 지난달 말 크게 싣고 대통령 기자회견 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가석방 효과를 홍보하며 재벌 총수 가석방 여론에 군불을 땐 며칠 뒤 곧장 재벌 오너 가문의 부도덕한 행태를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낼리가 없다. SK 최태원이나 CJ 이재현이 벌인 횡령, 조세포탈은 땅콩회황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기업의 적’이다.

도무지 눈뜨고 볼 수 없는 매일경제의 ‘기업 10적’ 기획은 앞으로 6편 남았다. 총정리까지 하면 7편일지도 모르겠다. 매일경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다섯 번째 적은 한국의 반기업 정서다. 6적은 정치금융, 7적은 저출산, 8적은 ‘뒷다리 잡는’ 시민단체, 9적은 ‘아니면 말고’ 미디어, 10적은 ‘좀비기업’이다. 위기에 빠진 금융자본과 반성 없이 헤매고 있는 주류경제학, 그리고 총수경영과 3~4대 세습을 앞두고 당황한 재벌을 옹호하려면 제대로 하라. 지금 같은 기사는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매일경제 1월 8일자 4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매일경제 1월 8일자 5면.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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