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낸 해고무효소송을 파기환송한 지 꼭 한 달째 되는 날이었던 지난 13일 새벽,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이 “더 이상 희망을 찾기 어려운 상태에서 공장 안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70m 굴뚝에 올라간 지 오늘(22일)로 어느덧 열흘째다.

해고노동자들이 스스로 ‘얼마나 약한 자들인지’를 알리기 위해 굴뚝 위로 올랐지만, 쌍용차 사측은 이들의 대화 요구를 외면하고 있으며 방한용품이나 의약품 및 방한장치 제공 등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측이 고공농성자들을 위한 인도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다산인권센터 등 인권단체들은 22일 오후 2시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굴뚝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측에 농성자들을 위해 최소한의 '인도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쌍용차지부 고동민 대외협력실장 페이스북)

와락,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다산인권센터 등 인권단체들은 22일 오후 2시,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굴뚝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측에 농성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물품을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그동안 김정욱 사무국장,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에게 전달되는 것은 식사와 최소한의 온수뿐이었다. 그마저도 한꺼번에 세 끼가 올라와 점심, 저녁때는 식은 밥을 어떻게 덥혀 먹을까 궁리해야 했으나, 오늘(22일)부터 쌍용자동차노조(기업노조)의 도움으로 세 끼를 제때 제공받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물품 지원은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1인용 텐트와 비닐만으로 간신히 비바람을 막고 있으며, 세상과의 연결을 위해 필요한 핸드폰 배터리도 추운 날씨에 금세 방전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구나 두 사람은 굴뚝에서 나오는 유해 연기에도 매 시간 노출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쌍용차 사측은 까다로운 기준을 두어 굴뚝 위로 올라가는 물품 반입을 제한하고 있다.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위생시설, 배터리와 핫팩, 한약 등은 농성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시민들이 보낸 응원 편지조차 반입이 금지됐다. 여기에 농성자들의 SNS 글을 보고 ‘이건 어제 올린 것이 아니냐’ 하면서 퇴짜를 놓고 있다.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다들 걱정하니까 안심하라는 의미로 ‘괜찮다’, ‘견딜만하다’ 했더니 뭐 우리가 아방궁에라도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맨바닥에 냉기 막을 스티로폼 한 쪼가리도 올라올 수 없는 게 인도적 지원이냐”라고 사측의 행태를 비판한 바 있다.

인권단체들은 “사측은 농성 중인 동료들을 걱정하는 해고노동자들이 방한용품과 통신수단 유지를 위한 배터리 충전을 요구하자 ‘그 정도도 결의 못한 거냐’, ‘호텔처럼 다 갖추려 하느냐’며 거절했다”며 농성자들에게 최소한 6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단체들이 밝힌 6가지 요구사항은 △식사를 끼니마다 제공할 것 △물품 지원은 농성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이 전달하게 할 것 △텐트, 따뜻한 물, 방한기구 및 전기, 방한복, 침낭 등 혹한을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방한용품을 제공할 것 △의사소통에 필요한 배터리와 전기 제공 △의료진의 건강검진, 치료, 의약품 전달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위생시설 공급 등이다.

그러면서 “이는 어떤 상황과 처지에서도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며 조건이다. 절대 과도한 것이 아니다”라며 “쌍용차 사측이 인도적 조치를 빨리 시행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지젝·스피박·촘스키 등 지지선언 잇따라… 하늘 위 노동자 위한 <굴뚝신문> 창간

김정욱 사무국장,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에 대한 지지선언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인 슬라보예 지젝은 17일 편지를 통해 “당신들이 올라간 그 굴뚝은 세계를 비추는 등대와 같다”며 “다시 한 번 당신들의 투쟁에 대해 오롯이 연대를 표명한다. 당신들의 견결함과 끈질김은 우리 모두의 귀감”이라고 응원한 바 있다.

세계적인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로 인도를 대표하는 석학인 가야트리 스피박도 21일 편지로 농성자들을 격려했다. 스피박은 “쌍용자동차의 해고에 대항하며 살고 있는 153명의 노동자들을 지지하면서 이 편지를 쓴다”며 “우리 모두가 쌍용자동차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게 되고 노동자들이 일자리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스피박은 “세계경제포럼에서 가치문제를 다루는 글로벌의제협의회는 새로운 사회적 약속을 준수하도록 강하게 요구해 왔다. 이 약속은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윤리적 가치’에 대한 동의를 권고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득실과 노동자들의 생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며 “마힌드라&마힌드라사(쌍용차 대주주)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에 진실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철학가인 노엄 촘스키도 21일 “대량해고와 복직 문제를 위해 회사와 협상을 요구하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공장 내에서 절박하고 위험한 투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해고노동자들의 정의로운 요구들이 조속히 받아들여지길 희망하고 믿는다”고 말했다.

▲ 굴뚝일보 창간호(굴뚝일보 창간호. 사진을 누르면 굴뚝일보 페이스북 페이지에 접속됩니다.)

한편, 19일에는 고공농성을 택한 노동자들을 응원하고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알리는 신문 <굴뚝일보>가 창간돼 관심을 모았다. <굴뚝일보> 창간호에는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이 굴뚝으로 오르게 된 배경과 기업노조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21일 발행된 2호에서는 인천 공부방 아이들이 보내는 응원 엽서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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