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주체의 다원화와 다양한 콘텐츠 생산, 유통의 활성화 등의 목적으로 외주 제작정책을 도입한 지 23년의 시간이 흘렀다. 국내 외주 정책은 방통위 고시에 의해 방송사 채널별 편성비율뿐만 아니라 특수관계자 비율과 주 시청시간대까지 규제하고 있다. 이 같은 외주 정책으로 인해 외주제작시장이 일단 양적인 성장을 거두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1991년 외주정책 도입 당시에는 10여개이던 독립제작사는 2013년 말 기준 1,3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외주 제작사들이 늘어나며 외주제작물도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양적 성장 속에서 외주 제작사와 종사자들의 사정은 좀 나아졌을까?

외주정책 도입 이후 의무적으로 외주제작물을 구매하고 편성해야하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저단가의 외주제작물을 선호할 수 없고 외주제작사는 제작 단가를 낮추기 위해 인력을 줄이고 임금을 깎기 시작했다. 그 결과 90년대 이후 교양 예능 외주제작사를 중심으로 기획, 섭외 및 촬영과 편집을 도맡아 하는 VJ라는 직군이 새롭게 생겨나고 방송계의 저임금 고강도 노동 구조를 확산시켰다. 열악한 제작환경과 방송사의 관리 소홀 속에서 얼마 전에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같은 외주제작사의 현실을 반영하는 웃픈 방송 사고가 나기도 했다.

▲ 외주제작사들이 주연급 연기자들에게 지급하는 출연료 지급금액 추정표. 한 방송사의 내부자료이다.

그나마 낫다고 평가받는 드라마 제작사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드라마 외주제작사의 대부분은 방송사와 제작사의 계약에 따라 제작비의 일정비율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방송사의 제작비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외주제작사의 위험 부담은 비교적 적어지나 작품 성공에 따른 혜택도 적어진다.

열악한 드라마 제작사의 경우에는 방송사 제작비 외에 협찬이나 간접광고 등의 추가 재원을 마련해서 제작비를 충당하고 있다. 시청률 저하 등으로 추가 재원 마련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출연자들의 출연료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일들도 생겨났다. 이렇다보니 한 두 편의 드라마를 찍고 난 뒤 사라지는 제작사도 있고,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투자만을 전문으로 하는 형태의 문화산업전문회사(영화, 드라마 등 특정 문화 콘텐츠 프로젝트만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회사)도 생겨났다.

한편, 최근 한류 열풍 속에서 외주사가 제작한 드라마가 수출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드라마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외주 제작사는 극히 드물어 외주제작사의 성과로 직결되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제작비율 등으로 방송사가 저작권과 판권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송 편성 없이 제작사 ‘나홀로 제작’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사전 제작을 완료한 한 제작사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의 편성을 받지 못해 헤매다가 결국 한참 후에나, 케이블 채널에 편성한 사례도 있다. 이러니 역량 있고 규모 있는 제작사의 경우에도 사전제작은 쉽지 않고 국내 외주제작사가 만들었다 해도 저작권은 방송사가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교양 등의 외주제작은 저단가의 콘텐츠가 장악하게 되고, 그나마 팔리는 드라마 콘텐츠는 방송 편성을 전제로 판권이나 수익 배분이 방송사에 유리한 계약관계가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계속되면 잘되는 프로그램의 성과는 방송사로 들어가게 되고 돈 안 되는 프로그램은 저단가의 외주제작물이 메꾸게 될 것이 뻔하다. 결국 콘텐츠의 질적 저하가 예상되는 것이다.

현재 양적 규제의 한계가 극명히 드러나고 있지만 열악한 여건 속에서 규제마저 풀리면 그나마 현 수준의 방송 편성마저 배제 받게 되어 외주제작사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수 관계자의 비율, 표준계약서 등 외주 정책이 새롭게 모색되고 있는 가운데, 외주제작사의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한 방안의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임연미 _ 공공미디어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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