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0일 아버지 생신 이틀 전에 부모님에게 전상서를 썼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광고탑 위에 있다는 것을 아시고 난 뒤에 걱정이 되시는지 몇 번이고 농성장을 찾아 오셨다고 동생이 이야기하더라고요. 근데 오늘은 아버지가 처음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택시운전을 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오가며 몇 번이고 보셨겠지만 날도 추운 날 이렇게 찾아오신 걸로 봐서는 정말 많이 걱정이 되셨나 봅니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프고 죄송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고 아버지 돌아가시는 길에 “몸 건강히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큰절을 드렸습니다. 헌데…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운동본부 실천행동 결의대회에서 씨앤앰 정규직지부의 김진규 지부장님, 김종호 부지부장님, 김석우 부지부장님 세분의 삭발식을 광고탑 위에서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또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광고탑 위에서 흘렸던 눈물들, 절대 주워 담지 않을 겁니다. 저의 뜨거운 눈물들!! 투쟁으로 그들에게 화답하겠습니다. 너희는 잃을 것이 많지만 우리는 잃을 것이 없다. 각오해라!! 끝까지 투쟁한다. 투쟁!! 결사투쟁!!

2014년 12월4일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씨앤앰 노숙농성장에서

▲12월4일로 고공농성 23일차인 강성덕(왼쪽), 임정균씨. (사진=노동자연대.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 전상서

아버지, 어머니 말씀 못 드리고 올라와서 죄송해요. 11월11일 동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도저히 말할 수 없겠더라구요. 동생도 결혼해서 제수씨가 임신까지 했는데, 장남이 되서 35살 평생 아버지, 어머니에게 속만 썩히는 불효자가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지! 전 아버지가 늘 말씀하신 “회사 생활은 남에게 미움받지않게 항상 열심히 해야한다”란 말을 가슴에 새기며 업무시간에는 몸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제가 열심히 일한다고해서 저를 지켜주지 않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자본가들은 코 푼 휴지를 휴지통에 버리듯 저를 버렸습니다.

아버지도 제가 처음 노동조합에 가입한다고 했을 때 많이 반대하셨었죠? 저 또한 많은 고민을 했지만, “더불어사는희망연대”라는 노동조합의 이름처럼 조합은 매해 사측과의 교섭에서 사회공헌기금을 확보하여 지역주민을 돕는 “아래로 향하는”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면서 저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처음 노동조합을 가입했을 때는 너무나도 당연히 지켜야 할 근로기준법 준수, 산업안전보건법 준수와 생활임금 보장을 외치며 싸웠지만 그들의 대답은 “부당해고”였고 저와 동지들은 부당해고에 항의하여 130일이 넘는 노숙을 했지만 그들은 눈썹하나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아버지가 다녔던 회사에서 부당한 처우에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하셨던 것이 생각이 났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저 또한 결심하여 부당한 처우에 맞서 싸우고자 이곳에 올라 왔습니다.

22일이면 아버지 생신이시네요. 아버지에게 저를 낳아서 길러주심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그런 날에 저는 전광판 위에 있겠네요. 또 한 번 불효자가 됨을 용서해주시고 파업투쟁 승리하여 내려가게 된다면 아버지의 바람이자 제가 해드릴 수 있는 효도를 하기 위해 결혼해서 손주 꼭 안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머니! 그제도 어제도 제 걱정에 눈물을 흘리시며 잠 못 이루시는 어머니… 어머니가 못난 불효자인 저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우실까봐 말씀 안 드렸는데, 어떻게 또 아셔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계세요… 전화를 드리면 계속 눈물을 흘리시며 우셔서 가슴이 아프고 전화 드리기도 죄송하네요.

엄마! 두 아들 키우느라 정말 고생이라는 고생 다하신 우리 엄마!! 제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도 걱정하시겠죠? 저는 아래에 있는 동지들이 맛있는 밥과 반찬 잘 챙겨줘서 삼시세끼 잘 챙겨 먹고 있고 옷도 여러 겹 입어서 하나도 안 추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 꼭! 아무 일 없이 내려가도록 할게요.

못난 큰 아들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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