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장기 저성과자 해고 절차를 운영할 예정”이라며 대형 로펌에 자문을 구했던 문서가 폭로됐다. ‘저성과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회사와 정부에 비판적인 내부 인사를 겨냥한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각에서 MBC가 이 같은 해고 시나리오를 벌써 시행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MBC는 수익성 중심 조직개편과 함께 교양제작국을 해체하는 대규모 인사발령을 단행했다. 이 인사에는 <PD수첩>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다룬 한학수 PD를 비제작부서 신사옥개발센터로 이동시키는 등 상식 밖의 발령이 많아 논란이 일었다. 시사교양국에서 굵직한 사회문제를 다뤄왔던 <PD수첩> 출신 PD들과 회사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던 기자들이 인사 발령에 다수 포함되어 ‘솎아내기’, ‘찍어내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관련기사 : 교양국 해체한 MBC, 이번엔 ‘찍어내기’ 인사)당시 언론계 한 인사는 “MBC가 비판적 인사를 해고하기 위해 작정을 했다”며 “이미 법률자문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 '한겨레21' 제1039호 표지
한겨레21, MBC 치열하고 교묘한 ‘해고 프로젝트’ 실시

<한겨레21>은 제1039호(2014.12.8)에서 <치밀하고 교묘한 MBC ‘해고 프로젝트’> 기사를 통해 “MBC가 ‘성과가 낮다’는 이유로 인사평가 뒤 짧게는 1년 만에 사원을 해고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그 합법성을 따지기 위해 대형 법무법인으로부터 유료자문까지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한겨레21>은 근거로 MBC가 지난 8~9월 법무법인 김앤장과 화우에 자문했던 ‘장기 저성과자에 대한 조치 관련’ 답변서를 입수해 폭로했다. MBC가 비판적 인사들을 해고하기 위해 법률자문을 받았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한겨레21>에 따르면, MBC는 대형로펌에 ‘3R을 두 번 받으면 징계해고를 할 수 있는지’ 등을 물은 것으로 드러났다. MBC는 1년에 3차례 업적·역량 평가를 시행하고 70점 이하를 받은 직원에게 최하 등급인 R등급을 매겨왔다. 김재철 전 사장 당시 기존의 절대평가를 상대평가 ‘강제할당’ 방식으로 바꿨고, 2012년 170일 파업에 참여한 사원들에 대해 일괄 R등급을 매겨 논란을 야기했던바 있다. R등급 부려를 통해 회사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이미 징계해왔던 MBC가 이를 근거로 해고할 수 있는지를 법률 검토했단 얘기다.

MBC의 질의는 구체적이었다. 김앤장과 화우에 △3R을 받아 징계받은 직원이 추가로 R을 받았을 때 이전 2개의 R과 새로운 R을 합해 다시 ‘3R’을 구성해 징계에 회부(중복계산)할 수 있나, △개인평가규정에 해당 규정을 추가할 때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하는가, △개인평가를 변경하지 않고 징계에 (바로) 회부할 수 있는가, △R등급을 통한 해고가 가능한가 등을 구체적으로 자문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김앤장과 화우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겨레21>에 따르면, 추가로 R을 받았을 때 이전 2개의 R과 합해 다시 ‘3R’을 구성해 징계에 회부(중복계산)하는 것에 대해 두 법무법인은 “이중징계에 해당한다”는 답변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개인평가규정 변경에 대해서 역시 “근로자에게 불리한 규정이므로 노사 합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개인평가규정 변경 없이 징계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당한 징계 사유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겨레21>은 이를 두고 “MBC가 구상한 계획은 결국 모두 편법적이거나 위법하다”고 해석했다.

‘R등급을 통해 해고가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김앤장과 화우는 “(법원으로부터)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들은 김재철 전 사장이 개인평가규정을 ‘강제할당’으로 변경했기 때문에 정당성 인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자문했다. 화우는 “귀사는 2010년부터 ‘R등급 강제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상대평가 기준에 기초한 평정의 결과에 따라 근무성적이 하위등급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앤장 또한 “상대평가 방식의 인사평가제도하에서는 하위평가 집단은 항상 발생하므로 동일직급, 동일 근속연수의 다른 근로자 평균의 실적, 업무 수준과의 비교·평가 없이 R등급 자체만으로 직무 수행 능력 부진 내지 근무성적 불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MBC의 더욱더 과감해진 해고 시나리오?

그러나 MBC의 R등급 직원 해고 시나리오는 더욱 과감해졌다는 것이 <한겨레21>의 설명이다. MBC는 김앤장과 화우로부터 답변을 받은 이후 “장기 저성과자 해고 절차를 운영할 예정”이라며 재차 검토를 요구했다. 그 내용은 △개인평가규정의 절대평가로 변경, △6개월마다 하는 업적평가에서 R등급을 한번 받을 때마다 교육발령, △3R 직원에 대한 징계 등이다. 김재철 전 사장이 직원들을 징계하기 위해 개인평가규정을 상대평가로 바꾸었다면 현 안광한 사장은 직원들을 해고하기 위해 다시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 '한겨레21' 제1039호 보도
<한겨레21>에 따르면, MBC의 후속 자문에 대해 김앤장과 화우 모두 더 박한 평가를 내렸다. 김앤장은 “결국, 귀사(MBC)는 별도의 사규 개정 없이도 비교적 단기간 내에 저성과자들을 해고시키고자 하는 취지인 것으로 보이나 단기간에 저성과자들을 해고시키는 경우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밝혔다. 화우 역시 “연속 3회 R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직원을 일괄적으로 해고하는 것은 부당해고로 판단될 법적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들은 ‘단기간 평가를 통한 해고’가 현행 법률상 요건을 성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 것이다.

MBC가 구상하고 있는 ‘장기 저성과자 해고 절차’는 1회 R등급(70점 미만)은 교육발령, 2회 R등급은 대기발령 및 교육발령, 3회 R등급은 대기발령 후 명령휴직, 교육발령, 희망퇴직 권고, 직권면직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겨레21>은 이에 대해 짧게는 12~13개월 내 해고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R등급을 받게 되면 대기발령과 교육발령이 이뤄지고, 여기에 다시 짧은 기간 평가를 통해 재차 R등급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연속된 평가를 단기간에 하겠단 의도이다.

김앤장과 화우는 MBC의 무리수를 지적하며,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방법’을 다르게 설계했다. △장기간(약 4년)의 평가기간, △객관적인 평가기준 마련, △직무태만·지시불이행 등 구체적인 비위사례 수집, △(회사가 근무역량 강화를 위한 기회를 제공했다는 면피용)맞춤형 교육 개발, △1년의 명령휴직 기간 단축 등을 제시했다. 사실상 ‘회사는 최대한 많은 기회를 제공했으나 이를 따르지 못했다’는 근거를 만들고 비위 사실을 만들기 위해 직원을 들들볶으라는 얘기다. KT의 부진인력퇴출프로그램 CP와 유사한 설계이다.

<한겨레21>은 “MBC가 법률자문한 내용을 직원들의 인사 처분에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3년 동안 R등급을 받은 기자와 PD 등을 포함해 12명을 교육발령을 조치했는데 그 내용에 기존에 없던 ‘개인별 직무능력 및 적성 파악’, ‘개인별 직무 능력역량 향상계획 수립’ 등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지난 10월 인사는 김앤장과 화우가 자문해준 면피용 “맞춤형 교육 개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MBC는 <한겨레21>의 이런 보도에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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