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700MHz 주파수 108MHz 폭 중 20MHz를 재난망으로 우선 할당했다. 남은 88MHz 폭을 놓고 지상파와 통신사 간 쟁탈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대역이 UHD전국방송망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낮다. 재난망으로 할당된 20MHz 위치는 88MHz를 통신용으로 할당하기 위한 초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주파수심의위원회는 재난망(20MHz)으로 718~728MHz, 773~783MHz 위치를 할당했는데, 이는 통신에 40MHz를 할당하기로 한 구 방통위의 모바일광개토플랜의 계획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방송노조협의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미래방송연구회는 18일 <이용자 중심 UHDTV 환경 및 주파수 정책 과제> 정책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 통신용 할당 분위기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요청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는 700MHz 주파수를 방송 혹은 통신용이 아닌 ‘차세대 기술 준비대역’으로 남겨 놓자는 새로운 제안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미래방송연구회 박성규 수석부회장, “700MHz 대역은 준비대역으로 남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방송노조협의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미래방송연구회는 18일 <이용자 중심 UHDTV 환경 및 주파수 정책 과제> 정책 토론회를 공동으로 개최했다ⓒ미디어스
토론회 발제를 맡은 미래방송연구회 박성규 수석부회장은 “정부가 700MHz 대역 주파수에서 향후 통신할당에 유리하게 20MHz 폭의 재난통신 주파수 위치를 확정함으로써 지상파 UHD방송 기회를 상실한 위기를 맞이했다”고 우려했다. 구 방통위는 모바일광개토플랜으로 통신용 주파수 40MHz 폭을 할당했는데 그 위치가 728~748MHz, 783~803MHz였는데, 이번에 정부가 재난망으로 할당한 위치가 정확하게 붙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입으로는 ‘통신용 40MHz 할당 재검토’를 말하고 있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11일 국회 공청회에서도 재난망 주파수 위치에 대해 다양한 안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주파수심의위가 3일 만에 정부안대로 강행 처리한 데에는 꼼수가 있다는 지적이다. 만일, 88MHz 대역 중 40MHz를 통신용으로 할당할 경우 남은 주파수는 44MHz밖에 없게 된다. 이 경우, UHD 방송용으로 사용 가능한 채널은 4개밖에 나오지 않는다. UHD전국방송은 사실상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 정부, 700MHz 재난망 우선 할당…공청회 3일만에 정부안대로 강행)

▲ 2012년 방통위의 '모바일 광개토 플랜' 700MHz 주파수 배정계획
물론, 남은 88MHz 대역을 모두 방송용으로 할당하면 지상파 UHD 전국방송 서비스가 가능하기는 하다. 9개 채널(1개 채널 당 6MHz, 54MHz)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경우, 재난망과의 간섭을 막기 위한 가드밴드(guard band)로 34MHz(700MHz 108MHz 폭 중 31.5%)가 활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파수 낭비’라는 게 박성규 부회장의 설명이다. 정부가 주파수 낭비를 해가면서 방송용으로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성규 수석부회장은 이날 UHD방송의 개념을 거실TV에서 확장된 개념으로 사고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700MHz 주파수 역시 특정 사업자가 아닌 ‘준비대역’으로 남겨놓자는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박성규 수석부회장은 UHD방송과 관련해 “이용자의 미디어 이용행태의 변화에 따라 고품질 방송도 중요하지만, 거실의 TV뿐 아니라 태블릿PC와 스마트폰까지 모든 디스플레이를 TV로 간주하고 언제 어디서든 수신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상파 방송은 공익적 무료 보편 서비스 제공을 하기 위한 대출력 전파를 이용해 차별 없는 무선 서비스 환경을 제공해야한다는 의미이다. 이어, 박 수석부회장은 “세계 각국이 UHD 방송 기술 확보와 방송 장비 산업 및 디스플레이 시장 선점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럴 때 이용자 및 사회적, 산업적으로 빠른 동의와 합의를 통해 상용 방송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성규 수석부회장은 700MHz 대역을 ‘차세대 기술 준비대역’으로 지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미래는 통신의 진화 뿐 아니라 방송도 8K-UHD방송, 무안경식 3DTV, 홀로그램식 3DTV 등 수많은 차세대 기술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이 대역을 정해진 기간 동안 임시대역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반드시 준비기간 중 코어대역을 마련해 준비가 끝나면 코어대역으로 이전하도록 규정을 마련한다면, 방송과 통신은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데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주장했다.

“답은 UHD방송인가? 아니다…원죄는 지상파에 있어”

이날 토론회에서 시청자단체에서 참석한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은 700MHz 주파수와 관련해 “통신쪽으로 넘어가면 비용문제 뿐 아니라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반대한다”며 “그러면 답은 UHD방송인가. 그것 또한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 '이용자 중심 UHDTV 환경 및 주파수 정책 과제' 토론회에는 많은 지상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미디어스
강혜란 정책위원은 “시청자들을 UHD방송을 위해 700MHz 주파수가 필요하다고 설득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지상파가 현재 무료보편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강 정책위원은 “시청자들을 위해 실질적인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지 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안이 나오지 않으면 정부가 88MHz 용도를 결정하기로 한 2015년 초 더 슬픈 상황이 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그는 700MHz 주파수를 ‘준비대역’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였다.

토론회에서는 700MHz를 지상파에 할당했을 때 시청자들의 체감할 수 있는 ‘이익’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은 이어졌다. MBC 이남표 정책위원은 ‘지상파의 원죄’를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직접수신율을 올리겠다는 약속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런데, 시민들이 느끼는 직접수신율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지상파 망을 이용해 방송을 보는 환경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부분에서 국민들을 설득할 뾰족한 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700MHz 주파수를 통신에 할당해 속도를 더 높이는 게 좋다는 주장에 대해 지상파 스스로 답을 내기보다는 우회하고 있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 정책위원은 박성규 부회장의 발제 중 “방송망을 가지고 태블릿PC로 지상파 방송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면 훨씬 더 설득력 이는 논의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남표 정책위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700MHz 주파수를 통신에 경매하겠다는 것은 이해가지 않는다”며 “정부가 국민의 공유재산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장사는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방향이지 않느냐. 통신사들은 누구를 위해 ‘더 빠른’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경매대금’을 회수하기 위해 가계통신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통신비와 단말기 값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판단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직접적인 물음이 제기된 것이다.

또 다른 토론자 서울여대 백종호 교수는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의 요구는 ‘코너에 몰려서 나오는 하소연’ 같다”면서 “통신의 경우, 3G에서 LTE 그리고 LTE-A로 빨라졌으니 좋다고 한다. 그런데 HD에서 UHD로 가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이 열광할 것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백 교수는 “700MHz 주파수를 확보하면 지상파에 그 다음은 없다”며 “통신사업자들이 IPTV 방송을 한다면 방송사업자들은 통신서비스를 해야 공정한 게임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재난망 20MHz 할당 결정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공미디어연구소 이경락 연구위원은 “주파수심의위원회는 재난망을 할당하면서 700MHz 대역에서 배치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논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방송기술인연합회 이후삼 회장 또한 재난망과 관련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기술적 논의가 돼 왔던 게 사실”이라며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말 한마디에 모든 게 속전속결로 결정됐다. 재난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기술적 검토가 더 필요했다”고 씁쓸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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