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대표적 소설인 ‘1984’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박탈되는지,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한 인간이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인 1984년(소설은 1948년에 발표되었다)은 정보통신이 고도로 발달되었고 ‘빅브라더’라는 권력자는 독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이라는 장치를 통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사상경찰들은 정보 통신 장치를 통해 개인을 감시하고 불순자를 찾아다닌다. 검열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개인간의 소통은 단절되고 전체주의는 더욱 굳건해진다.

통신 검열로 유지되는 독제체제. 이런 소설 속 이야기가 2014년 대한민국에 현실로 나타났다. 통신 검열 논란은 검찰과 경찰이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진우 부대표는 물론이고 지인들의 카카오톡 대화록까지 검열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연이어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대통령 발언 직후, 검찰이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을 만들어 인터넷 포털과 SNS를 실시간 감시할 뿐 아니라 ‘문제의 글’은 즉시 삭제하고 유포자들을 엄중 처벌하겠다고 밝히면서 통신 검열 사회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현재 이러한 통신 검열 논란의 중심에서 카카오톡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듯하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지만 그동안 자신의 사적인 대화를 허락도 없이 권력자에게 내주었다는 배신감과 괘심함을 불식시킬 순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이상은 못 믿겠다는 심정인지 통신 검열을 피해 텔레그램, 왓츠앱 등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로 이동하는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 확산되고 있다.

통신 검열 논란은 검찰의 무분별한 영장청구와 표현의 자유 억압 등에 초점이 맞춰져야하지만 ‘카카오톡 검열’로 프레임 되면서 특정 사업자의 자질 문제로 번지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권력자가 카카오톡, 포털, 커뮤니티 등의 사업자를 통신 검열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사업자가 아닌 권력자에게 분노하고 항의해야 한다. 결국 ‘1984’ 사회에서도 개인을 감시하는 것은 빅브라더지 텔레스크린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버 망명의 1순위로 꼽히는 텔레그램 개발자인 파벨 두로프 또한 러시아판 페이스북인 VK.com를 만들었다가 러시아 정보국의 검열 요구를 거절했고 얼마 뒤 경영진에게 해고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권력자가 사업자를 다그치고 협조를 요구할 때, 사업자가 취할 수 있는 조치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사업자가 협조하지 않을 때 권력자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매우 많다. 특정 포털은 정치적 게시판을 없애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권의 탄압이 가해져 ‘박해’를 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통신 검열이 만연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1984의 ‘윈스턴’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만 하는가? 다행히도 현재 우리의 헌법은 모든 국민의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보장받도록 하고 있다.

<헌법>
제17조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 받지 아니한다.
제18조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빅브라더는 체제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통신 감시, 검열을 꿈꾸고 있는 듯하다. ‘인터넷 실명제’ 역시 그랬다. 명예 훼손, 허위사실 유포 등 악성 댓글의 폐단을 막는다는 이유로 실시했던 인터넷 실명제는 악성 댓글을 걸러준다는 순기능보다는 결국 인터넷 댓글 자체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표현의 자유 억압을 통한 ‘소통의 단절’은 바로 빅브라더가 그리는 세상이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는 2012년 8월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위헌결정이 내려져 폐지됐다.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인터넷 실명제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공익적 효과도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권력자로부터 지켜 내야하는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임연미 _ 공공미디어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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