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한국의 대중문화가 다른 나라에서도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한류라는 현상이다. 한류는 다른 나라 소비자들이 한국의 문화를 소비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입장에서는 상품의 수출이며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는 산업이다. 따라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문화를 장려하고 진흥한다. 최근의 일은 아니다.

▲ 도쿄에 한류 체험관에 있는 배용준 밀랍인형. ⓒ연합뉴스

국민의 정부 이후, 부가가치 창출의 수단이 된 문화

국가가 주도로 문화산업을 장려한 시기는 대체적으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문화를 산업의 영역으로 포섭하여 육성하고자 한 정책이 드물었다. 문민정부 시절 한국사회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수용되면서, 문화를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했지만 구체적으로 실행되지는 못했다. 문민정부 이전에도 문화는 산업으로 존재했지만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진흥하고자 하는 대상은 아니었다. 다만 국풍81처럼 쿠데타 정부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한 대중조작 이벤트로서 문화를 이용했다. 정권의 성격을 떠나 문화산업이 대중기만이라는 혐의를 가지고 있지만, 군사정부는 노골적으로 문화산업을 도구로써 이용한 것이고, 이후의 정부들은 경제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문화산업을 조금 더 세련되게 가공한 것뿐이다. 문화산업이 파생시키는 여러 부가가치가 이를 더욱 강화시키는 논리가 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 타개라는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출범했다. 경제 살리기는 당면한 최우선의 과제였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여러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있었으며, 금융, 기업, 노동 부문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추진되었다. 이 무렵 산업자본 시대에 형성된 경제구조와 패러다임이 지식중심으로 전환된다고 하여 지식기반경제라는 담론이 형성됐다. 지식기반경제에서 강조했던 부분이 지식을 통한 경제성장이다. 산업노동이 지식노동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지식노동자로의 변화를 요구했다. 지식노동은 스스로를 결정하고 스스로 기업가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자기 결정, 혁신, 독창성, 기업가 자질과 연관된다.

국가 경쟁력의 척도로 호명된 문화산업

지식기반경제는 결과적으로 문화산업이라는 국가경쟁력 분야를 육성하고자 하는 정책의 배경에 불과했다. 실제적으로 문화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법제도의 정비가 시작되었다. 당시 정부는 문화산업을 새로운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하는 것은 시대적 명제라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법령 및 제도개선을 우선 과제로 두었고, 문화는 진흥의 대상이 되어 제도권내로 편입된다.

국민의 정부에서 등장하게 된 문화산업의 진흥은 참여정부에도 이어진다. 지식기반사회의 심화에 따라 창의성을 국가의 정책의제로 설정했다. 지식기반경제라는 지구적 흐름에 경제회복을 위해 진흥된 문화산업은 정권이 변해도 크게 변하지 않고 보다 심화되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문화산업은 여전히 국가경쟁력 중의 하나였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수단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산업을 대표하는 단어는 한류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안에 한류문화진흥단이라는 기구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한류의 지속ㆍ발전을 통해 콘텐츠산업과 제조업의 수출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은 국가정책으로 육성되는 산업이었고 지식기반경제와 같은 담론을 앞세워 진흥체제를 지속적으로 정비하였다. 이는 현실적으로 국가가 경제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고 문화향상이나 삶의 질과 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공허한 주장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문화산업을 진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 안에서 문화콘텐츠는 본격적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한다.

문화콘텐츠 수출을 국가 이미지 제고에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관광을 하는 인근 국가의 관광객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제 국가 이미지도 한류와 함께 판매되는 하나의 상품이 되었다. 이 또한 문화산업처럼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이미지를 관리한다. 그 일환으로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문화콘텐츠와 국가 브랜드를 연계하는 사업추진이 주요 업무였다.

이들은 국가브랜드 지수를 개발하여 국가브랜드 순위를 정하기도 했다. 한류의 영향과 당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싸이라는 가수로 인해 문화분야에서 순위가 상승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문화산업과 한류가 국가경쟁력이고 국가 이미지를 제고한다는 말은 국가정책의 수단이 되었다. 국민 기업 프로젝트를 수행하듯이 자국 문화를 계발하여 해외로 수출해 자국 브랜드를 구축하고 그 이미지를 향상시키자는 정책이 수립되었다.

문화산업의 확장과 창의 노동자의 현실

문화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정부의 의도대로 수출되려면 문화산업에서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노동이 수반돼야한다. 시나리오를 쓰고, 작곡을 하는 작가들만이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다. 촬영, 음향, 조명 등 여러 노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이른바 문화콘테츠가 완성된다. 이들의 노동은 정부부처가 말하는 산업사회의 노동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식기반경제로 이행이라는 담론에 의해 지식을 생산하거나 경영해야 하는 주체―지식노동자로 탈바꿈된다.

천재적 재능과 영감으로 제작을 하는 창의노동자로 구성해낸다. 직업정체성은 문화산업의 노동자가 아니라 문화산업을 선도하는 전문가로서 형성시켜야 하는 윤리적 태도를 강요받는다. 이들의 노동은 물리적 조건에서 수행하는 육체노동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창의적 전문가라는 직업적 외피를 갖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갖지만 불안정한, 창의적 노동을 하지만 제한적인 노동조건에 구속된 노동자로서 삶을 지속시키고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로운 삶의 의지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권력을 통해 통치한다. 자기계발, 자기관리, 열정착취를 하게 만드는 기술이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핵심이다.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노동윤리를 내면화한 주체는 자신의 선택을 자유의지에 의한 것으로 보고, 결과에 책임지는 주체가 된다. 이 때 성공담론은 자기착취의 결과를 자기관리로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 문화산업의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자기계발해야 하며, 문화산업의 창의성을 유지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까지도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찬희 _ 언론학을 공부하고 직업인이 되었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 한 죄 때문에 십대 시절 심취했던 음악분야로 탈주하기 위한 경로를 아무도 모르게 구축하고 있다. 문화의 표상방식과 이데올로기 비판에는 늘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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