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2009년 작)

‘저주 받은 걸작’. 범죄 심리학의 달인, 프로파일러 신류(이서진 분)과 귀신이 보이는 소녀 윤하나(임주은 분)의 악령보다 잔혹한 인간을 쫓는 심리 호러물. 여주인공이 주둔하는 고등학교가 배경인지라 긴 머리에 시체색의 얼굴을 하고 그로테스크한 표정을 짓는 처녀귀신의 크리쳐가 대부분이다. 질릴 법도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람을 옥죄는 공포는 이것만한 게 없으니까.

하지만 혼의 공포가 빛나는 것은 어두운 영혼을 가진 타락한 인간이 선사하는 물리적 공포다. 사람을 해부하는 일에 쾌감을 느끼는 연쇄살인마 서준희는 이규한의 섬뜩한 이미지 변신이 이룩한 쾌거. 그 밖의 집단 따돌림이나 가학적 변태 행위를 즐기는 범죄자들의 사이코 행위 또한 오싹하지만 그 모두를 아우르는 악의 절정, 백도식(김갑수 분)의 야욕은 이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큰 두려움으로 시청자를 옥죄인다.

장르물인 작품의 특성상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는 배우들의 이미지 변신과 연기 잘하는 신예를 발굴하는 재미 또한 쏠쏠한 작품이다. 정의감 넘치는 언니의 역할과 보기 드물게 서늘한 양면을 가진 임주은은 그 나이 또래의 여배우에게서 쉽사리 찾을 수 없는 희소가치를 드러내 연기력 이상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 작품을 통해 본격적인 연기 시동을 건 티아라의 멤버 지연은 임주은의 여동생, 윤두나로 분해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어딘가 어설퍼서 보호해주고 싶은 귀여운 막냇동생 같은 이미지를 그럴듯하게 소화해낸 지연은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 가시 돋친 시선을 내보내는 네티즌에게조차 귀염을 받았었다.

호평 받은 연기력과 탄탄한 캐릭터들, 세련되게 공포를 조장하는 연출력과 특히 사회 비판 요소로 극찬을 받은 이 작품은 초중반까지 걸작 반열에 오를 뻔 했으나 악인의 처벌을 망설이는 것 같은, 우유부단한 열린 엔딩으로 시청자의 원성을 샀다.

특히 드라마 질투의 엔딩을 연상케 하는, 특수효과 상태를 까발리는 영상으로 마무리 되는 크레딧 롤은 신선하다기보다는 ‘이 모든 것이 가짜였습니다.’라고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 같아 묘한 불쾌감을 선사했다. 더군다나 하필 이때 흐른 음악이 지연의 소속 그룹 티아라의 홍보 음악이 쉴 새 없이 이 모든 게 거짓말!을 외치는 ‘거짓말’이라서 시청자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결말만 똑 부러졌다면 충분히 명작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작품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날 갑자기- (1998년 작)

SBS가 기획한 공포 옴니버스, 납량특선 8부작의 첫 에피소드로 방영된 작품. 앞서 소개한 혼과 비슷한 영역의 학원 폭력에 얽힌 원혼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스티커 사진 속 유령으로 등장한 이나영의 흔치 않은 데뷔 시절을 감상할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의 미덕은 공포라기보다 어른의 방관 아래 무차별하게 짓밟히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어린 학생들의 서글픈 저항이 더 큰 감동을 주는 여름날의 성장 드라마다.

‘작은 빛은 큰 어둠을 밝히는 거야.’ 최악의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순수한 소년 강성민의 편지를 발견하고 두 눈을 감은 채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교사 송윤아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명장면.

8부작으로 구성된 SBS 납량특선은 어느 날 갑자기, 휘파람 소리, 성형 미인, 공포의 눈동자가 각 2회분으로 나누어 8편씩 방영되었다. 참고로 마지막 에피소드인 ‘공포의 눈동자’에서는 풋풋하기 짝이 없는 여고생 송혜교의 열연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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