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 임한다’는 자세로 항상 약자와 소외받는 자를 돌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일(14일) 오전 방한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방한하는 교황을 향해 “이번 방한이 모든 생명이 존중되고 모두가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가톨릭의 가치가 제대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힘없는 저희를 사랑으로 끌어안아 달라”고 호소했다.

참사가 일어난 지 120일, 단원고 고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광화문 단식을 시작한 지 31일째인 13일 오후 2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교황 방한을 맞아 <우리는 세월호의 진실을 원합니다>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가족들은 교황에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해 달라”는 간곡한 뜻을 전했다.

▲ 13일 오후 2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교황 방한을 맞아 '우리는 세월호의 진실을 원합니다'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왼쪽부터 전명선 부위원장, 고 박성호 학생 누나 박보나 씨, 김병권 대표, 김형기 부위원장, 유경근 대변인, 통역사 (사진=미디어스)

가족대책위 김병권 대표는 <교황님께 드리는 편지>에서 “4·16 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항상 약자와 고통 받는 자의 편에 서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병권 대표는 “수색 구조를 위해, 진상조사를 위해, 생존과 치유를 위해 가족들이 애원하고 있는 상황이 120일 동안 매일 이어지고 있다”며 “책임 있는 모든 사람과 기관이 조사돼야 하고 관련된 모든 정보가 공개돼야 하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독립성, 전문성, 강제적 권한, 다양한 조사방법, 충분한 시간과 인력을 갖춘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강제적 권한의 핵심은 기소권과 수사권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김병권 대표는 “우리는 세월호 참사 가족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교황님과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는 참사의 진실을 알고 싶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싶다. 우리는 소중한 생명 하나하나가 충분히 존중되고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며 “우리는 교황님의 방한이 모든 생명이 존중되고 모두가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가톨릭의 가치, 인류보편의 가치가 제대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의 진실을 꼭 밝혀주시기를…”

단원고 고 박성호 학생의 어머니 정혜숙 씨도 편지를 통해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혜숙 씨는 앞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러 청운동에 갔다가 경찰에 봉쇄를 당해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했고, 박성호 학생의 누나인 박보나 씨가 대신 편지를 읽었다.

정혜숙 씨는 “사고가 일어난 후 우리 가족들은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왜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진실을 알고 싶었다”며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우리 아이들을 포함해 사라져간 304명의 소중한 생명들에 대한 우리의 약속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수사권,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31일째 단식 중인 단원고 고 김유민 학생 아버지 김영오 씨. 김영오 씨는 교황에게 "힘없는 저희를 사랑으로 끌어안아 달라"고 말했다. (사진=미디어스)
정혜숙 씨는 참사 120일이 지났는데도 정부가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지적하며 “절망에 빠진 이의 이야기일수록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잘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게 지도자가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낮은 곳으로 한없이 내려오시는 교황님, 낮은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교황님, 억울한 저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우리 아이들의 진실을 꼭 밝혀주시기를 기도드린다”고 전했다.

청운동사무소에서 가족들이 경찰 병력에 의해 고립된 것에 대해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그 말씀을 믿었기에 청와대에 간 것인데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공권력에 의해 (방문이) 차단당하고 심지어는 끌려나오다 두 분이 다쳐서 병원에 가게 됐다. 이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현 주소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벌써 31일 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고 김유민 학생 아버지 김영오 씨도 왜 자신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왜 내 딸이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반드시 진상규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독립된 조사위원회에 강력한 조사권한인 수사권, 기소권을 부여하는 특별법을 제정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참사의 책임이 있어서인지 정부, 여당은 유가족들의 간절한 요구를 외면하고 유가족을 음해, 방해했습니다. 우리의 간절함, 절박함을 알리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딸의 죽음의 진상을 명명백백 밝히지 못하면 사는 게 의미 없습니다. 죽을 각오를 했습니다. 우리의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이 자리를 결코 떠나지 않겠습니다”

김영오 씨는 “이 사건은 저만의 사건이 아니다. 생명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탐욕적인 세상, 부패하고 무능하며 국민보다 권력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부라는 인류 보편의 문제다. 관심 가져주고 우리 정부를 압박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드러운 사랑으로 끌어안는 것이 교황이 해야 할 일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셨죠. 교황 성하님 힘없는 저희를 사랑으로 끌어안아 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세월호 유가족들, 15일 교황과 비공개 면담

세월호 유가족들은 14일부터 17일까지 교황의 방한 일정에 함께 한다. 14일 입국 때에는 유가족 4명이 나가 교황의 입국을 환영하고,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에는 35명 정도의 가족들이 미사에 참석하고 이후 10여명이 교황과 비공개 면담을 한다. 안산에서 시작해 진도 팽목항을 거쳐 순례 중인 유가족들은 순례 중 짊어지었던 십자가를 교황에 전달할 예정이다. 유가족들은 16일 <시복미사>와 17일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에도 참여한다.

유경근 대변인은 “교황은 이미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 입을 통해 직접 이 상황을 설명 드리는 것이 의미 있을 것 같아 이야기하려고 한다. 또 저희들이 왜 30일 넘게 단식까지 하며 거리에 나와 있는지에 대한 이유와,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정치인들이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120일이 넘도록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말씀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교황 성하, 나아가 전 세계 가톨릭과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모든 활동, 특별히 특별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고 성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광화문 농성장은 교황 방한 일정 중에는 시복미사 등 행사를 고려해 최소한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유경근 대변인은 “교황의 동선이라든가 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유지하고 나머지 부분은 협조하기 위해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이날 기자회견에는 평소보다 몇 배 이상의 취재진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유경근 대변인은 기자회견 말미에 취재진들을 향해 "아무쪼록 저희들이 모든 상황과 정말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한 모든 몸부림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알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진=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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