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젠가 이렇게 부르고 싶어요.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마주치며, 누구 엄마 누구 아빠로 얼굴을 하나둘 익혀간 지도 벌서 스무날이 넘어가네요. 그래도 아직 이름을 부르는 게 어렵기만 합니다. 누구 엄마라고만 기억하면,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도 누구 엄마라고 부르게 될까 싶어,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지기도 해야 할 기억을 자꾸 일깨울까봐, 누구 엄마의 이름은 무엇인지 꼬박꼬박 챙겨서 알아두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잊히게 둘 수 없는 그 아이의 이름도 함께 기억하고 싶어 누구 엄마라고 부르려고도 합니다. 이 모진 시간들이 다시 잔잔하게 흐를 어느 때에는, 당신을 꼭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요. 오빠는 아직 안 캐기고요. 누구 아빠들은 잠시 대기하라고 해야겠어요. 히히.

며칠 전 한 아빠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같은 반에 희생된 아이들이 서른 명 가까이 되는데, 아직 그 부모들의 얼굴을 다 모른다고요. 누군가는 아직 병원에 있고, 누군가는 참사 이래로 사람들 눈을 마주하지 못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요. 매일 농성장에서 만나는 시간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그 삶들을, 나는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다시 먹먹해지는 순간이었어요.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을 잃은 엄마는, 다가오는 생일날 살아있는 아이를 위해 웃어줘야 할지 죽은 아이를 위해 울어야 할지 벌써부터 두렵다 하고,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혼자 밥을 차려 먹게 두고 매일 서울에 있어야 하는 엄마는 애써 눈물을 참고, 외동자식을 잃은 엄마는 돌봐야 할 다른 아이가 있는 집이 차라리 부럽기도 하고, 이 모든 엄마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는 한없이 미안해진다 하고……. 내가 무슨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막막해집니다. 5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3개월을 같이 산 아버지의 환갑날이 제삿날이 되어버린 아들, 낯설고 먼 나라 떠난 동생이 매일같이 일만 하다가 겨우 얻은 휴가를 장례로 치르게 된 언니, 그리고 미처 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어내는 이 참사의 시간 앞에 우리는 모두 너무나 작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참 작아서 이길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어요.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가 그저 대형 사고일 뿐이라고 하지요. 그들에게는 그저 희생자가 많다는 규모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그들은 함께 슬퍼했기보다는 충격을 받았을 뿐이죠. 충격이 가시고 나니, 이제 그만하라는 둥 돈을 얼마나 더 받으려고 그러느냐는 둥 못된 말들을 쏟아냅니다. 누구는 국회 앞에서 가족들이 노숙하는 모양새가 보기 안 좋다고 말했다지요. 가진 게 많아 큰 것만 보는 사람들은 국회의 풍경을 더 걱정하지요. 가진 게 없어 작은 걸 볼 줄 아는 사람들이, 같이 밤이라도 보내겠다며 달려오더군요. 그 사람들에게는 희생자가 수십 명이었는지, 수백 명이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다만 한 사람이더라도 누군가의 죽음 앞에 자신의 몫을 다하려는 소박한 사람들이 오히려 4월 16일을 참사로 기억합니다. 어쭙잖은 위로를 건네는 걸 무안해 하며 대신 함께 질문해주는 사람들이지요. 왜 살리지 못했어? 왜 거짓말 했어? 왜 지금도 숨기려고 해? 우린 언제까지 위험한 사회에 살아야 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왜 자꾸 잊으라고 해? 답을 알아서 함께 하는 게 아니에요. 답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아는, 작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국회로 광화문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너무 작아서, 나 혼자 할 수 없는 것은 모르지만, 여럿이 모여 ‘우리’가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믿으며 찾아옵니다. 혼자서도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은 남의 일을 제 일처럼 여기지 않거든요. 국회 앞에 있다고 하니 와서 종애비를 접는 사람들, 단식을 한다고 하니 귀한 물과 소금을 가져오는 사람들, 쓰러지더라도 같이 쓰러지겠다며 단식을 함께 하는 사람들, 행진을 한다고 하니 하루 일정을 비우고 기꺼이 같이 걷는 사람들, 광화문으로 나와 천막을 꾸미는 사람들, 밤을 지키는 사람들. 스님,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 대학생, 청소년, 여성, 예술인, 노동자, 청년, 농민, 빈민, 시민, 이주민……. 이렇게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름을 내려놓고 나면 똑같습니다. 더불어 기대고 부축해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인 거죠. 그 사람들을 다 누가 불렀는지 알아요? 언니들이에요. 아빠들이고, 여러 가족들입니다. 낯선 사람들이 몰려들 때에는 고맙기도 하지만 반갑기만 하지는 않았을 테고, 사람들이 뜸해질 때는 조금 편해지기도 하지만 불안하기도 했을 테지요. 난 언니들도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라 좋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떠나지 못하고 언니들 곁에 있는 것이겠죠. 낯선 사람들이랑 악수하는 걸 업으로 삼는 국회의원이나, 보는 눈이 없으면 사람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걸 당연히 여기는 정치인들이 아니라서요.

나는 그래서 언니들이 특별법을 제정하고야 말 거라는 걸 믿어요.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원래 특별한 법이 필요가 없지요. 그들은 평범한 법을 특별하게 사용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수사권이다, 기소권이다 하는 것들은 언제나 특별한 사람들이 휘두르던 권력이었지요. 권력에 맞서는 이들에게는 잔인하고, 권력을 지탱하는 이들에게는 너그러웠지요. 전례 없는 참사는 느닷없이 우리를 찾아든 게 아니라, 이런 권력에 의해 아주 천천히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쉽지 않은 길임은 분명합니다. 바꾸기 쉬운 문제였다면 이렇게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많이 지치기도 하고, 어느 순간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쯤인지 낯설기도 하겠지요.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지 막막한 마음들에 혼란스럽기도 하겠고요. 그런데도 어떻게 특별법이 제정될 거라 믿느냐고요? 언니들이 모두 평범해서 그래요. 평범한 사람들의 간절함을 이기는 것은 없거든요.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을 참 많은 사람들이 했습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나는 언니들의 시간을 곁눈질하며 배웁니다. 평화가 깃들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그걸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곁에 자리를 내줘서, 언니들이 만들고 있는 한 세상에 함께 할 수 있게 해줘서, 우리를 세월호 가족이라 불러줘서요.

언니들 말처럼 특별법은 시작일 뿐이지요. 진실을 찾아가는 길은 더 험할 테고 안전을 만들어가는 길은 더 뿌엿기만 할 테지요. 하지만 그 길에 함께 설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함께 걸어갈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잊지 말고, 우리 힘내요! 아빠들도, 여러 가족들도 모두 힘내요! 특별한 사람의 큰 결단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용기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낼 테니, 우리 모두, 그냥 사람으로 꾸준히 살아갑시다. 그 언젠가 당신을 꼭 언니라 부르고 싶습니다.

2014년 8월 2일

미류가

* 이 편지는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미류가 8월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가족과 함께 하는 음악회>에서 세월호 가족들에게 띄운 편지로, 미류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스에 게재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