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시작됐다. 정 후보자는 청문회 인사말에서 “문화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또, 문체부 장관에게 필요한 1순위 덕목을 ‘이념적 편향성이 없는 중립’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과거 SNS 정치·이념 편향에 대해서는 “정당인으로서의 행보”라고 반박하면서도 조국 교수 등 실명 거론에 대해서는 “깨끗이 사과드린다”며 일단락 지으려고도 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정 후보자의 낙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장관에 오르려는 정 후보자의 의욕도 커 보였다.

하지만 정성근 후보자는 청문회 과정 내내 자신에게 제기된 △음주운전 등 법규위반, △SNS 상의 정치·이념 편향, △위법적 당협사무소 운영, △일원동 아파트 양도세 탈루, △딸의 영주권 취득 논란 등의 의혹에 대해 뚜렷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1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낙마의 실질적 키를 쥔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성근 후보보다도 자료조사를 철저히 해온 듯 반박에 앞장섰다. 특히, 정 후보자와 같은 '기자' 출신의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장병완 의원이 과거 음주운전을 거론하자 ‘장관돼 봉사하면 된다’며 가장 적극적으로 정성근 구하기에 나서기도 했다. 같은 당 염동열 의원과 김회선 의원 또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검증위원인지 아니면 정 후보자 대변인이 헷갈릴 정도였다. 야당 의원들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던 배우자 국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 후보자가 ‘미 영주권을 취소하겠다’고 밝히며 보조를 맞췄다. 이 대목에선 새누리당 의원석에서 박수가 나오는 등 마치 장을 마감하는 분위기로까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같은 분위기가 바뀐 것은 정확히 오후 4시 30분. 의원들의 보충 질의 순서가 됐을 때였다. 그 이전까지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린다는 지적을 받았던 정성근 후보는 ‘위증 논란’에 불이 붙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깨알’같은 정성근 후보자의 위증사례

반전은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의 문제제기에서부터 시작됐다. 배 의원은 “후보께서 위증을 했다”며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이 청와대 검증 200개 리스트 목록에서 일부 빠진 이유에 대해 질의하자 정 후보는 ‘배 의원이 보낸 것은 다 대답을 했는데, (해당 리스트만 배 의원이 질의를) 뺐다’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 의원은 “우리는 200개 리스트 다 보냈다. 그런데 답을 줄 때 임의로 빼서 보내놓고 다른 의원이 질의하자 어떻게 그런 식으로 대답하느냐?”고 맹비난했다.

다급해진 정성근 후보는 “직원들이 프린트를 하면서 에러가 났다고 답을 했다”며 자신의 발언을 부정하고, 직원들의 실수로 넘어가려고 했다. 배재정 의원은 “모든 실수를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냐. 속기록 분명히 확인하겠다”고 벼렸다. 그러자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은 “정성근 후보에게 두 번이나 확인을 했고, ‘배재정 의원이 요청했을 때 해당 내용은 안 해도 된다고 해서 빼뒀던 것이라고 답했었다”고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이어 새정치민주연합 박혜자 의원은 “금전납부의무에 대해 정성근 후보자 제출한 자료도 위증”이라고 몰아세웠다. 박 의원은 “‘자녀가 소득이 있으면서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에 직접 가입하지 않고 정 후보의 피부양자로 등재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는데, 아들이 홍콩 기업에 소득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도) 정 후보의 피부양자로 돼 있었다고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의 질의에서 정 후보는 “아들의 ‘국내’소득이 없어서 건강보험 피보험자로 돼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의원들에게 상반된 답을 한 셈이었다. 박혜자 의원은 “이런 (거짓)자료를 받아서 검증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겠냐”면서 설훈 위원장에 “위증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경고를 해달라”고 촉구했다.

이 지적에 정성근 후보는 “제가 말재주가 없어서 위증을 했을지 모르겠으나 숨기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설훈 의원은 “지금까지 본 위원장이 본 청문회에서 가장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이 정 후보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향후, 잘못에 대해 제대로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소지가 다분하다”고 재차 경고했다.

그 때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은 “같은 맥락의 이야기”라면서 정성근 후보자의 또 다른 위증을 꼬집었다. 안 의원은 “만 20세 이상의 성인이 헌혈을 하게 되면 적십자 카드에 남는다. 부적격자라고 하더라도 기록에 남게 돼 있다”며 “그런데, 확인해보니 정성근 후보자 기록은 하나도 없다. 그랬다면 하지 않은 헌혈을 했다고 (거짓)진술한 것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당초 ‘헌혈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을 던진 사람은 같은 당 조정식 의원이었다. 그 답에 정성근 후보는 “여러 번 해봤다”고 답했고, 새누리당 의원들 역시 “그런 걸 질문하느냐”, “군대도 다녀왔는데…”라고 오히려 이 같은 질문을 던진 조 의원을 질타했었다. 결과적으로 새누리당 꼴이 우스워진 대목이다.

본 질의 들어갔지만 또 정성근 후보는 곧바로 ‘남 탓’

우여곡절 끝에 오후 5시 경에 본 질의가 시작되고,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 질의 때부터 다시 ‘남탓’이 시작됐다.

정성근 후보는 2005년 음주운전 기록과 관련해 “대리운전 배려차원에서 집 근처(5~6Km)까지 가서 본인이 차를 몰고 가다가 단속에 걸렸다”고 해명해왔다. 그런데, 법원기록은 정 후보가 당시 집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2Km 운전을 하다 단속에 걸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에서 도종환 의원의 진위를 의심했다. 이에 정 후보가 재차 “의문이다. 그 시간에 제가 반대방향으로 갈 리가 없지 않느냐”고 답하면서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도종환 의원은 “그러면 법원 기록이 잘못됐다는 말이냐?”고 몰아세웠다. 설훈 위원장 역시 “참 답답하다. 인간은 누구나 흠결이 있다”며 “잘못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야지 거짓말을 하면 되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정 후보가 음주상태에서 그의 발언에 따르면 여러 차례 음주상태에서 대리운전자를 보내고 5~6Km 운전을 했다는 대목은 또 다른 논란이 됐다. 도 의원은 “이런 방식으로 주취운전을 여러 번 했다는 건데, 음주운전은 내가 살인의지가 없어도 타인을 죽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을 모르시냐?”고 쓴 소리를 던졌다.

▲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1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그렇지 않아도 이날 정성근 후보가 파주 위법적으로 당협사무소를 운영했다는 의혹에 대한 근거자료들을 모두 ‘남 탓’을 하며 부인했다. 특히, 유기홍 의원이 아리랑TV사장 되는 과정에서 정 후보가 직접 사인한 금융자산보유현황 자료에 ‘당협사무실 보증금’이라고 돼 있는 부분 역시 “아리랑TV 직원이 워드작업을 할 때 그렇게 넣을 것 같다”고 발언에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또한 두 자녀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둔 사유와 관련해 “이민”이라고 정 후보의 도장이 찍혀 있던 서류 역시 “제 글씨가 아니다”라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이날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정 후보에 대한 의혹을 공적인 문서를 들이대 비판했지만 정 후보는 “내 기억과는 다르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다 정성근 후보자가 결정적으로 궁지에 몰린 건 1987년 기자협회가 건립한 강남구 일원동 우성7차 아파트에 대한 부동산전매투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부터이다. 정 후보는 3800만원에 임대를 받아 임 아무개 씨에게 8000만원을 받고 팔아넘겼다. ‘부동산 투기’ 의혹 논란이었지만 오히려 문제를 키운 것은 정 후보가 “실제 거주했다”는 위증 때문이었다. 작정하고 속인 것이 아니라면 실제 살았던 집을 기억하지 못할 리 없지 않냐는 추궁에 정 후보는 무너졌다. 그렇게 청문회가 정회되자 정 후보자의 표정에서도 초조한 기색이 엿보였다. (▷관련기사 :"살았던 집 기억 못하는 장관, 국민이 믿겠나?" 정성근 사퇴 촉구)

새누리당도 당혹 역력…과시욕이 부른 참사

▲ 정성근 후보는 7시 30분에 속개된 청문회에서 고개를 숙인 채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잘못이다. 사과드린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사진=국회방송)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응도 정확히 이때부터 달라졌다. 새누리당 신성범 간사는 “정성근 후보가 처음부터 속일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기억착오였는지 재차 해명을 듣고 최종적으로 듣고 판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정 후보는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잘못이다.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적극적인 해명을 포기한 모습이었다. 결국, 그렇게 정회된 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속개되지 못한 채 끝났다. 청문회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후보자에 대한 여야가 합의를 통해 ‘인사청문회경과보고서’를 채택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역시 정 후보에 대한 임명에 대해 재고해달라는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의 요청에 “참고하겠다”는 답을 한 상황이기도 했다.

이날 하루 청문회로 정성근 후보자의 전체를 판단할 수는 물론, 없을 것이다. 다만, 현장에서 답변하는 모습을 보며 ‘과시욕’이 큰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음주운전 동영상에서 드러난 “나 기잔데”라는 특권의식을 비롯해 “헌혈 많이 해봤다”, “대리 운전자를 배려해 음주운전을 한 것이다”라는 등의 그의 발언들은 대체로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다는 포장을 위한 어법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철저히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돌리고 있었다. 기자는 직원이 워드작업을 잘못했다는 발언을 들으며 그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직에 적절한 인물일까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위증 논란이 나기 훨씬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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