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오늘 1일 각의 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할 방침인데 대해 논란이 뜨겁다. 주변국가의 입장에서는 전범국가인 일본이 어떠한 형태로든 다른 나라에 대해 군사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으 공식화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의 결정에 국내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언론들도 일본 정부 결정의 이와 같은 측면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인정이 주변국들과의 관계에 해가 되며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으므로 해당 권한의 행사가 최대한 투명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거나 한반도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한국의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고 지적하는 식이다.

▲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 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일부에서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인정이 평화헌법 개정으로 가는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아베 신조 정권은 출범 때부터 헌법 개정에 대한 남다른 열의를 불태워왔다. 언제까지 전범국가로 살 수는 없으므로 헌법을 고쳐 당당히 운용할 수 있는 군대를 갖추고 내외에서 제기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위협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리있는 얘기다. 하지만 주장이 좀 더 섬세할 필요는 있다. 일본 정부의 이번 결정을 비판하기 위해 주최측 추산 일만 명에 가까운 도쿄 시민들이 총리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는 것은 평소 정치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일본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이다. 아베 신조 내각이 헌법 개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런 반발을 자처하는 결정을 하는 게 평화헌법 개정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일본 정부의 잇따른 우경화 행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는 일본 정치의 국내 환경을 먼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내각제 국가로 의회의 총리 불신임과 총리의 의회 해산권이 보장돼있는 나라다. 때문에 수가 틀리면 언제든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 집권 자민당이 양원에서 과반 이상을 점하고 있으나 자민당도 여러 계파로 구성돼있기 때문에 야당들과 내부 계파 일부가 합의하면 총리 교체를 위한 불신임안이 의결될 수 있다.

▲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집단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헌법 해석을 변경하는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하기 전날인 30일 저녁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의 총리관저 앞에서 시민들이 '아베는 끝났다(Abe is over)'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자위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곤란한 것은 아베 신조 내각의 성격상 정국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여당이 포위된다는 것이다. 집권 자민당으로서는 이미 지난해 말 특정보호비밀법안을 처리하면서 총리 불신임안이 제출되는 등 한 차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총리 공관 앞에서 오늘날 1만 여명이 시위를 할 수 있는 동력도 여기에서 형성된 측면이 크다. 전범국가에서 보통국가가 되는 길이라는 것은 물론 이념적으로 우익의 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당의 권한을 확대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 정부가 ‘보통국가’가 되기 위해 다시 되찾아야 하는 권한인 정보기관의 중앙집중화와 군사조직의 효율화에 따르는 필연적 작용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야당에게는 정치적 손해다. 때문에 야당들은 여당에 대한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야권재편’이란 기획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정치의 불안정성이 증대되면 아베 신조 내각이 감당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협소해진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일본 야당들 사이에서는 야권의 재편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애초 아베 신조 내각이 성립되던 시기 개헌파가 의석의 3분의 2를 장악했다는 식의 구도가 일정 부분 허물어졌다. 아예 야권 재편을 위한 ‘결속의 당’이란 이름의 새로운 정당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의회 개헌파의 선봉에 섰던 일본유신회는 야권재편에 대한 태도를 놓고 사실상 분당절차에 돌입했다. 집권자민당의 우익적 스탠스에 동조해야 한다는 이시하라 신타로의 도쿄파와 호헌파와 손을 잡더라도 야권재편을 우선해야 한다는 하시모토 도루의 오사카파가 결별한 것이다.

때문에 아베 신조 총리로서는 지속적으로 우익적 이슈를 제기함으로써 이러한 야권재편의 과정에 분열의 씨앗을 제공해주고 극우적 분파를 집권 자민당의 영향력 아래에 묶어두기 위한 시도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고노 담화 검증이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주변국들에 근심 걱정을 끼치는 이슈들이 이런 카테고리 안에 들어간다.

일본 정부 이런 딱한 처지는 국제정치적 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일본은 어쨌든 전범국가다. 거기에 극우파 내각이라면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외교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일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일본이 이런 상황을 뒤집고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증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변수는 늘 미국과 북한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을 통한 중국 견제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될 수 있다. 미국이 반복해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지지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일본 정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공식화와 미국에 의한 한미일 동맹 강화 시도는 국제정치에서 일본에 든든한 배경을 제공해주는 계기가 된다. 거기에 아베 신조 총리의 입장에서는 앞서 설명한 이유로 당연히 국내정치적 측면에서도 이득이다.

▲ 납북자 문제 등에 대해 브리핑하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연합뉴스)

비슷한 예가 하나 더 있다. 최근 가시화되고 있는 북한과의 납북자 관련 협의다. 오늘 북한과 일본 정부 당국자들은 납북자 특별조사위원회와 대북제재 해제를 놓고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북한이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일본인 납북자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하면 일본 정부가 인적 왕래 규제조치, 송금보고 및 휴대반출 신고금액에 관한 특별규제조치, 인도적 목적의 선박 입항 금지 등 3개 제재 조치를 해제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대북제재가 실제로 얼마나 해제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어찌됐든 사태에 진전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본 정치에 있어서 납북자 문제는 일종의 ‘트라우마’다. 아베 신조 총리 등 일본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공식 석상에서 재킷에 달고 있는 ‘파란 리본’ 배지가 바로 이 납북자 문제의 해결 의지를 상징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납북자 문제 해결이 이슈가 되는 순간 정국이 여당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아베 신조 총리는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야의 초당적 협력이 절실하다며 야당의 협조를 요구했으며 이에 민주당, 일본유신회, 모두의 당, 결속의 당 등 소속 의원들이 동조하고 있는 상태다. 납북자 문제 해결이 눈 앞에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일본 정치는 안정화된다.

물론 일본이 아무때나 납북자 문제를 꺼내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또 국제정치적 전제가 필요하다. 주변국들이 북한 문제에 대해 공동대응을 강화하는 시기에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북한과 직접적인 협의를 통해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에 착수하는 게 불가능하다. 어찌됐건 각자의 문제를 공동대응으로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이 북한과 ‘직거래’를 하는 경우는 북한 문제에 대한 주변국들의 공조가 무너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별다른 국제정치적 틀이 제시되지 않는 경우이다. 6자회담의 재개 가능성이 희박하며 북한 스스로도 어디와 대화를 해야 하는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딱 그렇다.

▲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결국 우리 정부 입장에서 일본의 행보에 대한 효과적 견제책을 사고하기 위해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때 핵무기 등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정치적 틀을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합의를 이뤄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를 고리로 해서 일본 정부의 납북자 문제 해결에 대한 제동을 걸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절차에 대한 투명성 확보를 요구하거나 한반도 문제에 대한 사전 동의를 확약받는 등의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다. 물론 그러한 성과가 가능한 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의 생각은 또 다르기 때문이다.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가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제자리 걸음의 지루한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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