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협상이 타결되었다. 작년 7월 결성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생겨난지 일 년 여만인 6월 28일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와 합의한 협악을 최종적으로 가결하였다. 그간 삼성이 '무노조'라는 이름의 노조 비허용 정책으로 유명했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깨기 어려웠던 장벽에 커다란 금을 가게 만든 것이다. 물론 삼성그룹에 노동조합이 단 한 개도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삼성에서 노동 운동을 하려는 이들은 무수한 탄압과 회유에 시달려야 했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발을 붙이기도 어려운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했었다. 계속 그런 대처로 일관했던 삼성으로 하여금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만든 것이다.

▲ 6월 28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삼성전자서비스 간의 노사 단체협약이 조인되었다. (사진=참세상)

삼성전자서비스와 노조가 맺은 단체 협상에는 기본급 급여체계와 노동권과 복지후생에 대한 보장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서비스에 일하던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은 기본급이라고는 없이 오로지 각 서비스센터에 접수되는 수리 건수에 부과되는 수수료로만 한정하는 체제였다. 그 수수료의 기준도 명확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지급되어야 할 유류비, 통신비 등의 부가 경비도 모두 개인이 스스로 납부해야 했다. 시간외수당이나 휴일수당 같은 것은 애초에 바라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몸이 안 좋거나 개인적으로 사정으로 조금만 휴가를 갔다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현재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에서 내건 표어 중 하나이자 자체적으로 만드는 팟캐스트 방송의 이름이 노동자들이 각 센터의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왜 월급이 이런 식으로 책정되는지 물으면 월급에 당신이 일한 내역이 반영되어 '다 녹아있다'는 변명에서 나오는 '다 녹아있네'일까.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몇몇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기 위해 위험한 곡예를 벌인다. 마치 EBS의 장수 다큐멘터리 중 하나인 <극한직업>에 나올 것처럼 안전줄 하나 매달지 못하고 겉보기에는 멋지지만 실제 작업에는 오히려 방해만 되는 구두를 품위 유지를 이유로 벗지도 못한채 고층 아파트 벽에서 아슬아슬하게 작업을 해야 했다.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오직 위험수당 18000원이 전부다. 각 센터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에는 부산 동래센터에서 시간외수당, 휴일수당 등의 각종 수당에 대해 제대로 지급할 것을 명시한 협약서를 쓰는 일이 일어나자 삼성전자서비스는 당장 해당 지역을 맡던 협력업체를 폐업 처리하고 협약서 작성을 주도한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삼성전자서비스들의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게 되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삼성전자서비스는 계속 이런 문제들에 대해 협력업체와 직원들 간의 문제라며 계속 선을 그을 뿐이었다. 정작 각 센터의 간판과 수리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명함, 복장 등의 각종 장비에는 삼성의 푸르고 길쭉한 타원형의 로고가 계속 들어가 있는데도, 또한 협력업체의 선정이나 운영, 관리에 있어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의 관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남에도 이들은 자신의 문제가 절대 아니라고 한 것이다. 결국 작년 7월,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자들은 불합리한 상황을 더이상 참지 못하고 노동조합을 결성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입을 선언하게 되었다.

그간 삼성에서 노동 운동을 해왔던 이들이 겪었던 것처럼, 이들도 많은 어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노조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수리 물량이 들어오는 것을 막거나, 사소한 부분에서 꼬투리를 잡아 징계나 해고 조치를 내리는 것은 물론 2014년에는 부산 해운대, 충남 아산, 경기 이천에 위치한 서비스센터를 잇달아 폐업하는 등 소위 '위장 폐업'을 감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회사 측의 조치보다 이들에게 더 많은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던 사건은 동료들의 죽음이었을 것이리라. 작년 9월 대구 칠곡센터에서 근무하던 임현우 씨가 뇌출혈로 인한 과로사로 세상을 떠난 뒤 작년 11월에는 충남 천안센터에서 근무하던 최종범 열사가 노조 활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만든 카카오톡 채팅방에 유서를 남긴 뒤 자살하였다. 유서에는 그간 회사에서 겪었던 고통, 그리고 전태일 열사처럼 되고 싶은 심정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올해 5월에는 경남 양산센터에서 근무하던 염호석 열사가 자살을 선택했다. 최종범 열사가 그랬던 것처럼, 노동조합의 승리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그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작년 12월 삼성전자서비스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교섭권을 위임하며 1차 합의를 맺었지만 정작 협상은 장기간 지연되고 합의안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채 오히려 노조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근무하는 서비스센터를 하나씩 없애고 있던 상황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는 매우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 명동 거리 일대에서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자들이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삼성전자서비스의 문제를 알리는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이들의 고통과 희생을 딛고서 계속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자들은 움직였다. 단순히 처절함과 비극만을 강조하며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참신한 방법으로 완급을 조절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와 같은 인디 뮤지션과 함께 '삼성을 바꿔 삶을 바꾸자'라는 표어를 내세워 움직이는 한편 앞서 언급했던 '다 녹아있네' 같은 팟캐스트 방송 등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에 유대감을 만드는데도 집중했다. 또한 삼성그룹에서 관리하는 미술관 '리움'이나 강남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대규모 홍보공간 '삼성 딜라이트'에 찾아가 시위를 하고, 염호석 열사의 죽음 이후에는 삼성그룹의 본관 앞에서 장기간 농성을 하는 등 강단을 조절하면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노력했다. 여기에 '반올림'이나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같이 예전부터 삼성그룹과 한국 사회의 노동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이들이 결합하며 운동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속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전략들이 있었기에 삼성전자서비스의 각종 공작과 경찰이 장례식장에 급습해 염호석 열사의 시신을 강제로 가져가는 등의 행위를 버티고 소중한 성과를 얻을 수 있던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협상 타결 직전 이건희 삼성 회장의 건강 악화를 지적하며 세상을 떠나기 앞두고 심정이 변했다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이들의 운동과 노력이 없었더라면 그러한 결정조차도 나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번에 맺은 노사 단체 협상이 완전한 것은 아니며, 노조 스스로 '절반의 승리'라 평가했던 것처럼 앞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도 적지는 않다. 앞서 언급했듯 이번 협상에서 삼성은 노사 교섭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경총에 위임권을 부여해 협상을 진행하였다. 심지어는 협상 조인식에서도 사측 인원에 삼성전자서비스가 아니라 경총의 사람들만이 참석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와 서울지방노동청 관계자가 나와 협상을 보증한다지만, 아직 삼성은 적극적으로 노동조합과 노사 협약을 인정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상황이다.

또한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자들은 직고용이 아니라 각 센터를 관리하는 협력업체 직원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노사협약이 바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조인한 노사협약을 기준으로 각 협력업체 별로 각각의 노사협약에 대해 협상하고 조인해야 한다. 다시 말해 노조원이 없거나 현저하게 적은 지역의 서비스센터의 경우 노사협약이 적용되기 어려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징계위원회 구성이나 위장 폐업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사측의 수용 문제로 명확한 문구 대신 '성실히 노력한다'거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구성한다' 등의 문구로 처리한 것도 아쉬운 일이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에서 최초로 맺는 노사협약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 많이 진전한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고민해야 할 부분은 산적해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노사 협상 타결은 한국 사회에 있어 의미가 클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기는커녕 불합리한 상황에 지속적으로 놓이고, 그나마도 보장되었던 권리마저 빼앗길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어진 노동자 대투쟁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권리는 그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향상했지만 그것은 반쪽의 승리였다. 아니, 그 승리의 성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화 운동 출신의 집권한 정권들은 노동권 보장과 확대에 주력하기 보다는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계속 압력을 받아야만 했다.

그 아이러니함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정리 해고, 비정규직 확대 등을 명시한 1996년 노동법 개정안이 날치기로 통과된 이후 전면적 총파업으로 인해 무산되었지만, 정작 IMF 이후 집권한 김대중 정권에서 민주노총, 전교조 인정 등을 조건으로 다시 정리 해고 등 노동권 약화에 대한 사항을 다시 처리했던 일일 것이다.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되어 김대중 정권에서 대우자동차 파업 폭력 진압 사태, 노무현 정권에서 전국공무원노조 불인정, 비정규직보호법 사태, 이랜드-홈에버 파업 진압 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매우 최악일 따름이다. 2009년 강제 진압당한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은 아직도 많은 압박과 핍박 속에서 살아간다. 한동안 문제가 되었던 통상임금 문제는 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최근 교원노조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법외노조가 되고 말았다. 일반적인 노조법에서는 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이 보장되나,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비슷한 시기에 제정되어 전교조를 법적노조로 만들었던 교원노조법에는 각종 제약 사항이 들어 있었고 그 중 하나가 해고된 교원의 노동조합 가입을 금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 정부는 이 조항으로 꼬투리 잡아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다.

또한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야근과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급여를 받으며 살아간다. 주휴수당, 시간외수당 같은 법적으로 보장받는 수당은 정말로 법의 이름일 따름이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노동조합 결성은 꿈도 못 꾸고, 많은 이들은 에너지 드링크를 밥처럼 마시면서 잠을 쫓을 뿐이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한국의 노동자들은 피폐해지고 있다.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곳도 상황은 좋지 않다. 정당하게 파업을 하려해도 사측은 각종 징계와 차별, 해고, 그리고 용역을 통한 진압으로 응수하고 경찰, 사법부, 행정부는 웬만해서는 노동조합을 보호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전국 곳곳에 장기 투쟁 사업장이 즐비하다.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돈도 벌지 못한채 겨우 장기 투쟁을 마쳤다고 해도 아직 끝난게 아니다. 한진중공업, 기륭전자, 재능교육 등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사측은 노조와 '사회적 협약'을 맺어 놓고도 어떻게든 지키지 않으려 애쓰고 심한 경우에는 다시 노조를 탄압하려 한다. 아니면 기륭전자의 사례처럼 노동자들을 버려둔채 야반도주를 하거나. 그야말로 한국의 노동권 보장 상황은 밑바닥에 붙어버린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싸움은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에 가입한 대학교의 청소, 경비 노동자들 만큼이나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이 학교라는 공간의 사각지대로 위치했던 비정규직의 문제를 비추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싸움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기업의 크기와 반비례에 정작 노동권의 보장은 세계 수준은커녕 한국 법에서 명시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불합리에 대한 저항이었다. 노동권 보장이 계속 후퇴하는 상황에서 이에 조금이라도 저항하고 맞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메시지인 것이다.

물론 이들만으로는 한국 사회 전체를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노동조합이라고는 발을 붙일 수 없을 것같았던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할 수 있다는 모습은 다른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일깨우게 하고 우리도 이처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단초가 되기엔 충분하다. '노동'이 사라진 이 곳에서, 다시 노동을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는 것이다. 삼성이 협상 조인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에서 드러나듯 삼성은 지금까지 다른 기업에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든 노조를 없애려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을 가능성은 높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사람들이 그 압박을 이겨내고, 많은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길 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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