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통합진보당은 2011년 당시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진보신당에서 빠져 나온 노회찬·심상정·조승수 등이 있었던 통합연대의 참여로 만들어졌다. 유시민 등의 국민참여당을 끌어들여 벌인 '실험'이었다. 이념적 외연은 더 넓어졌으나, 노동조합의 지지는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진보신당은 ‘스타 정치인’들이 빠져 나가는 상황에서도 통합을 거부했다. 2012년, 통진은 파행 끝에 통진당과 정의당으로 다시 분화되었다. 진보신당은 2012년 총선 과정에서 등록 취소당한 후 2013년 7월 재창당 과정에서 노동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10년 전 그 민주노동당에서 생각 혹은 전략의 차이로 분화된 ‘계승자’가 무려 셋이다. 원내정당이 둘, 그리고 원외정당이 하나. 덤으로 원외엔 녹색당도 있으니 진보정당으로 분류될 수 있는 정당이 넷이다. 이러한 시대에 진보정당 운동은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전혀 정치인 같지 않은 모습으로 종로구에서 노동당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를 만나 물어보았다.
미디어스(이하 '미'): 사실 한국 사회가 좀 더 심하게 겪고 있기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진보에게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라, 극좌파와 극우파가 함께 늘어나는 식으로 극단화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런 경향 속에서 한국 사회가, 사회불평등이 심화될 것임은 분명한데, 진보주의자들의 대안이 대중들에게 전달되기 위해선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할까.
세 개의 노동자 계급을 엮어내는 것이 좌파의 과제
장석준 부대표(이하 '장'): 대단히 어려운 문제인 것이, 지젝이 어디선가 공산주의 세미나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 ‘노동자’라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세 개의 집단이 있다고. 하나는 지식노동자다. 대학교육을 받고, IT문화 등등에 익숙해져 있고, 사실 이 안에 비정규직도 있다. 근데 비정규직에서 출발한다 해도 언젠가는 중산층이 될 거란 기대가 있고, 실제로 중년이 되면 중산층이 되기도 한다. 이 집단이 하나 있고, 두 번째로는 전통적인 노동자가 있다. 이들은 계속해서 선진국의 제조업이 공동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은 이들이 특권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멸종위기종’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정말로 취약한 영역에 있는, 비정규직의 다른 측면, 별다른 기술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있다. 이주민 노동자들이 포섭되는 그 영역이다.
이렇게 세 개 집단이 있는데, 공산주의란 건 딴 게 아니라, 이 세 개 집단이 연대를 하는 것이 정말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인데, 그게 성공한다면 그게 공산주의자라고 지젝이 얘기를 한 적 있다. 지젝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지만, 서구에서도 이 세 집단이 함께 어울리고 연대하는 게 어렵다는 얘기를 하는데, 한국 사회의 문제가 특수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다. 다만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했기에 이 문제점들이 압축되어 나타나는 측면이 있어 더 골치아픈 부분은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유럽에서도 지금 상황을 보면, 아큐파이 운동이나 급진적 운동이 지지를 받는 그룹은 사실은 첫 번째 부류 노동자들이다. 첫 번째 노동자들 중에서도 주로 젊고, 중산층이 되려고 빚을 져서 대학교에 들어갔으나 빚만 지고 있는, 그런 이들이 좌경화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전통적 노동자들이 오히려 극우파를 지지하게 되는 게 최근 추세다. 예전에는 사민당이나 공산당을 지지했었는데, 지금 당장은 자기 이해를 지키는 길이 동유럽으로부터 오는 이주노동자들을 막아주는 극우파들인거다. 세 번째 그룹은 아예 정치에 접속할 수 없기 때문에, 간헐적으로 폭동을 일으킨다. 그게 지금 유럽의 정치지형도다.
한국은 여기에다 세대문제까지 얽혀서 좀 더 복잡하게 드러나는 상황인 것 같다. 진보정당의 경우 여기서 대안이 되겠다고 했지만 이 모순이 그대로 자신들에게 투영되어, 자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도 급급한 그런 상황이다. 여기에서 저도 쌈빡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2천년대부터 이어지던 진보정당 운동이 냉정하게 말해서 486세대 운동의 한 부분이었다는 거다. 486세대 운동 중 보수양당으로 가지 않은 이들의 세력화가 민주노동당이라는 틀 속에서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운동의 유산이 세 개로 나눠진 상황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 지난 2013년 9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유령학파 주최로 진행된 '시로 점령하라(詩위, Protestry-Occupy wuth Poems)' 침묵 시위 퍼포먼스에 참여한 프랑스의 세계적 철학자 알랭 바디우(왼쪽)와 고은 시인(오른쪽). (연합뉴스)
하지만 진보정당 운동이 계속해서 이렇게만 간다면 운동의 재생산도 안 될 것이고, 프로그램이 혁신될 여지도 없다. 또 이들이 깊은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기존 조직노동운동 바깥에서 새로운 활력을 끌어들일 여지도 없다. 그래서 세대론에 완전하게 기댈 수는 없지만, 이분들 바깥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진보정당 운동에 결합을 시켜야 운동이 혁신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 ‘바깥’이 뭐냐고 묻는다면 여러 함의가 있을 수 있다. 비정규직일 수도 있고, 젊은 세대일수도 있고, 새로운 사상일 수도 있다.
: 그렇다면 다시 돌려서, 아까 전통적 노동자가 ‘멸종위기종’이라 진단해주셨다. 이 사람들이 퇴직을 하면, 대기업은 저 정도 규모의 정규직을 쓰지 않고 최소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안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조직노동자의 비율이 높지 않은데, 지금보다도 훨씬 더 낮아질 것이다. 이게 앞으로 십년 이십년 안에 닥칠 일이다. 이 경우 진보정당 운동이 더더욱 어려워질 거란 점에서, 이 시기가 오기 전에 노동조합과 함께 하는 어떤 타개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중기적인 고려가 없을까.
‘멸종위기종’ 조직노동, 새로운 실험들이 필요하다
: 추상적으로는 반복적으로 얘기되어왔던 바이긴 한데, 실천적으로는 구체적으로 얘기되지 못한, 기존의 정규직에 특화됐던 한국의 노동조합 형태를 넘어선 노동조합 모델이 필요하다, 한국에선 노동조합이 기업 내부 조직으로 굳어져 있고, 이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간 우리가 ‘산별노조’, ‘산별노조’ 노래를 불렀는데, 산별이라는 게 단순히 독일 노동조합 형태를 그대로 따라가는게 아니라, 원래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라는 건 넓은 스펙트럼이 있다는 거다. 그 넓은 스펙트럼을 실험해보자는 게 원래 탈기업노조의 취지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노동자들은 어떻게 보면 20세기 대중노동자보다는 차라리 19세기 노동자에 가까운 노동유연성의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기에 작업장 중심의 노동조합이 아니라 생활현장이라든지, 지역중심의 조직화라든지, 혹은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의 형태가 중첩된 형태라든지, 그런 조직실험이나 운동실험들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다.
말씀하신 맥락과 연결시켜보면, 가령 지금 민주노조 운동을 조직했던 세대들이 퇴직하게 되면, 그분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한국 사회에 진보적인 여론에 기여해야 한다. 이들이 대한민국 어버이연합이 되어서야 곤란하지 않겠나. 그렇게 보면 유럽에서처럼 연금생활자 조직이란 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십년 이십년 있으면 민주노조 운동했던 이들이 퇴직하고 연금생활자가 되는데, 이들이 새누리당으로 넘어가도록 두지 말고 연금생활자 조직 같은 걸 만들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이런 변환이 필요한 임계점, 아니 임계점이 이미 지난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은데, 늦었더라도 이런 식의 대처가 필요하다.
미: 최근 협동조합 붐도 그런 식의 조직실험 혹은 운동실험의 차원에서 참고할 부분이 있을까. 혹은 진보정당 운동의 입장에서 협동조합 붐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지점이 있을까.
장: 협동조합 운동도 굉장히 여러 가지 맥락들이 겹쳐 있다. 원론적으로만 보면 협동조합 운동은 노동조합 운동과 함께 노동운동의 양날개라고 본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80년대 이후 민주노조 운동이 지나치게 노동조합 중심으로 되어 왔기 때문에 협동조합 운동은 방치되어 왔고 오히려 중산층 운동이 되었다. 최근의 협동조합 붐은 뒤늦게 그 진보적 가치를 주목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국가가 개입해서, 국가의 복지를 늘리지 않는 알리바이로서 협동조합을 장려하는, 영국 보수당의 ‘빅소사이어티’ 담론처럼, 국가가 직접 나서서 복지해야 할 영역을 사회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떠넘기는, 그런 측면들도 얽혀 있다. 그래서 협동조합이라고 100% 선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그간 노동조합이 공장 바깥에서의 생활의제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연대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들이 거의 없었고 발전되지 못해왔기 때문에, 그게 꼭 협동조합이라는 간판이나 틀을 갖추지는 않더라도, 넓은 의미에서 그렇게 포괄되는 이슈 및 관심들을 운동에 포함시켜야 된다는 측면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제기이면서 흐름이다, 이렇게 본다.
미: 최근 상황을 보면,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오히려 서민층이 민주주의 문제에는 관심이 덜한 현상이 이어지는 것 같다. 서민들이 정치의 문제가 자기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국정원 댓글 사건 같은 것이 터져도 중산층이 아닌 이들은 반응하지 않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는 것 같다. 진보정당 운동은 이러한 경향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486세대 이후 진보운동, ‘지금의 30대’에 더 주목해야
장: 그런데 그 부분은,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인 체제 성격이 강화되어서 새로 나타난 현상 같지는 않다. 한국 사회의 경우, 한국 자본주의의 경우 쭉 그래왔던 것 같다. 민주주의적 의제에 가장 민감한 이들이 흔히 486세대라고 불린 이들인데, 이 세대들은 계층적으로 보면 대부분 중산층이다. 중산층 중에서도 상층, 강남에 살기도 하고, 아파트 소유자이기도 하고, 아이들 학원 보내는 문제에 관심이 많고.
반면에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은, 하층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오히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그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세화 선생이 ‘존재와 의식의 괴리’라고 불렀던 그 현상 말이다. 이것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고착된 문제가 주욱 이어지는 상황인 것 같다.
▲ 민주노총, 한국노총,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참여연대 회원들이 지난 5월 2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투표권 보장을 위한 노동·시민단체 기자회견'을 열어 고용주의 투표시간 보장과 이를 위한 선거관리위원회와 고용노동부의 철저한 감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말씀하신 문제도 아까 진보정당 운동이 한국 사회의 착종된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제는 사실은 참여정부 때, 참여정부가 진지하게 개혁을 고민했다면, 노동문제의 사회권 이런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체감을 할 수 있는 이런 개혁들을 해서, 이런 딜레마를 뚫고 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이 부분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더 고착된 부분이 있다.
그리고 2선으로 얘기하면 참여정부가 실패했으면 당시의 진보야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라고 얘기했던 그 내용을 가지고 노무현 이후의 대안으로 등장해야 했는데, 2007년 대선을 기점으로 해서 이도 실패한 것이다. 1선세력과 2선세력이 둘다 실패했기 때문에 이게 해결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더 고착된 측면이 있다.
미: 그러니까 2004년 총선에서부터 2007년 대선에 이르는 이 기간 동안 참여정부도 민주노동당도 진보좌파들의 진보적 정책 대안이 민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을 유권자들에게 주지 못한 것이 딜레마를 돌파할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리고 더욱 딜레마를 착종시킨 상황이란 분석이 되겠다.
장: 그렇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의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진보적이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인 집단이 있고, 사회경제적으로는 피해대중에 가깝지만 정치적으로는 새누리당에 포섭되어 있는 집단이 있는데, 이 괴리를 진보정당이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결국은, 이 스테레오 타입에 잘 포괄되지 않는 집단이 나타날 때 균열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목할 수밖에 없는 건 중산층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전망은 상당히 흐트러졌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정보지식 역량을 갖춘 집단, 세대적으로는 젊고 대체로 사회에 당장 뛰어들었을 땐 비정규직 일자리를 갖게 되는 집단, 그 집단이 향후 어떤 식으로 행동하고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욕구를 어떤 식으로 표출하느냐, 그런 행위양식들이 그들 바깥에 있는 집단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느냐, 이런 정황들의 조합으로 바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한국 사회가 지금껏 그런 식으로 바뀌어 왔고, 다른 사회에서도 결국 그런 집단이 등장했을 때 사회에 어떤 충격파를 주느냐에 따라 변화되었던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미: 사실 지금까지 제1야당이나 진보정당을 포괄하는 진보담론에서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퇴장하면 결국엔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는 암묵적인 기대나 전망 속에서 활동을 해왔는데, 2천년대 후반 이후 20대 보수화 문제나 ‘일베’ 등의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물론 세대별 인구구성 자체가 젊은 층에 불리하게 변해 버렸다는 측면도 있다. 어쨌든 ‘미래는 다를 수 있다’는 전망을 암울하게 만든 것이 최근의 조류다. 그렇게 후속세대에 대한 진보담론의 문제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이 문제에 있어서 흔한 486세대의 ‘우리 자식들이 새로운 진보세대’라는 자뻑논리를 넘어 좀 다른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있는데, 어떤 것들이 가능할 것인지.
장: 여러 가지 측면의 문제가 있다. 가령 대학사회에서의 진보적인 흐름을 되살려야 한다, 이런 것도 과거 80년대와는 다른 문맥에서라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과제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저런 과제들을 나열해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이 20대가 아닌 것 같다는 거다. 오히려 30대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사실은 과거 민주노동당에도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낸 것은 당시의 30대였다. 어쩌면 어느 사회에서나 비슷할 것 같다. 사회에 갓 진출한, 어찌보면 연령적으로나 계층적으로 자기가 지향하는 집단 내에서 가장 하층에 속한 이들, 하지만 상승을 하고 싶은 이들, 그런 이들이 이 사회의 가장 실질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민감하고, 거기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2천년대 초 민주노동당도 그런 30대들의 지지를 얻어 성장해 갔다면, 지금의 진보정당이 추구해야 할 것도 그런 이들의 지지일 수 있다. 학교 다닐 때는 ‘일베’일 수 있다. 하지만 공장이나 사무실에 가서 현실에 부딪히고 나서, 느끼는 그 사람들의 생각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모아내고 실체화하고, 접속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여전히 진보정치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일 거라고 생각한다.
미: 제 주변 친구들을 봐도 이제는 오히려 대학사회에서는 진보적인 정치적 견해를 접하지 못하다가, 심지어 자본가 논리를 체화한 수업을 괴리감 없이 듣다가, 취직 이후 뭔가 이건 아니다 생각하고 진보적인 정치견해를 구하고 싶어 두리번 두리번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나꼼수’와 같은 매체가 이런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부분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진보정당이 콘텐츠의 생산과는 별개로 유통이란 측면에서 이런 이들에게 뒤지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뉴미디어 대응의 문제까지 포괄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한 대응방법을 말한다면.
장: 그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진보정당이 자산도 부족하고 상상력도 취약하여 그런 문제에서 뒷꽁무니를 따라가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좀 더 근본적으로 보면 결국은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인 문제에서 수구 vs 민주라는 도식이, 사회경제적 쟁점으로 연결된 보수 vs 진보라는 도식보다 한국 사회에 훨씬 더 익숙하고, 단순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호소력이 있다. 더구나 지금 수구정당이 집권세력이고 거기에 대해 보수정당이 야당 역할을 하는 현재구도가 이명박 정부 이후 7년 간이나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나꼼수’식의 접근이 큰 효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너무 강하게 얘기해서 단계론을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까지는 할 수 있는게 없고, 그후에 문재인 등등이 집권해야 그때 진보정당의 때가 열리는 거냐, 그렇게 결론이 이상하게 갈 수 있는데 그건 아니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시도를 해야 한다. 가령 486세대와 그 이후 세대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갈려지는, 대립은 아니라도 차이가 드러나는 영역들, 가령 주택 문제가 대표적일 텐데, 그런 문제에서 진보정당이 보수야당이 전적으로 끌어안고 대변하지 못하는 의제들을 발굴하고 정책대안을 주장하여 지지자들을 결집시켜야 한다. 팟캐스트 같은 뉴미디어를 활용한다 할지라도 매체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내용을 담아낼 때 정치적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 18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한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패널 주진우 기자(오른쪽)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지난 2013년 7월 12일 오전 첫 공판이 열리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 지난 총선에선 의외로 종교인 과세 같은 것들이 청년층에게 호응을 얻었다.
장: 표로 얼마나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당의 인지도를 높이고, 당의 지지층과 긍정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어떤 층을 만들어낸 건 맞는 것 같다. 그런 정책이슈들을 계속해서 발굴해야 할 것 같다.
좌파들에게도 민주주의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미: 우파들이 보기엔, 진보주의자에겐 민주주의가 도구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진보적 이념의 실현을 통해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이 부분이 궁금할 것 같다. 생각이 다양한 분들이 있겠으나 현재 노동당의 위치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장: 서구 사민주의에 대해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있을 수 있다. 서구 사민주의의 현실적 성취가 복지국가인데, 복지국가 수준의 성취가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앞선 성과다, 혹은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 문제로는 논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그것과는 다른 방식의 집권 경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이미 시대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논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리 서구 사민주의가 성취한 것을 훨씬 넘어서는 급진적인 근본적인 의제를 추구하는 정치세력이라 하더라도 집권의 방식이란 것은 결국 보통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실현된 대의민주주의라는 경로를 철저하게 존중하는 상태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민주주의라는 건 단순히 수단이 아니라 절대적인 조건이라고 본다. 한계를 갖고 있고, 처칠이 얘기했듯 나쁜 제도들 중에선 그나마 나은 것, 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부정하거나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초 지금의 상황에선 어떤 의제를 추구하든 우리가 여기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노동당에 있는 분들은 동의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노동당보다 왼쪽에 있는 정치조직에서는 어찌 생각하는지는 제가 모르지만 말이다.
미: 우리가 왕정국가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 정도의 체제에서 시작한다면 그렇단 말일까.
장: 민주주의란 게 엄청난 한계도 있고 그렇기에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가미하는 여러 가지 실험들이 필요하지만, 결국엔 인류가 도달한 권력을 요리하는 그나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제도인 것 또한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가 현실사회주의의 실패 속에서 그 점을 확인했기 때문에, 결국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정당 분립구도에 한국적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다. 유럽에 대입할 경우 사회민주주의 성향 정도로 분리될 수 있는 성향의 사람들이 정의당 안에도 있고 노동당 안에도 있다. 이들이 따로 있는 이유는 성향의 차이가 아니라 민주당 혹은 새정치민주연합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다. 정의당 사람들은 그들과의 공동정부까지 열어둘 수 있다는 입장이고, 노동당은 좀더 독자적인 정체성을 중시한다. 그런 차이가 갈라놓고 있는 것이라, 서유럽의 기준들을 놓고 보면 상당히 복잡하다.
미: 이념이 아니라 방법론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
비례대표 확대 이후 다당제 성립, 내각제는 그후에 가능하다
장: 한국의 진보운동에 있어 천형이라 볼 수 있는 자유주의 세력과의 관계. 이걸 기준으로 해서 갈라진 측면이 크다. 노동당 안에도 사회민주주의적인 성향, 혹은 그보다 조금 더 급진적인 성향, 혹은 녹색당과 거의 비슷한 성향들이 함께 담겨 있다.
미: 그렇기에 진보정당들은 선거제도의 변혁을 많이 주장한다. 그런데 그러면 제1야당 지지자들은 ‘자기들 좋은 제대로 바꾸려는 것 뿐인 것 아니냐’라고 냉소하기도 한다. 그들에게도 비례대표제 확대나 다당제로의 전환이 당신들에게 나쁜 일이 아니라 도움이 될 거란 점을 설득할 논리가 있다면.
장: 민주노동당 때부터 주장해왔던 것들을 좀 더 세련되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금 박근혜 정부의 경우도 87년 이후 대통령제의 최종 귀결이라고 본다. 51%를 가지고 당선되었기에 49%를 끌어 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버리는 전략이다. 87년 민주화의 상징으로 대두된 대통령제는 결국 49%의 철저한 패배로 끝나 버렸다. 이게 민주주의는 아니지 않느냐. 결국엔 의견의 합을 만들자는 건데, 그 의견의 합을 만드는 방식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방식은 51%의 것을 채택하면서 49%를 버리는 것이 되었다. 그게 아니라 의견의 절충안은 만들어내는 것, 합의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이걸 제도적으로 반영하려면 의견이 정확하게 반영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필요하고, 그것의 정당구조적 반영으로서의 다당제가 필요하고, 좀더 나아가면 그것을 권력에 좀더 유기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내각책임제 방식의 집행권력 구성까지도 얘기를 해야 한다.
미: 그런데 내각책임제에 대해서 지금의 한국의 시점에서는, 오히려 대통령보다도 재벌권력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도 있다.
장: 소선거구제를 존속한 상황에서 내각제가 실행된다면 물론 그렇게 될 것이다.
미: 소선거구제 타파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장: 정확하게, 일본식 중선거구제나, 지금의 한국식 소선거구제로 내각책임제로 간다면 그런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정당명부비례때표제 없이도 내각제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 순서는 거꾸로 되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정당명부비례대표제고 그것을 권력에 좀더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개혁으로서 내각책임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고 본다. 핵심은 정당명부비례대표제다.
녹색당과 진보정당은 존립 근거 다르지만 협력해야
▲ 녹색당 관계자들이 지난 4월 3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6월 지방선거 성평등.인권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녹색당은 성평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등에 관한 공약을 강조했다. (연합뉴스)
미: 마지막으로 녹색당 얘기. 녹색당이 사람들에게 대단히 소프트한 느낌으로 다가간다. 결과적으로 볼 때 진보정당은 ‘헌 물건’, 녹색당은 ‘새 물건’으로 보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진보정당도 녹색의 가치에 상당 부분 동의하는 부분이 있을텐데, 녹색당과의 협력관계는 어떻게 가져가야 한다고 보는가.
장: 서구 사례를 봐도 좌파정당과 녹색당은 분명히 자기 존립의 근거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녹색당 같은 경우 계층적으로 보면 사실은 중간층이다. 그 중간층 내에서 이제까지의 물질적 의제보다는 탈물질적 의제, 경제적 의제보다는 문화적 의제, 소득에만 매몰되는게 아니라 자기 삶을 어떻게 주조·연마해 나갈 것인가,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호소력을 가지는 정당이다. 이런 정당도 분명히 필요하다. 좌파정당은 이 의제들을 일정 부분 포괄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포괄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게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분화라면, 녹색당도 반드시 한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기존에 존재했던 진보정당 세력과 새로 등장하는 녹색 세력이 서로 척을 지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소통을 하면서 서로 차이는 있더라도 서로 간의 지향의 합을 만들 수 있는 부분에서 최대한의 합을 만들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가령 핵발전소 문제에 있어 공통의 의견을 만들어 낸다는지, 이런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반면교사가 프랑스에 있다. 그래서 거기선 좌파들이 핵발전소 유지를 주장하면서 녹색당과 대립하는 구도가 있다. 이런 구도를 만들지 않는 것이 녹색당의 과제이기도 하고, 기존 진보정당의 과제이기도 할 것이다. 초반부터 서로 간에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의견을 교류하고, 문화적인 공통지반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장석준 노동닫 부대표의 모습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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