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재미없는 이분 농담” 내가 저번에 쓴 서평(링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 글을 쓰기 전날 처음 보는 남자와의 술자리에서 “님 좀 재미없는 듯” 이라고 ‘디스(DISS)’ 당했고, 이보다 며칠 앞선 날에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의 단체 채팅방에서 “예전에는 너가 좀 특이하게 웃긴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그냥 생각 없는 초딩 같은 개그로 변했어” “맞아 요새 개그감 죽었어”라는 ‘몰이’를 당한 터였다. 삼연타다. 충격이 컸다.

스스로를 웃기려고 항상 농담을 생각하며 기회만 생기면 강박적으로 농담을 던져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온라인 신조어를 좀 많이 쓸 뿐…. 그런데 왜 요즘 부쩍 내 유머감각과 농담에 대해 비판을 받은 것일까. 내가 가지고 있는 유머에 대한 감각이 어딘가 고장나버렸나 봉가?
웃음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뭔가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갖고 “‘인간은 왜 웃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문학적 탐구”라는 홍보문구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을 읽기로 했다.
좋은 농담의 수호자 ‘유머기사단’
<웃음>을 읽다보니 댄 브라운의 소설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대단한 사람의 어딘가 석연치 않은 죽음에서 시작되는 소설 도입부, 주인공이 이성 파트너와 함께 죽음의 근원을 쫓아가다 맞닥뜨리게 되는 반전, 중세(中世) 냄새나는 비밀 단체의 등장 때문일 것이다.
<웃음>에서 사망한 이는 프랑스의 ‘국민 개그맨’ 다리우스다.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인 뤼크레스는 청소년기에 자살을 기도하기 직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다리우스의 농담으로 삶의 의지를 되찾았던 바 있다. 그 때문에 다리우스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고, 다리우스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심증을 가진 채 그의 살인범을 찾기 위해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전작 <뇌>에 그녀와 함께 등장해 운우지정을 나눈 과학전문기자 이지도르에게 민폐를 끼치게 된다. 결국 범죄 조직화된 유머 프로덕션에 뤼크레스와 함께 쫓기게 된 이지도르는 그녀와 함께 살인자를 추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유머인 ‘살인소담(殺人笑談)’에 접근하게 된다. 그러다 급기야 그들은 ‘유머 기사단’ 입단 제의를 받게 되는데….
다리우스가 어떻게 죽은 건지, 타살이라면 누가 죽였는지까지 까발리는 건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으므로 이제부터는 ‘유머기사단’ 얘기에 집중하겠다. 유머 기사단은 <웃음>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생각해 낸 단체로, ‘좋은 농담’의 수호자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웃음의 적들은 많았어. 그런데 자네들도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어떤 자들은 웃음을 무기로 사용해서 웃음을 억압하려고 했네. (중략) 유머는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유머리스트들이 추구하는 것과 상반되는 효과를 얻기 위한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네. 이를테면 독재 체제를 강화하는 데 이용될 수도 있다는 것일세. 예를 들어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는 유머를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기도 했어. 사람들을 웃게 함으로써 저항의 의지를 약화시키려고 했던 것이지. 현재 우리가 벌이는 싸움들 가운데 하나도 그런 것과 관련이 있네. 나쁜 유머의 독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말일세. 좋은 유머로 나쁜 유머를 중화시키려는 것이지. (p.239 <웃음2>)
우리는 온갖 종류의 유머를 생산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만든 유머들의 바탕에는 언제나 동일한 철학이 깔려 있었어요. 독재자와 현학자와 거드름쟁이를 고발할 것. 경건주의와 엄숙주의와 우울증과 미신과 갖가지 차별주의에 맞서 싸울 것. 그게 우리의 철학이죠. 우리는 모든 것을 웃음의 소재로 삼았지만, 그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심이 있었어요. 우리가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은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였어요. (p.282 <웃음2>)
이 책에 따르면 유명한 희극인 찰리 채플린이나 바스터 키튼도 유머기사단의 단원이었고, 68혁명 때의 익살스러운 슬로건도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기 위한 유머기사단의 활동이었다. 유머기사단에 대해 알게 되고 이들로부터 ‘웃음’에 대한 지식을 전수받으면서 웃음에 대한 이지도르의 태도는 변하게 된다. 그는 본래 유머에 대해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불운한 사람들이나 약자나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은 진화된 존재에 걸맞은 행위가 아니에요. 그런데 요즘의 유머는 주로 누구를 조롱거리로 삼고 있죠?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자, 술주정뱅이, 불구자, 뚱뚱한 사람, 키 작은 사람, 금발 머리 여자, 벨기에 사람, 사제 등을 마구잡이로 놀려 대지 않나요? 그런 집단적이고 차별적인 기분 풀이에 뭔가 존경받을 만한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나요? (p.58 <웃음1>)
이랬던 사람이
웃음은 우리를 권좌에 앉은 위선자들보다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아리스토파네스나 라블레나 몰리에르가 그랬던 것처럼, 한심한 작자들과 근엄한 위선자들과 권력자들을 조롱함으로써 그들에게 맞서야 한다. (p.163 <웃음2>)
이렇게 변한다. 급기야 그는 유머러스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쯤 되면 이지도르가 작가 본인의 내면을 적극적으로 대변한 캐릭터라는 심증이 굳어져간다.
‘어둠의 유머’와 일베
'한국 독자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 라는 수식어를 가진 그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도 많다. “재미있는 과학적 상상력이 들어있지만 그것뿐이다”, “작품의 플롯이 항상 비슷하다”, “얄팍하다”, “자기 쇄신이 없는 작가다”는 등의 비판을 받는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적 기대를 접고 그냥 재미있는 책 읽는다고 생각하고 보면 그의 책은 썩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특히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은 독자에게 몰입감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웃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동의하고 지지하기에 이 책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게 느껴졌다. 인간에 대한 존중심을 가진 채 독재자와 현학자와 거드름쟁이를 고발하고 경건주의와 엄숙주의와 우울증과 미신과 갖가지 차별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좋은 유머이며, “남의 불행을 소재로 삼아 웃기는 것, 이방인들을 조롱하면서 웃기는 것, 여자들이나 지적 장애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폄하하면서 웃기는 것, 남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웃기는 것”이 나쁜 유머라는 작가의 인식이 그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좋은 유머와 나쁜 유머의 대결구도는 한국의 현실에도 들어맞는다. 나쁜 유머의 예로 대표적인 것은 ‘일베(일간베스트)’다. 일베 유저들은 고인능욕, 지역차별, 외모차별, 여성 비하 개그 등을 일삼으며 낄낄댄다. 그러면서 현실의 권력에는 굴종하고 침묵한다. 베르나르가 말하는 ‘어둠의 유머’와 싱크로율 100%인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일베를 하는 사람들 중 청소년들이 많다는 것이다.
뤼크레스는 최하위 문화로 간주되는 우스갯소리의 문화가 실제로는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겨냥한 우스갯소리는 특히 중요했다. 평생토록 잊지 않을 만큼 마음 속 깊이 각인되기 때문이었다. (p.248 <웃음1>)
혹시 한국에 나쁜 유머를 유포하는 조직이 있어서 조직적으로 나쁜 유머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국정원 같은 곳….
좋은 유머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유머기사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나를 임명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유머기사단의 일원이라는 사명감을 가진 채 앞으로도 실없는 언어유희와 ‘셀프 디스’를 하고, 경건주의와 엄숙주의와 차별주의에 맞서며 온라인 유행어를 쓰겠다. 그러나 ‘병맛’이더라도 환부를 직시하는 웃음, 구조를 이해하고 억압의 실체를 인지하는 유머를 추구하겠다. ‘씹선비’(‘일베’에서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비판하는 단어. 조선 시대 지식계층이었던 ‘선비’에다 욕설적 의미의 접두어인 ‘씹’이 붙어서 만들어진 조어이다. 진지병 -웃자고 하는 말에 과도하게 진지하게 반응해 덤벼드는 것- 에 걸려 뻔히 아는 사실을 가지고 깨어있는 척, 혼자 깨끗한 척, 잘난 척, 있는 척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된다)라고 욕먹더라도, 재미없다는 덧글이 달리더라도.
책에 따르면 유머라는 것은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주변의 분위기도 중요하다고 한다.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덩달아 웃음이 나오는 것처럼. 그러니 마음을 열고 내 눈을 바라봐 넌 행복해지고. 내 눈을 바라봐 넌 웃을 수 있고….

잉집장

<월간잉여>는 잉여를 위한 잉여에 의한 잡지입니다. 13호까지 발간됐습니다. 이름만 월간잉여임. 갈수록 발행 텀이 길어지고 있음. 발행인 겸 편집인이 개털인 데다 게으른 탓입니다. 그 발행인 겸 편집인이 바로 저임. 최근에 이상한 웹진 겸 커뮤니티 사이트도 만들었는데 놀러오세여. http://ingch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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