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곤: 어떻게 싸울 것인가> 김윤태·서재욱 지음, 510쪽, 한울아카데미 2013-07-10
다음사전을 찾아보면 개털은 “힘이나 돈이 없는 상태나 그런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오는데요, 저를 저격하는 단어네요. 저는 언론사 입사를 2년간 준비했으나 실패했고, 선택에 기로에서 ‘일단 현재 하고 싶을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잉밍아웃(잉여+커밍아웃, 잉여임을 선포하는 것을 뜻한다)’ 했어요. 2011년 12월의 일이였고, 2012년 2월에는 (나와 같은)잉여에 의한 잉여를 위한 잡지 <월간잉여>가 창간됐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타공인 개털이 됐습니다…. 글을 쓰고 모아서 잡지를 내는 일은 보람은 있지만 살림살이에는 별로 도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잡지에 글을 투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소한의 돈을 벌지만 정말 말 그대로 ‘최소한의’ 돈입니다.
돈은 부족하지만 인복은 좀 있는 편이라 그나마 다행입니다. “으이그 이 개털아”라고 혀를 차면서도 밥 사주고 술 사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모 잡지사 기자 A도 저를 ‘어엿비’ 여겨 굽어 살피는 분 중 하나입니다. 밥과 술을 사주는 건 물론, 제게 도서관 역할을 해줍니다. A는 홍보용으로 들어오는 책이 많으며 법인카드로 책도 많이 살 수 있게 해주는 사내 복지 ‘짱짱’ 회사에 다니고 있거든요.
그날도 A의 회사에 들어온 신간을 빌리기 위해 그녀의 회사 앞에 찾아갔습니다. A는 제가 대출 신청한 책을 건네며 또 한 권의 책도 건넸습니다. “이건 그냥 님 가져여. 내 선물” 그 책이 바로 <빈곤>(2013)입니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책 표지를 들여 보며 고민했습니다. A씨는 왜 이 책을 내게 선물했을까요? 이거 읽고 내 빈곤 문제를 해결해 그만 좀 얻어먹으라고? 평소 “호의가 계속 되면 둘리인 줄 안다더니 네가 바로 둘리다”라며 저를 구박하긴 했지만 애정 어린 농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둘리가 고길동 씨에게 피해를 끼친 것만큼 내가 A에게 피해를 끼쳐왔다고 암시하는 것일까? A의 저의를 확실히 알기 위해 책장을 넘겼습니다.
▲ 둘리 (출처: DOOLYNALA 둘리나라)
빈곤은 일반적으로 ‘가난’이나 ‘결핍’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지만, 개별국제기구와 국가마다 공식적으로 정의하는 빈곤의 기준은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빈곤을 줄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에서 널리 활용되는 빈곤의 정의로는 절대적 빈곤(생존, 기본적 욕구가 기준), 상대적 빈곤(다수 인구가 향유하는 보편적인 생활수준에 부합하는 빈곤의 정도), 주관적 빈곤(가난한 사람 스스로 적절한 삶의 유지에 최소한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도를 빈곤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빈곤의 예방과 완화에 적절하다는 입장)의 개념을 들 수 있다고 하네요. 여기에 더해 ‘능력접근’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능력이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과 될 수 있는 것, 즉 가능성과 기회를 의미합니다. 인도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빈곤은 단순히 자원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며 빈곤을 ‘특정한 최소한의 능력을 획득하는 데 실패한 하나의 경우’라고 말했습니다. (p.24- p.38) 현재 국제사회와 각국 정부가 시행하는 빈곤 측정에는 네 가지 개념 모두가 활용됩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최저생계비는 절대적 빈곤개념에 기초해 측정이 이루어지지만, 상대적 빈곤 개념을 부분적으로 수용해 휴대전화와 컴퓨터 이용, 도서 구매비, 외식비 등을 필수품에 포함시키고 있다. 또한 장애인, 노인, 한 부모 가구를 대상으로는 추가적인 비용을 별도로 계측한다. 이는 개인의 소득을 능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능력 접근 개념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p.41)
지금 저는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당장의 제 생존과 기본적 욕구 해소를 담보해주므로 절대적 기준으로는 빈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서 구매, 외식 등에 여유 있게 쓸 만큼 넉넉히 돈을 벌지 못하므로 상대적으로 빈곤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A 덕에 빈곤하다는 감정을 거의 느끼지 않고 사는 듯. 사실 들여다보면 미래에 대한 대비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능력접근으로 개념으로 볼 때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저는 “특정한 최소한의 능력을 획득”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왜죠?
현대 빈곤의 원인에 대해 크게 개인적 접근과 구조적 접근으로 나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 측면의 접근에서는 개인의 무책임 또는 무능력을 빈곤의 주된 원인으로 보고, 구조적 접근에서는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경제적 사회적 환경에 주목합니다.(p.85) 이 책은 빈곤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간과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구조적 접근을 하는 것에 더 무게를 싣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술의 변화, 특히 운송과 통신기술의 향상은 지구화를 가속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지구화는 시장 경쟁을 지구적 수준으로 확장함으로써 더욱 치열한 경쟁을 유발했다. 이는 다시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 심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중략) 이러한 이유로 경제성장에 따른 직접적인 빈곤 감소 효과는 과거와 비교해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경제성장은 일자리 감소를 막고 복지제도를 유지 확대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므로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자연스럽게 빈곤의 예방과 감소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과거에 비해 약화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복지제도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p.119)
빈곤한 개인이 아무리 근로시간을 늘려 더 많은 소득을 얻는다 해도 생필품 가격이 급등한다면 개인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통근이 가능한 주거와 교통에 소요되는 비용은 개인이 근로를 통해 빈곤에서 탈피하는 데 필수재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부실한 주거복지와 대중교통으로 말미암아 비용과 시간, 육체적 피로가 추가로 발생할 때 개인의 근로의욕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괜찮은 일자리는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데, 상식적으로 통근이 가능한 지역의 주거비와 교통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는다면 일자리를 통한 빈곤 탈출은 더욱 요원한 꿈이 되고 말 것이다. 미국에서 저임금 노동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체험을 한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히는 저소득층에게는 주거와 교통비용이 그 자체로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p.92)
한국의 지나친 주거비용은 저소득층 가구의 안정적인 생활을 저해한다. 그뿐만 아니라 빈곤층 가구의 자립과 자활 의욕을 약화시킨다. 현재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인 가구의 약 40%,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가구의 약 20%가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신혼부부가 결혼과 동시에 채무자가 되는 ‘허니문 푸어’의 원인 중 하나도 과도한 주거비용에 있다. 하지만 주거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국가의 노력은 매우 부족했다. 한국은 유럽의 많은 복지국가와는 다르게 임대료 인상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민간임대사업자가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관련 현황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적절히 규제하기도 어렵다. 또한 2011년 말 현재, 전체 주택에서 장기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경제 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 11.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p.464)
책은 빈곤과 싸우기 위해 보편적 복지, 예방적 복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최후의 안전망’으로서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게 역할이 좀 더 명료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국제 비교를 통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예산을 검토해보면, 주요 국가들은 공공부조 예산으로 국내총생산의 0.6%(스웨덴)에서 2.7%(영국) 정도를 사용한다. 한국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이 국내총생산의 약 0.7%에 해당하므로 예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과대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떠맡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빈곤으로의 추락을 예방하고 재기를 지속적으로 북돋는 시스템이 여전히 제대로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빈곤 완화와 자립의 제고라는 과도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빈곤으로 추락 또는 재진입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p.354)
빈곤문제는 공공부조의 현금 지원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고용과 교육, 복지가 함께 효과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빈곤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노동시장에 참여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아동, 노인, 장애인을 위한 복지 급여를 확대해야 한다.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여성 친화적 사회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빈곤 위험에 특히 취약한 여성 노인을 위한 공공부조와 함께 다양한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동시에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교육정책, 주거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p.455)
저자들은 이를 위해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정치동맹이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사회 정치세력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복지연합’을 구축해야 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더 많은 사회적 시민권을 실현해야 한다. 사회의 빈곤층을 방치하면 결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취약해질 수 있다. (중략) 물론 노동조합의 진보정당이 강한 나라에서 복지제도가 더욱 발전했지만, 사회의 각 정치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하는 일도 중요하다. 복지제도를 강화하는 정치적 경로와 과정은 나라별로 매우 다양하지만, 복지제도를 지지하는 광범위한 정치세력의 지원은 필수적 요소다.(p.471-472)
책을 읽고 A에게 책에 대한 감상을 보내며 질문했습니다. 빈곤을 타개하려는 내 노력이 부족한 것 같아 이 책을 읽고 생각해보라고 선물한 것이냐, ‘복지연합’을 구축하는데 내가 이바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선물한 것이냐, 혹은 둘 다냐. A는 “회사에 신간이 들어왔고 제목이 빈곤이라 가난뱅이인 너한테 준 것 뿐”이라며 제가 쓸데없이 너무 많이 생각했다고 타박했습니다.
▲ A.JPG
아…. -끝-
잉집장
<월간잉여>는 잉여를 위한 잉여에 의한 잡지입니다. 13호까지 발간됐습니다. 이름만 월간잉여임. 갈수록 발행 텀이 길어지고 있음. 발행인 겸 편집인이 개털인 데다 게으른 탓입니다. 그 발행인 겸 편집인이 바로 저임. 최근에 이상한 웹진 겸 커뮤니티 사이트도 만들었는데 놀러오세여. http://ingchu.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