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 송현동의 위치 (서울 전체=구글, 송현동=네이버 지도)

* 송현동은 덕성여자중학교와 그 아래의 넓은 빈 터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의 금호미술관이 있는 동네는 사간동이고, 그 위의 옛 기무사 터는 소격동이며, 정독 도서관은 화동이고, 덕성여고와 풍문여고는 안국동이다. 또한 화동의 오른쪽 위는 가회동이고, 그 왼쪽 위는 삼청동이다. 흔히 ‘북촌’으로 통칭되는 이 지역은 옛 골목들과 한옥들이 어우러진 아늑하고 아름다운 작은 동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지역은 지난 10여 년 사이에 대단히 많이 훼손되었으며 지금은 더욱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그 핵심에 송현동이 자리잡고 있다.

1.

안국동 네거리와 경복궁의 동십자각 네거리 사이를 지나다 보면 화려하게 ‘누드 건물’로 지어진 한일건설의 ‘트윈 트리 타워’ 건물(조병수 설계, 2010년 완공)이 가장 눈길을 끈다. 여기에는 한국일보 사옥(김수근 설계, 1968년 완공, 2007년 철거)이 있었다. 최근에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이 편집국을 폐쇄하고 ‘짝퉁 한국일보’를 발행하다가 결국 수백억 원 대의 배임과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장재구의 ‘범죄’는 바로 이 화려한 건물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일보는 옛 사옥의 부지를 한일건설에 팔았고, 한일건설이 이곳에 건축한 새 건물에 입주하기로 했다. 그러나 장재구가 직원들을 속이고 그렇게 하지 않아서 한국일보는 수백억 원의 손해를 입었고 새 건물에 입주할 수 없게 됐다. 못된 경영자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으니 한국일보는 다시 바로 설 수 있게 되리라.

옛 한국일보 사옥이 있던 곳, 즉 지금의 ‘트윈 트리 타워’ 건물이 있는 곳은 중학동이다. 조선 때 한성은 ‘부-방-계-동’으로 구역되어 있었는데, 부는 동서남북중의 다섯 개였고, 동서남중의 네 곳에 학당을 세웠다. 중학동은 중학이 있던 데서 유래했다. 삼청동의 북한산 계곡에서 흘러나온 물이 개울이 되어 청계천으로 들어가는 데, 이 개울을 삼청동에서 시작되어 삼청동천이라고 불렀고 중학동을 지나가기 때문에 중학천이라 불렀다. 이 개울은 1957년에 복개되어 삼청동 길의 보도와 차도가 되었다. 중학동에 세워진 옛 한국일보 사옥의 꼭대기층인 13층에는 ‘송현 클럽’이라는 식당이 있었다. 이 식당에서 바라보는 청와대 쪽 전망은 대단했다. 경복궁, 청와대, 북촌, 북한산 능선이 한 눈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당의 이름이 왜 ‘송현 클럽’이었을까?

옛 한국일보 사옥, 지금의 ‘트윈 트리 타워’ 건너편 동네의 이름이 바로 송현동이다. ‘송현’은 ‘소나무 언덕’이라는 뜻이다. 나즈막한 언덕인 이곳은 조선 시대에 왕실에서 쓸 소나무를 기르던 솔숲이었다. 그래서 ‘송현’으로 이름붙여졌던 것이다. 그 주변에는 엄비가 살던 가옥, 명성황후가 살던 감고당, 세종 때 처음 지어진 안동 별궁 등의 커다란 한옥들이 있었다. 그런데 일제의 강점과 함께 이곳에는 일제 식산은행의 직원 숙소들이 들어섰고, 해방 뒤에는 미국 대사관의 직원 숙소들이 들어섰다. 그러나 일제와 미국은 1만 평이 넘는 이 땅에 몇 채의 집만들 지어서 썼을 뿐이고 대부분의 땅은 숲으로 만들었다. 거대한 플라타너스들을 비롯해서 여러 온대 지역의 나무들이 잔뜩 들어선 굉장한 숲이었다.

2000년 2월에 삼성생명과 삼성문화재단이 이 땅을 미 대사관으로부터 매입했다(<문화일보> 2000년 2월 25일). 삼성생명은 이곳에 복합문화시설을 지으려고 했으나 이곳은 조선을 대표하는 역사 지역이며 주위에는 학교들이 들어서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8년 6월에 대한항공이 이 땅을 삼성생명으로부터 매입해서 최고급 호텔을 짓겠다는 계획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은 이곳의 울창한 숲과 그윽한 집들을 모두 파괴해 없애 버리고 호텔을 짓기 위한 터 닦기를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이곳은 학교와 붙어 있는 곳이어서 결코 호텔을 지을 수 없는 곳이다. 대한항공은 소송을 벌였으나 대법원에서도 이곳에 호텔을 지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렇게 해서 대한항공의 무모한 송현동 호텔 건축 계획은 끝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문화체육부를 내세워서 아예 법을 고쳐 이곳에 호텔을 건축하려는 계획을 계속 강행하고 있다. 현행 학교보건법은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에서 호텔을 짓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체육부는 관광진흥법에 유흥시설, 도박시설 등이 없는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조항을 신설해서 현행 학교보건법을 무력화하고 학교환경을 크게 훼손하려 하고 있다. 결국 문화체육부가 대한항공에게 막대한 이익을 주기 위해 학교보건법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도 기가 막힌 일이 지금 서울 도심의 핵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 송현동의 옛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지금은 울창하던 숲이 파괴됐다. * 주 : 한진그룹은 2008년 6월에 삼성생명으로부터 이 땅을 매입해서 호텔을 짓겠다며 우선 이곳에 있던 울창한 숲과 그윽한 집들을 모두 파괴해 없애 버렸다.

2.

이제 이 일대를 한바퀴 돌면서 이 땅의 가치와 변화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터의 서남쪽 끝, 즉 동십자각 쪽에는 ‘두가헌’이라는 포도주 전문 식당이 있다. 이 식당은 2000년대 초까지 원불교의 교당이었던 곳이다. 조선 때로 올라가면 이 식당의 한옥 건물은 고종의 후궁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었던 엄비가 살던 집이었다. 엄비는 상궁에서 후궁이 된 분으로 양정고, 숙명여고, 진명여고 등을 설립해서 후세의 교육을 위해 애썼다. 사실 경복궁과 집결되어 있는 이 집과 주변 지역은 사간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잘 말해 주듯이 본래 사간원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여러 면에서 이 집과 주변 지역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보존가치를 가진 곳이다.

삼청동 길로 들어서기 전에 잠시 길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동십자각을 보자. 일제가 도로를 넓힌다며 1924년에 이렇게 동십자각을 도로 안에 있게 만들었다. 이 건물은 본래 경복궁 담장의 동남쪽 모서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경복궁 담장은 원래의 자리에서 경복궁 안쪽으로 한참 들어서 있는 것이다. 서남쪽에는 서십자각이 있었는데 일제는 1923년 9월에 전찻길을 놓아야 한다며 서십자각을 파괴해 없애 버렸다. 물론 이런 파괴와 훼손은 조선의 몰락을 보여주기 위한 문화침략의 일환이었다. 두 십자각은 담장과 길을 굽어보며 감시하는 궐대였다. ‘궁궐’이라는 말에서 ‘궁’은 왕의 거처를 뜻하고, ‘궐’은 바로 이 ‘궐대’를 뜻한다.

동십자각에 비추어 보면 본래의 삼청동 길은 지금보다 훨씬 좁았다. 그리고 지금의 삼청동 길에서 보도와 그 옆 차도는 개울(삼청동천-중학천)이었다. 원래 이 길은 높은 경복궁 담장과 삼청동천이 어우러진 훨씬 더 운치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서울에는 너무 좁아서 복개되고 지금과 같은 넓은 차도와 보도를 만들게 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때인 2009년 7월 서울시는 이 개울을 모두 복개해서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살리겠다는 ‘중학천 완전 복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엉터리’였다. 서울시는 조선 때의 중학천 석축을 흙으로 덮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부분적으로 작은 콘크리트 인공 수로를 만들었을 뿐이다(‘엉터리 중학천 복원’, <중앙일보> 2009년 12월 1일). 이명박이 청계천에서 했던 짓을 오세훈은 중학천에서 했던 것이다.

▲ 1920년대 삼청동길. 궁궐담에 있는 성문이 건춘문. 멀리 동십자각이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궁궐', 2007)

왼쪽이 삼청동천, 오른쪽 문은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그 아래는 동십자각, 건춘문 건너편은 종친부. 일제가 1924년에 동십자각을 도로 복판에 두는 도로 확장공사를 했으니 이 사진은 그 이전에 찍은 것이다.

이 길을 조금 걸어 출판회관, 금호 갤러리 등을 지나면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 분관’을 만나게 된다. 여기는 본래 조선 왕조의 왕가 사람들을 관리하는 ‘종친부’가 있던 곳이고, 일제 때에는 경성의전 부속병원이 들어섰고, 해방 뒤에는 서울의대 부속병원으로 쓰였으며, 이어서 수도 육군병원으로 쓰였고, 1971년에 국군 보안사령부가 들어섰다. 1933년에 완공된 그 본관은 일제 때 조선인 근대 건축가 1호인 박길룡의 작품인데, 이 건물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30년 군사독재 동안 최고비밀본부로 쓰였던 셈이다. 수도 육군병원이 등촌동으로 떠나고 그 건물에는 국군 보안사령부가 들어섰고 그 옆에 새로 국군 서울지구 병원을 지었다. 1979년 10월 26일 이곳으로 박정희의 시신이 옮겨졌고, 바로 여기에서 전두환 일당이 또 다른 군사반란을 모의했다. 이곳은 참으로 엄청난 현대사의 현장인 것이다.

금호 갤러리와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 분관’ 사이의 골목길로 들어서면 미국 대사관 숙소 터의 담장 골목길을 만날 수 있다. 그 좁은 골목길은 아주 고즈넉하다. 여름에는 골목길에서 여러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꽃들이 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도 이미 주택가의 모습을 상당히 잃어 버렸다. 카페, 식당, 사무실 등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역사 도시 서울의 핵심을 이루는 도심 주택가의 상실은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문화적 문제이다. 그래서 이미 1980년대 초부터 ‘북촌’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 펼쳐지고 정책이 시행되었으나 그 결과는 사실 대단히 초라하다. 결국 이렇게 다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몇 장의 사진과 도면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개발과 투기에 대한 욕망이 폭주하는 서울에서 이 정도라도 지켜지고 있는 것이 다행인 것인가?

이 골목길은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 분관’과 ‘아트선재센터’의 뒤쪽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본래 전자의 뒷마당에는 ‘종친부’ 건물이 있었고 그 뒤에는 담장이 있었다. 1980년에 전두환 일당이 그 자리에 테니스장을 만들기 위해 원래 김옥균 집터였으며 경기고등학교였던 정독도서관의 동쪽 마당으로 ‘종친부’ 건물을 옮겼다. 국군 기무사령부가 옮겨가고 ‘종친부’ 건물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으나 그 뒤의 옛 담장은 여전히 복원되지 않고 있다. ‘종친부’ 건물과 마찬가지로 옛 담장도 역사유적이다. 이곳의 옛 담장도 어서 복원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이 장소의 역사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국립 현대 미술관 서울 분관’을 결정한 것은 분명히 잘못이었다. 옛 담장의 복원은 그 잘못을 줄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곳을 지나 ‘아트선재센터’ 앞에서 안국동 네거리로 이어지는 조금 큰 골목길은 ‘감고당’ 길이라고 불린다. 명성황후가 살던 ‘감고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성여중고와 풍문여고가 있는 이 길은 아주 편안한 산책길이다. 이 길은 원래 전봇대-전깃줄 때문에 상당히 흉칙하고 삭막한 길이었으나 2006년에 전깃줄을 지중화하고 전봇대를 없애서 아주 깨끗하고 기분좋은 곳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이 일대가 너무나 많이 상업화되고 말았다. 사실 ‘북촌’ 전체가 거대한 상업화의 물결에 밀려서 본래의 모습을 잃고 완전히 없어질 것 같은 위기감마저 든다. 정독 도서관 옆의 ‘화동 고개’를 지킨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3.

서울 도심의 골목길로 들어가는 것은 서울의 가장 오랜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도시에서 가장 늦게 변하는 것이 길이다. 집은 자주 다시 지어질 수 있지만 골목길을 비롯해서 길은 그렇지 않다. 길은 공유지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골목길은 옛 서울의 기본형태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유적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골목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그 골목길이 만들어지던 때를 마음 속에서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골목길은 단순히 아늑한 길이 아니라 역사를 담고 있는 무거운 길이다. 도심의 골목길이 없어지는 것은 도심의 수백년 역사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송현동의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터’는 율곡로 쪽을 빼고는 모두 크고 작은 골목길로 둘러싸여 있다. 그 골목길들만으로도 이 터가 얼마나 중요한 곳인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 그 주변은 상업화에 의해 계속 훼손되었다. 이런 와중에 대한항공이, 즉 한진 재벌이, ‘북촌’에서 남아 있는 가장 큰 공지이며, 따라서 ‘북촌’의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공지인 이 곳을 사서 최고급 호텔을 지으려고 한다. 이 재벌은 법에 의거해서 결코 할 수 없는 건축을 하기 위해 문화체육부를 통해 아예 법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만일 이 황당한 시도가 이루어진다면, 이 나라는 재벌이 자기 이익을 위해 법을 바꾸고 역사를 우롱하는 ‘재벌국가’라는 사실이 여실히 입증되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 황당한 법을 폐기해야 하며, 나아가 이 황당한 법을 제출한 문화체육부에 대해 엄중 경고해야 할 것이다.

송현동의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 터’는 그 이름대로 ‘소나무 언덕’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주변의 옛 한옥들도 최대한 보존․복원해야 한다. 이것은 송현동의 본래 모습을 찾는 것을 넘어서 경복궁과 ‘북촌’을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는 것이다. 이 땅은 시대의 요청인 ‘생태문화 개발’을 실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화동 고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였던 것은 서울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 땅을 지키고 ‘소나무 언덕’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은 ‘화동 고개’를 지키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만일 이 땅에 한진 재벌이 호텔을 짓게 된다면, 주변의 골목길들이 모두 크게 파괴될 것이며, ‘화동 고개’도 결국 파괴될 것이다.

개발독재는 오래 전에 끝났을지라도 개발의 시대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오늘날 개발은 심지어 자연과 역사를 내세우고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실체는 자연과 역사를 사유화하는 것이다. 서울이 ‘세계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도시’의 면모를 잘 다듬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촌’으로 대표되는 도심의 옛 주택가를 잘 지켜야 한다. 어떤 유명한 문화재 전문가가 한진 재벌에게 ‘한옥형 최고급 호텔’을 지으라고 자문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땅은 법적으로 호텔을 지을 수 없는 곳이거니와 문화재의 면에서도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한진 재벌이 이 땅을 서울시에 기부해서 이 땅이 ‘소나무 언덕 공원’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 대한항공이 파괴하기 전에는 이렇게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이었다. (사진=서울 종로 송현동 49-1번지 일원 문화재 발굴(시굴) 조사 지도위원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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