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현존하는 유일한 TV 매체비평 프로그램 KBS <미디어 인사이드>에 대해 10년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비평의 구체성 저하·적은 자사 비판 비중 등을 들어 앞으로 더욱 더 치열하게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KBS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TV 매체비평 10년, 성과와 전망>이라는 심포지엄이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특별히 KBS에서 방영 중인 유일한 TV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인사이드>의 10주년을 맞아 진행된 행사였다.

▲ KBS 1TV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10분에 방영되는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인사이드' (화면 캡처)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은 2003년 6월 28일 <미디어 포커스>로 첫 선을 보인 후, 2008년 <미디어 비평>을 거쳐 지난해 4월부터 <미디어 인사이드>라는 이름으로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10분에 방영되고 있다.

1주제 <TV ‘미디어비평’(KBS)의 어제와 오늘> 발제를 맡은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매체비평 프로그램으로 유일하게 방송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큰데, 분석을 해 보니 비평의 내용도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10년 동안 KBS 내부 구조변화에 따라 프로그램이 달라진 점에 대해 일관성 측면에서 자기 성찰이 필요하며, 미디어 상호 비평을 지향해야지 자사 홍보나 자사 이익을 위해 타사를 공격하는 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홍원식 교수는 정권 교체에 따른 KBS 지배구조 변화가 프로그램 관점 변화를 이끌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정연주 사장 해임 전후 2개 시기로 나누어, 그간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꼭지 1,239건을 분석했다.

홍원식 교수의 발제문에 따르면, 정연주 사장 해임 전에는 다루는 주제 가운데 언론·미디어 분야가 46.8%(259건)를 차지했지만 이병순 사장 이후에는 32.4%(118건)로 비중이 줄었다. 대신 정치 분야가 8.3%(46건)에서 15.1%(55건)으로 비중이 2배가량 높아졌고, 경제·부동산 분야도 6.3%(35건)에서 9.3%(34건)으로 소폭 올랐다.

정연주 사장 해임 전에는 조중동 등 보수 신문사 비평이 25.3%(83건)이었던 데 반해 이병순 사장 이후에는 3.2%(9건)로 비중이 대폭 축소됐다. 대신 신문사 전반 비평 비중이 3.7%(12건)에서 8.2%(23건)로 올랐고, 지상파 방송 전반 비평도 1.2%(4건)에서 11.1%(31건)으로 올랐다.

비평의 근거 측면에서도 정연주 사장 해임 전후 차이가 존재했다. 정연주 사장 해임 전에는 편파 불공정 보도에 대한 문제제기가 88건으로 26.8%를 차지해 가장 높았으나, 이병순 사장 이후에는 9.0%(25건)으로 대폭 줄었다. 이병순 사장 이후에는 피상적 보도 및 받아쓰기 비평이 18.3%(51건), 과장·선정적 보도 비평이 22.6%(63건) 급감한 편파 불공정 보도 비평의 자리를 채웠다.

홍원식 교수는 이러한 경향에 대해 “정파적 성향을 비평하는 것이 극단적인 적대감이나 사회적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로 볼 수도 있지만, 미디어 비평 자체가 덜 신랄해지고 덜 구체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이어, “잘못 보도한 쪽이 있는데도 공방 처리 등으로 기계적 균형을 맞추는 것은 언론전반 상황 때문이라기보다는 KBS 내부 변화에 따른 내적 일관성의 결여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KBS, 자사 비판에 너무 인색… 비중 25%로 늘려야”

발제 후에는 양문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손석춘 건국대 교수,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등 3명의 패널은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에 대해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 27일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TV 매체 비평 10년, 성과와 전망' 심포지엄은 1,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의 10년 발자취를 돌아보는 1부에서는 김동규 건국대 교수가 사회를,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으며, 양문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손석춘 건국대 교수,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미디어스

양문석 방통위원은 자사 비판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문석 방통위원은 “KBS가 자신들의 보도에 대해 비평한 것은 달랑 3건으로 0.5%”라며 “옴부즈맨 프로그램으로서 최소한의 여과장치가 존재하긴 하지만, 미디어 비평의 공신력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자사 비평 비중이 25% 정도는 올라가야 한다”고 밝혔다.

양문석 위원은 “자기 비평을 0.5% 하고, 나머지 99.5%로 타사를 비판하면 비평의 공신력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자사 프로그램들에 대한 냉혹한 비판이 25% 이상은 돼야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적 책무 수행을 할 수 있고, 다른 미디어들도 비평에 수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매체비평 프로그램으로서 더 충실히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문석 위원은 최근 불거진 NLL 논란을 들며 “동일한 사건인데도 언론사마다 상반된 시선이 존재한다”며 “국민들 입장에서는 혼란한 상황에서 KBS가 심판을 보고, 관점을 잡아 주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손석춘 건국대 교수는 “미디어 비평이 보수언론만 비판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며 “KBS의 미디어 비평이 보수와 진보의 틀을 넘어서 한국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고 있는지, 얼마나 공정하게 보도하고 있는지를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석춘 교수는 “사회 구성원들의 커뮤니케이션권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게 언론의 의무이고 본령”이라며 “미디어 비평을 할 때에는 이 부분에 주목해야지 보수와 진보라는 잣대로 풀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추혜선 언론연대 사무총장은 “공영방송을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이 권력과 궤를 같이 하고 사익에 더 집요한 집단이 되면서, KBS의 미디어 비평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은 상황이 됐다”며 “KBS가 정치권력에 취약한 구조라는 지적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추혜선 사무총장은 “KBS가 전체 언론의 공공성을 견인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이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더 과감하고 담대해져야 한다”며 “그래야 비평 프로그램이 수신료의 가치를 수행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미디어 인사이드>의 제작진은 패널들의 발언 이후 “KBS의 자사 비판이 3건이라는 것은 온전히 KBS 문제만 다룬 게 3건이라는 의미”라며 “언론 전반 비평을 하면서 자사 보도도 다뤘다”며 “자사 비판 노력이 미약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뉴스 옴부즈맨 프로그램 등 KBS에는 내부를 성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얼마든지 있다”고 반박했다.

KBS 수신료 인상 움직임에는 ‘냉랭’

이날 심포지엄에는 길환영 KBS 사장이 참석해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은 언론 간 상호 비평을 통해 한국 언론이 스스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견제와 감시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한다”며 “갈수록 치열해지는 매체 환경과 언론계 일부의 불편한 시선에도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10년을 맞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재원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KBS는 수신료 현실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매체비평뿐 아니라 대표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책무를 더욱 확대하고 공익 기능을 잘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론자들은 최근 수신료 인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KBS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추혜선 사무총장은 “KBS가 합법적인 선에서 수신료 인상 절차를 밟는 것은 맞지만, 국민적 합의의 선은 무시하고 있다”며 “이럴 경우 'KBS가 수신료 도둑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 같다”고 경고했다.

추혜선 사무총장은 “KBS는 정원 선거 개입 관련 보도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못 했고, 자사 보도 행태를 비판한 옴부즈맨 프로그램에는 압력을 가해 부당 인사들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KBS가 보도 공정성과 관련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양문석 위원은 “33년 동안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국민들이 훨씬 더 질 높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부담은 해줘야 한다”며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양문석 위원은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며 노출하는 문제점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했다.

양문석 위원은 “수신료를 올리면 그만큼의 혜택을 (수신료를 배분받는) KBS와 EBS에서 받아야 한다”며 “현재 KBS가 내놓은 안을 보면 광고 삭감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수신료를 올리면서 다른 매체를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향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1,000원이 올라갔든 2,500원이 올라갔든 이후의 대가를 어떻게 지불할 것이냐는 계획 아래서 수신료 인상을 추진해야 한다”며 “현재는 절차적, 시차적, 내용적 문제가 다 잘못돼 있기 때문에 KBS 집행부는 현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새로운 국면에서 수신료 인상을 논의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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