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미디어포커스> 출범 10년 기념 세미나에서 언론시민단체에 계신 분이 ‘자사 비판이 약하고 전체적인 분석과 진단의 힘, 결기 등을 보아도 책임져야 하는 주체나 잘못된 기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역할을 잘 못하는 것 같다. 별로 흥미롭지도 않고 날이 서 있지도 않으니, 15년 뒤에는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아예 얘기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런데 불과 3년 지나서 이 프로그램의 폐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YTN 돌발영상 폐지 이야기가 나올 때 열렸던 세미나 발표문 부제가 ‘잃어버릴지 모르는 텍스트’였던 걸로 기억난다. KBS 미디어 인사이드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르는 텍스트다”
_ 이기형 경희대 교수

지상파의 유일한 매체 비평 프로그램인 KBS <미디어 인사이드>가 폐지설에 휩싸였다. 제작진은 지난 7일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제작진도 모르는 사이 오는 4월 25일 TV부분조정에서 <미디어 인사이드> 폐지가 유력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재고’를 요청했다. 공영방송 KBS의 공영성을 대표하고, 미디어 환경의 급변으로 이용자들의 ‘미디어 격차’가 커지고 있는 만큼 새로운 미디어를 잘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잊지 말아달라는 호소였다. 예정된 부분조정 시점은 11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KBS는 ‘정해진 사항이 없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

한국방송학회 방송저널리즘 연구회는 14일 오후4시,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본관에서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위기와 매체비평 프로그램의 현주소> 세미나를 열었다. ⓒ미디어스

한국방송학회 방송저널리즘 연구회는 14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본관에서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위기와 매체비평 프로그램의 현주소>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할 이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무엇보다 13년 동안 일정한 역할을 해 오며 존재가치를 증명해 온 <미디어 인사이드>를 ‘잃게 되는 것’에 대한 경계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지상파뿐 아니라 뉴스를 보도하고 있는 12개 채널(KBS 1TV, KBS 2TV, MBC, SBS, EBS1, 채널A, JTBC, MBN, TV조선, YTN, 연합뉴스TV, SBS CNBC) 가운데에서도 홀로 남겨진 ‘언론 상호 비평이 가능한’ 프로그램 <미디어 인사이드>를 갑작스레 폐지하려고 하는 KBS 결정에 대한 비판이 거셌던 이유다.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장식품’ 정도로 보는 KBS

이종혁 경희대 교수는 “(언론을 비평하는) 시민단체가 있으나 미국의 TV비평협회 같이 광범위하고 소비자 단체처럼 규모가 큰 단체는 역부족인 것 같다. 학계에서 관련 세미나를 열어도 참여해 준 언론사는 적었고 나온 종사자들 역시 보도에 대한 자숙보다는 방어 위주로 말씀하셨기에 (학계의 비판 시도) 역시 쉽지 않다. 미디어오늘 같이 언론 비판을 주 전공으로 하는 미디어도 있지만, 보는 사람들이 매우 제한돼 있어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존재함으로써) 결국 언론이 권력화하지 않고 스스로도 자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데 그 마지막 기회마저도 없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해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종혁 교수는 “(보통의 회사는) 1년 성과를 주주에게 공개하지만 KBS와 같은 공영방송은 다른 방식의 책무성 수행이 필요하다. 수용자에게 자기 프로그램의 잘잘못을 투명하게 알리는 것,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있어야 될 필요성이 여기에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그밖에 취재윤리나 보도·편집 윤리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한데 이것도 상호 비평을 통해 (이 부분이) 향상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바라봤다.

YTN <시청자의 눈>과 KBS <미디어 인사이드>의 자문을 맡았던 김춘식 한국외대 교수는 YTN 사례를 언급하며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구색 맞추기용’으로만 인식하는 방송사 경영진 행태를 비판했다.

“YTN <시청자의 눈>을 6년 하고, 다시 연락이 와서 스튜디오 촬영을 하는데 옆방에 한 정치평론가가 패널로 나오는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더라. 전형적인 경마 저널리즘을 하고 신뢰할 수 없는 평론을 하는 방송은 메인 스튜디오에서 하고 (<시청자의 힘>은) 골방 같은 곳에서 하는 걸 보고 ‘형식적인, 장식품 같은 역할은 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김춘식 교수는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 보수 편향의 언론 지형과는 조금 달랐다. 저는 그걸 보면서 정보가 유통되고 있는 정보 시장과 환경, 생산자들에 대한 공적 신뢰가 무너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수용자들이 뉴스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굉장히 선택적, 전략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KBS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정부 신뢰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하는 ‘공정한 공급자’이자 다른 언론 뉴스를 비교할 수 있는 ‘준거 틀’ 같은 역할을 KBS가 해야 하는 만큼, 언론 보도 전반의 품질을 평가할 수 있는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더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폐지한다는 내부 방침이 정해졌다면 한국사회에서 시민들이 요구하는 기대와는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결정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기형 경희대 교수는 불과 3년 전, KBS가 한국언론학회와 함께 <TV 매체비평 10년, 성과와 전망> 심포지엄을 열었고 길환영 사장이 직접 참석해 ‘<미디어 인사이드>가 매체비평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고 언론 간 상호 비평을 통해 상호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밝힌 점을 먼저 거론했다.

그러면서 “KBS는 매체비평 프로그램을 장식품 정도로 생각한다. 시간대는 조금 이른 저녁대(일요일 오전 5시 10분)으로 옮겼지만, 남들한테 ‘우리가 이 정도 한다’는 식으로 운용하고 있다”며 “경영진이 이 프로그램의 책무성과 역량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지 궁금하다. 별로 관심 갖지 않고, 성가셔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달 초 폐지설이 나온 KBS <미디어 인사이드>

“언론의 침묵의 카르텔에 균열 낼 수 있는 유일한 프로그램”

이민규 중앙대 교수는 “종편 허가 이후 한쪽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게 됐다. 대중들은 어떤 정보를 믿어야 하는지, 어떤 관점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를 점점 박탈당하고 있다. 그래서 뉴스를 제대로 보고 파악하고 (잘못된 정보를)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이를 신장시킬 수 있는 역할을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12개 방송사가 방송법에 의해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두지만 겉치레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시청자들의 문제제기에 응답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타사 프로그램을 포함해 전체적인 언론 지형(의 문제를) 이야기해주는 게 <미디어 인사이드>다. 우리 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좋은 기사도 소개하고, 이슈 파이팅도 하고, 언론에 ‘관점’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며 “이유 없이, 게릴라 작전 하듯이 모든 것을 숨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폐지 논의가 있었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3년 전 <미디어 인사이드> 10주년 심포지엄에서 발제를 맡았던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미디어 인사이드>는 타사 이름을 언급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지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며 “언론 상호 비평 프로그램이 다 사라지고 하나 남은 게 <미디어 인사이드>라며 3년 전 자사 비평을 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폐지 얘기가 나오는) 이제 와 생각하면 왜 그렇게 박하게 평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소회를 전했다.

홍원식 교수는 “과연 <미디어 인사이드>를 KBS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2013년 심포지움 당시 KBS는 수신료 국면이었다. 사장까지 나와 직접 (프로그램의 존재 의의를) 얘기할 때는 언제고 폐지설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또, 왜 현 시점에서 폐지 얘기가 나오는지 궁금하다. 노조를 순치시키려는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보도가 나오고, 대선이라는 중요한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사장이 바뀌고 나서 이런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언론 상호 비평 프로그램이 없어졌을 때 우리 사회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뻔하다. 집단의 압력으로부터 언론사들이 갖고 있는 ‘침묵의 카르텔’, 여기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프로그램이 없어진다는 것에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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