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에 대한 운영금지가처분 신청 검토 조치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런 문제에 관해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 등은 민주당의 조치를 옹호하고 있다. 반면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경신 교수나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 등은 사이트 폐쇄라는 조치는 과다하며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는 편이다.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라는 말도 원론이고 “표현의 자유를 언제나 존중받을 수 없다”는 말도 원론이다. 해당표현이 그 ‘최대한’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따져봐야 하고 존중받지 못할 표현이라도 규제방법의 적절성에 대해선 토의해볼 수 있다.

이런 문제는 감정이나 서로의 원칙만 내세워서는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이 문제를 규제의 정당성 / 합목적성 / 후과의 문제로 나누어 판단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일간베스트 저장소' 캡처 화면

규제의 정당성의 측면

규제의 정당성의 측면에서는 가처분 신청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할 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국 교수는 ‘일베’의 문제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반인륜의 문제임을 거듭 지적하고 있다. ‘일베’는 호남을 멸시하고 군사독재나 학살을 옹호할 뿐만 아니라 여성 혐오에도 일가견이 있고 성범죄를 찬양하거나 모의하는 듯한 게시물을 쓰기도 한다. 이런 게시물은 그 자체로도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런 게시물이 전혀 제재를 받지 못하고 추천을 받아 메인화면에도 올라가는 사이트 역시 규제의 대상이 된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조국 교수가 언급한 바 있는 방통위 심의규제 등이 그간 진보진영 쪽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나쁜 제도로 비판해 왔던 것이라면 일관성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홍성수 교수의 경우 평소 명예훼손에도 비판적인 입장이었던 만큼 명예훼손 소송을 통해 ‘일베’ 게시물을 규제하는 것에도 회의적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이라고 모두가 명예훼손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개인의 주장 여부에 따라 명예훼손 소송에 충분히 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일베' 게시물에 대해 소송을 준비하는 5.18 유족 관련단체들의 경우 사자 명예훼손을 근거로 고소할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종류의 구제책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소송 취하를 권고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규제의 합목적성의 측면

운영금지가처분 신청의 가장 큰 문제는 규제의 합목적성 차원에서 발생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에 있다. 웹상에서 전공자가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5.18 관련된 명예회복이란 법익에 민주당이 주체가 될 수 있는지도 애매하고 ‘운영금지’를 요구하면 운영이 아니라 문제 게시물을 올린 회원이 문제가 아니냐는 항변을 접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적어도 민주당이 직접 신청을 할 것이 아니라 5.18 관련 단체들이 신청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은 타당하다.

사실 ‘일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전땅크 부릉부릉’, ‘홍어’, ‘5.18 폭동’ 등 인종차별적이고 반인륜적인 비하어나 사실왜곡일 것이다. 소수자를 차별하는 혐오표현(hate speech)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람들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5.18 희생자 사진에다 대고 ‘(홍어) 택배 배달’ 운운한 반응이었다. 물론 ‘일베’가 아니라면 그런 게시물은 삭제되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을 하는 이들은 설령 민주당의 의도대로 ‘일베’ 사이트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다른 사이트에서도 덧글 정도는 달 것이다. ‘일베’란 사이트를 없애려는 민주당의 시도가 지나치게 상징적인 것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조국 교수의 말대로 문제가 되는 게시물에 대해 민형사소송이 가능하다면 그것부터 진행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일일 수 있다. 실제로 강운태 광주시장이 문제가 되는 게시물에 대해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예고한 이후 ‘일베’에선 문제가 될 만한 게시물에 대한 대대적인 자발적 삭제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실 이용자가 공포를 느끼는 부분은 사이트 폐쇄보다는 개별적 소송의 가능성일 것이다. ‘일베’라는 사이트의 폐쇄는 증오발언을 일삼는 이들을 실질적으로 규제하지는 못하고 유희적 도발을 일삼는 그들에게 ‘탄압의 서사’를 제공할 뿐이다. ‘일베 민중항쟁’ 류의 ‘짤’이 나돌고 있는 현실은 민주당의 대처가 일종의 우스갯소리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규제의 후과의 측면

규제의 후과 문제를 따져 봐도 민주당의 대응이 충분히 숙고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5.18 민주항쟁에 북한군이 개입했거나 폭동이었다고 믿는 것을 ‘반인륜적’이라 지적한다면, 한국의 보수우익들은 남침, KAL기 폭파, 천안함 침몰 등이 북한의 행위가 아닌 정부의 공작이라고 오해하는 견해 역시 ‘반인륜적’이라 반박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불과 30년 만에 젊은 세대가 광주를 잊었다고 한탄하지만, 아마도 이는 1980년대에 광주에 골몰하는 대학생들을 보는 보수우익들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들 역시 6.25전쟁의 참상을 30년도 지나지 않아 청년들이 망각한 현실에 경악했을 것이다.

이런 지점들까지 고려한다면 특정한 표현이나 견해를 처벌하거나 규제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6.25가 북침이라 오해하는 이들은 여론조사마다 몇 %씩 생길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조선일보가 그러하듯 주기적으로 1면에서 개탄해야 할 일은 아닐 수 있다. 어떤 청년들이 광주항쟁의 진실과 의의를 잘 모른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무지는 정치교육이나 역사교육의 문제일 수 있고 무지에서 나온 단순한 의심의 표현까지 규제대상이 된다면 정부 견해에도 반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를테면 논의의 질과 증오표현의 수위가 다르더라도 촛불시위 당시 다음 아고라를 폐쇄하자는 논리와 현재의 '일베' 폐쇄를 말하는 논리가 얼마나 다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규제되어야 할 것이 무지에서 나온 표현 자체가 아니라 종편처럼 책임감을 가져야 할 언론매체의 보도, 과도한 증오나 인종적 편견이 담긴 특정한 표현 등이라면, 가처분신청을 낼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인권의 측면에서 규제되어야 할 표현의 선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논의 및 합의 도출이 시급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 되서야...

몇몇 선진국에서 존재하는 혐오표현이나 중요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심대한 왜곡을 제재하는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가처분신청을 찬성하는 이들이나 반대하는 이들이나 긍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에 대한 섬세한 접근은 이 영역을 사회문제화하고, 보수진영의 역지사지를 요구하면서, 국가보안법 문제 등 보수진영이 지나치게 규율하는 표현의 자유 문제도 이끌어내고, 혐오표현 등 보수성향 시민들이 지나치게 누리고 있는 표현의 자유 문제도 이끌어내는 것일 게다.

종편에 대한 문제제기와는 별도로, 현재 민주당의 ‘일베’에 대한 대응은 제1야당의 그것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선동적이다. 보기에 따라선 지난 대선에서부터 민주당이 꾸준히 ‘일베’에 대해 대응하며 그들의 담론적 영향력을 더 크게 키워줬다고 비판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일베’는 그 사이트가 탄생한 배경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다른 사이트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나머지’ 정서가 주축이었는데, 민주당은 그들을 수구의 본산인 것처럼 취급하여 더 큰 사회문제로 만든 측면이 있다.

‘일베’ 유저 몇 명을 잡겠다고 무리한 조치를 들이민다가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비아냥을 들으면 어찌할 것인가. 민주주의와 자유와 인권을 말했던 세력이 이러한 가치들에 스스로 예민함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민주당이 내세우는 어떠한 진보적 주장들도 비웃음을 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