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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은 신의 징벌’ 김진, 그만의 문제인가‘가해자 사과’ 받지 못한 굴절된 증오…21세기엔 넘어서야
한윤형 기자 | 승인 2013.05.24 11:34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진의 칼럼이 일본에서도 화제다. “신은 인간의 손을 빌려 인간의 악행을 징벌하곤 한다”로 시작되는 그의 칼럼은 독일 드레스덴 폭격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을 ‘신의 징벌이자 인간의 복수’로 규정한다. 드레스덴 폭격은 학살당한 유대인의 복수이며 일본의 두 도시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마루타의 복수라는 것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731’ 숫자가 적힌 훈련기에 올라탔단 사실을 규탄하며 마루타의 원혼이 아직 풀리지 않았고 “일본에 대한 불벼락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도 신의 자유”라고 말한다. 듣기에 따라선 일본에 원폭이 한 두 개 더 떨어졌으면 기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십년 전 십년 전만 해도 우리끼리 보고 넘겼을 일인데, 이제는 아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3일 기자회견에서 "정말로 분별없는 언급"이라며 "일본은 유일한 피폭국으로, 그런 인식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또 지난 21일 서울 대사관을 통해 중앙일보에 항의한 사실도 소개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시장도 공식적으로 김진 위원을 맹비난했고, 이임을 앞둔 신각수 주일대사의 24일 국회의원 대상 강연행사에서도 참석한 일본의원들도 칼럼 내용에 대한 한국정부의 견해를 물었고 신 대사는 "편집자의 의견이지, 한국인의 일반적 생각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 지난 2012년 9월 17일자 김진 칼럼(왼쪽)과 20일자 중앙일보 34면 김진 칼럼(오른쪽). 신과 귀신의 마음을 읽어낸 수작들이다.

귀신도 곡할 김진의 '선무당질'
 
신이나 귀신은 직접 발언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을 들었다 주장하며 이를 옮기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성공한 세계종교들은 몇 천년 전 혹은 수백 년 전 신의 말을 들은 이들의 발언의 집적에서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것을 배제하고 보편적 도덕률을 교리로 이끌어낸다. 그런 후에 요즘에 와서 신의 말씀을 들었다 주장하는 비주류종교들을 ‘사이비’라 규탄한다. 적어도 근대 사회에서 사회문제를 토론하면서 신이나 귀신의 의지를 제멋대로 끌어와 자기 견해를 정당화하는 행위를 용인하는 경우는 없다. 
 
물론 우리는 김진 위원이 그 드문 사례에 포함됨을 알고 있다. 그는 신과 귀신의 의지를 인간에게 전달할 수 있는 위대한 무당이다. 지난 해 그는 박정희가 천상에서 이미 인혁당 희생자들에게 사과했을 것이고 그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화해했을 거라 말한 바 있다. 막걸리에 취한 그의 이성은 그가 일본 원폭 문제에 내뱉은 말을 그대로 패러디한다면 '김재규의 총탄은 신의 의지이자 인혁당 희생자의 복수였고 이를 부인하는 박근혜의 망언엔 총알 두 세발이 더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걸 모른다. 박정희는 인혁당 사건의 명백한 가해자이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시민들이 731부대원인 건 아니기에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쪽이 덜 상스럽단 것도 모른다. 
  
드레스덴 폭격이나 원폭 투하를 결정한 연합군 수뇌부들이라면 김진과 같은 시각을 좋아할 것이다. 원폭문제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투하를 결정한 이들은 ‘신의 의지’와 ‘희생자의 복수’라는 시선에서 폭탄의 파괴력과 일본군의 저항의지를 오판하여 수많은 민간인 살상자를 만들어낸 자신들의 과오를 완벽하게 가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과 귀신의 의지를 자의적으로 갖다 붙이면 인간사에서 함께 따져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제각각 다른 의지를 끌여들여 자기 행동을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죽은 이들을 마루타의 징벌로 여긴다면 우리는 지나가는 일본인 아무나 죽여 놓고 식민통치에 대한 징벌을 했다고 우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전근대사회에선 그런 일도 흔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통용된 시기의 인간 역사에서는 침략이나 학살은 수치이기는커녕 자랑이었고 ‘패전’을 ‘승전’으로 고치는 역사왜곡도 상대방과의 교류가 없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일본 극우는 한국적 극우의 '막말'을 몰랐다
 
김진의 칼럼이 일본에 그대로 전해진 상황도 순기능이 없지는 않다. 그간 한국 사회의 극우파들은 인맥의 문제로 일본 극우 정객들과 얽혀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국 극우’의 관점에서 사태를 왜곡할 때 어떤 ‘막말’이 나올 수 있는지 그들의 ‘친구’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면이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보편적 인권이나 객관적 역사인식의 필요성을 모르는 전근대 부족사회의 심성으로 사태를 왜곡하고 증오를 부추길 때 한국 사회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에 대한 감이 없었을 수 있다. 일본인들은 그들이 독일의 사과하는 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한국 사회라고 영국이나 프랑스의 관용과 인권의식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한국 사회는 일본 사회보다 사실 인권감수성이 더 부족하며, 그런 이들이 분개하게 되었을 때 부당한 학살의 피해자들을 배려할 리가 없다는 걸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김진의 칼럼은 다시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된다. 그의 칼럼이 일본 사회에 전해진 것이 부끄러운 이들이 많겠지만 과연 김진의 생각은 예외적 현상일까. 원폭투하로 인한 살상이 옳다고 여기는 일은 극히 드물겠지만 일본이 ‘망언’을 하면 그 정도 받아칠 수도 있는 거라 믿고 속시원해할 이들은 꽤나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이들은 조중동 독자 중 일부이기도 하겠지만, 또 어떤 이들은 조중동을 싫어하는 이들이기도 하지 않을까. 적어도 웹의 반응을 보면 그렇다. 
 
일본 사회가 전후에 침략전쟁을 반성하기보다는 전쟁 자체를 혐오했고 자신들을 피해자로 규정하며 경제적 번영에만 힘을 쏟았다면, 그들에게 적절한 사과를 받지 못한 한국 사회는 민족 그 자체를 피해자로 위치지으면서 다른 문제를 덮었다. 인권이 아닌 민족의 문제로 접근하니 일제 치하의 희생을 비판하면서도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학살이나 광주의 학살의 문제를 지각하지 못하는 감수성이 생겨났다.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이 ‘역린’을 건드린 위안부 문제 역시 해방 후 한국에서도 쉬쉬 넘어가다가 수십 년이 지나서야 일본과 한국 양국의 시민운동가들의 노력에 의해 이슈화되었다는 사실은 잊혀졌다. 사실상 딸을 팔아먹은 부모들이나 ‘색시장사’를 해서 일본군에 피해자 여성들을 끌고 간 한국인 남성들이 숱하게 남아있던 사회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기 어려웠음은 망각되었고 끔찍한 반인권적 범죄의 공모자들은 뒤로 숨은 채 ‘무자비한 일제’와 ‘순결한 희생자’라는 이분법만이 남았다. 
 
김진의 '선무당질'…한국 사회의 과제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분노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맞지만, 한국인들 역시 전후 일본 사회의 맥락을 모르고 전쟁의 역사를 망각하고 경제문제에만 골몰하는 그들이 기회가 되면 다시 전쟁을 일으키길 원하는 것처럼 오해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고 ‘피해자’ 한국인들의 발언을 일본 사회가 문제삼기 어려웠던 정황에 편승해 원폭 투하를 ‘신의 징벌’로 표현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온갖 부적절한 수위의 비하들이 넘쳐났다.
 
<퇴마록>의 주인공들은 풍수지리를 활용해 일본열도 침몰을 기도하는 이들을 막아야만 했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일본의 무인도에 핵을 쏘는 것으로 결말이 났을 때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핵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지는 신경쓰지 않은 채 열광했고 어떤 독자들은 왜 무인도에 쏘느냐고 투덜댔다. 그에 비하면 축구선수 기성용이 ‘원숭이 세레모니’를 하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긴 했어도 애교 정도 밖에 안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양국의 교류가 늘어나고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 청년들의 ‘일본 콤플렉스’가 다소 극복되고 일본 사회 내 ‘한류’까지 생겨나면서 한국 사회의 일본에 대한 맹목적 증오 역시 많이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그 증오가 민족집단 일반에 대한 추상적인 것이었기에 대중문화를 수용하고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완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나 ‘망언’ 같은 문제가 터지면 한국인들은 예의 그 심성으로 복귀하곤 한다. 김진 같은 논설위원이 무당도 아닌데 무당질을 하게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사회의 수준은 ‘일본 극우 정치인의 수준’과 상관없이 평가받는 것이며, 그들을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전쟁범죄의 문제를 ‘피해자 민족’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권의 문제로 사유하는 것이 옳음을 인지할 때가 되었다.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로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이 김진의 생각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그 정도 수준에 이른다면 김진은 일본 사회의 반발이 일어나기 이전에 한국에서부터 사과를 하게 될 것이다.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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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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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늘통닭 2013-05-25 00:28:11

    요세 뉴라이트들이 다 들어갔지만, 뉴라이트식 전쟁범죄 대응 방식하고의 차이점도 부각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인권 문제에 중첩되서 제국주의의 문제로도 전쟁범죄를 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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