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신문매체지형도는 혼란스럽다. 십년 넘게 고착되어온 ‘조중동’ vs ‘한경’의 구도에 균열이 생기고,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구도가 펼쳐지는 모양새다. 정파별 대립구도에서 큰 존재감이 없었던 한국일보가 나름의 중심을 잡게 되면서 경우에 따라 ‘조중동’ vs ‘한경한’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또 최근 몇 년 동안 삼성 문제에 있어서는 조선일보가 오히려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보다 더 전향적인 보도를 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최근의 불산 누출 사고 건까지 포함해서, 이런 경우엔 오히려 ‘중동한’ vs ‘조한경’의 구도가 생기기도 한다. 불산 누출 사고 건에서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삼성과 LG를 비판한 유일한 보수신문이었다.

▲ 오늘자 조선일보 사설. 역설적인 일이지만, 근 몇년 간 조선일보는 삼성을 제대로 비판할 수 있는 유일한 보수언론이 되었다.

한편 박근혜 정부 출범하고 나서 가장 극적으로 변한 동아일보가 이명박 정부 때와는 달리 ‘견제와 균형’을 표방하고 나서면서 이전에 지적했듯 인사검증 국면 등에서 ‘조중서문’ vs ‘동한경한’의 구도까지 보인다.

이제 취임 일주일 만에 강도 높은 메시지를 던진 박근혜 대통령 담화문을 둘러싼 신문보도를 살펴보면 동아일보와 한국일보 등이 나름의 독자노선을 걷게 되면서 이분법적인 매체지형도에 균열이 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굳이 평하자면 ‘조중’ / ‘동한’ / ‘한경’ 사이에 균열이 있을 뿐 양진영으로 정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김대중 정부 출범과 안티조선 운동의 영향 이후 생겨난 ‘정파적 신문전쟁’의 질서가 약화되는 과정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대통령 담화문은 일단 국민 여론의 호응은 얻은 것으로 보인다. J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하여 성인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여론조사에서 담화문에 대한 공감의 반응이 57.3%, 비공감의 반응이 29.5%였기 때문이다.

▲ 대통령 담화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한 중앙일보 1면 기사

하지만 보수언론이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처신을 무한정 옹호하기는 힘들다.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임기 초 대통령의 강단있는 모습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계속될 때엔 쉬이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집권 초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힘을 실어주자는 게 지금의 심경이라면, 집권 중반에도 야당과 협의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신경질을 내는 대통령에게도 그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 기대하긴 힘들다.

그래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조심스러운 양비론의 자세를 취한다. ‘정치’가 상실되었다는 비판을 하면서도 그 책임을 청와대와 야당에게 동시에 묻는 형식이다. 이런 태도를 취하면 상황에 따라 다시 대통령을 옹호하는 쪽으로 돌아가는 데에도 부담이 없고 여론이 안 좋다 싶을 때 정부를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서는 데에도 부담이 없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적극적으로 대통령과 청와대를 비판한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이 거듭 물러서고 합의를 해줘 마지막 남은 사안을 ‘핵심적인 사안’이라며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지금까지 야당이 양보해준 것을 마치 자신이 양보해준 것인마냥 국민들 앞에서 ‘언론 플레이’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두 신문의 비판은 타당하다.

▲ 오늘자 한겨레 1면 기사. '양비론'을 펼치는 조선 중앙과 달리 적극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을 비판한다.

문제는 ‘중립지대’의 두 언론,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다.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도 일견 ‘조중’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동아일보의 1면은 “대한민국, 인재도 잃고 정치도 잃다”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사퇴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진보언론 및 인터넷 여론의 검증공세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 오늘자 동아일보 1면 기사. '인재'라는 표현에서 김종훈 미창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알게 된다.

김종훈 내정자에 대한 ‘조중동’ 세 신문사의 환호는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그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2면 분석기사에서 이중국적 논란이나 CIA와의 연계설까지는 김종훈 내정자도 납득할만했고 해명을 하려 했으나 가족들에 대한 검증공세가 그의 의지를 꺾었다고 분석한다.

동아일보 역시 5면 분석기사에서 김종훈 내정자가 ‘CIA 스파이’로 몰리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고 서술한다. 이런 기사들은 분석이지만 우회적인 비판이기도 하다. 이는 김종훈 내정자에 대해 드러난 의혹을 다시 한번 열거하는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태도와는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이래서야 재외교포나 외국인을 어떻게 기용할 수 있겠느냐는 동아일보 기사와 사설의 물음에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김종훈을 높이 평가할지언정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나 담화문에 대해서는 분명히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다. 3면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투쟁형 정치로는 대통령 리더십 발휘 어렵다”는 제목의 분석기사로 조선 중앙보다는 한걸음 더 나아간 비판을 한다. 새누리당 내부의 비판까지 반영한 이 기사는 그 수위에서 ‘조중’과 ‘한경’의 사이에 있다.

▲ 동아일보 3면 기사.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양비론적' 기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박근혜 스타일'을 비판하고 있다.

같은 면의 ‘역대정부 개편협상’에 관한 기사는 우회로를 택하는 척하지만 사실상 ‘박근혜 리더십’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이다. 이 기사는 역대정부들이 모두 개편협상을 두고 갈등을 겪을 때 야당과 일정 부분 타협을 하여 일단 정부를 출범시키고 나중에 원하는 바를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식물정부’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고 있지만 이 기사에 따르면 그것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 오늘자 동아일보 3면 기사. '전례'들을 소환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한편 한국일보는 동아일보와 또 다른 입장이다. 한국일보는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도 문제를 지적하는 미래창조과학부로의 기능 이관 문제에는 찬성하는 논조다. 이는 한국일보의 정견일 수도 있고, ‘조중동’과는 달리 종편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신문의 처지를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종편을 보유하고 있는 신문이 방송프로그램공급자(PP)인 'CJ E&M'과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인 'CJ 헬로비전'을 모두 가지고 있는 CJ가 규제에서 풀려서 성장하는 것을 경계한다면, 한국일보 입장에서 그것은 ‘강 건너 불구경’일 것이기 때문이다.

▲ 오늘자 한국일보 사설. 대통령의 발언에는 동의하나 정치력이 아쉽다는 비판을 한다.

그러나 한국일보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가 아쉽다는 얘기는 분명히 한다. ‘정치의 실종’에 대한 문제제기는 비록 양비론의 형식을 취한다고는 해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까지도 공유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립지대’에 있는 동아일보와 한국일보의 지적을 보고 그 내용을 통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태도를 다시 되새기면, 박근혜 정부가 강단있는 모습으로 여론을 탄다고 해서 결코 바람직한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 오늘자 한국일보 3면 기사. 조선 중앙의 '양비론'보다는 약간 더 정부 비판에 동참한 기사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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