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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구구절절한 반박문을 보내 온 사연[기자수첩] ‘불공정’이란 표현 없으니 공정하다? 어설픈 반박
김수정 기자 | 승인 2013.02.19 22:21

   
▲ 서울 여의도 KBS본관 ⓒ미디어스
KBS가 이례적인 반박문을 내 놓았다.

언론 보도 내용 중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고, 반박 자료를 내는 것은 홍보실의 일상적인 업무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례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반박문 치고 사연이 구구절절했고, 그마저도 반박을 위한 반박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KBS는 제18대 대선에 대한 자사 보도의 공정성을 연구, 평가하기 위해 노사 합의 하에 연구진을 꾸려 대선방송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해 9월부터 진행된 이 작업은 당초 지난달 15일까지 완성 예정이었지만 보고서 제출일이 한 달 가량 미뤄져, 그 원인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최종 보고서 제출 기한이 연기되자, ‘사측이 보고서를 마사지하려고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이 보고서를 한 언론사가 가장 먼저 확인하고 기사화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KBS의 대선 보도, 공정하지 않았다’. 기사는 연구진들이 분석한 결과를 근거로 KBS 대선보도의 공정성을 지적하는 내용이었고, 구체적인 통계 수치 및 사례가 포함돼 있었다. 미디어스도 19일 이 같은 내용(기사 링크)을 보도했다.

보도 시점에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KBS는 출입기자들에게 ‘대선보도 공정성 연구 결과의 왜곡에 대한 반박문’을 보내왔다. KBS는 6가지 이유를 들면서 해당 보도를 반박했다. 물론, KBS 대선보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불공정하다’고 평가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KBS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대선방송 공정성 평가 보고서 관련 보도가 잘못됐다고 항변한다.

- 원안 어느 부분에도 KBS 대선보도가 불공정했다는 내용은 없다
- KBS 대선보도가 질적, 양적 측면에서 불공정했다거나 특정 후보에게 유·불리했다는 주장은 없다
- 오히려 KBS는 형식적·기계적 공정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 보고서는 공정성 부분에서 비판적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고 했을 뿐, 불공정하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KBS의 해명은 부분적으로는 맞다. 19일 기자가 보고서를 확인해 본 결과, KBS의 대선보도와 관련해 ‘불공정’, ‘유리’, ‘불리’ 등의 직접적인 단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대신 “KBS 대선보도 한 건 당 평균 길이는 비교적 짧았다”, “보도 프레임 구성의 공정성은 …중략… ‘이미지 프레임’과 ‘변화·차별화 프레임’, 그리고 ‘폭로·비방·갈등 프레임’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영상요소와 기법에 대한 분석결과에서는 …중략… 일부 요소와 기법의 사용에서 후보자 간 차이를 보여 ‘흠결 없는’ 공정성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등의 설명이 등장한다. 박근혜 후보에게 편파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에 비해 보도 내용상의 전체 항목에 걸쳐 우호적 요소가 적지 않게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KBS 보도 내용의 공정성 부분에서는 비판적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앵커와 리포터의 리포팅에서 상대 후보들에 비해 안철수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기사 비율이 높게 나타났고 전체 빈도에서는 박근혜 후보에 우호적인 요소가 다소 높게 발견되었다”(후보자별 앵커 보도태도 평가).

이 문장들이 어떻게 읽히는가. KBS 대선보도가 공정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이는가. 한마디로 KBS는 ‘불공정’, ‘유·불리’라는 표현이 없다는 이유로 멀쩡한 언론 보도를 트집 잡고, A4 3쪽 반이나 되는 ‘반박문’을 보내온 것이다. 이쯤 되면 ‘말장난이나 하자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한 연구진들은 △뉴스 형식, 보도량, 보도내용 상의 외형적·기계적 공정성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선거 보도프레임 구성에 나서야 한다 △향후 대선보도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영상요소의 공정성에 대한 가치와 규범을 보다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연구진들의 제언 가운데 “외형적·기계적 공정성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이 있다. KBS가 자사 대선보도가 공정했다는 근거로 든 그 ‘외형적·기계적 공정성’ 말이다. 일부 언론과 새 노조가 보고서 원안 내용을 왜곡했다고 비판하지만, KBS야말로 보고서 평가 내용을 입맛대로 해석한 것 같다. 그저 형식적 공정성을 지켰다는 것을 공정보도라고 해석하는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부끄러운 자세가 아닌지. “외형적·기계적 공정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평가에 만족한다면 그건 더 심각한 문제일 테다.

KBS는 반박문에서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대선 분위기 및 선거 운동 등 맥락적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데 이번 대선은 ‘안철수 현상’과 ‘단일화 국면’에 함몰된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며 “뉴스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선거 분위기와 부정적 여론 등이 가감 없이 반영되었다는 맥락적 상황을 함께 읽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8대 대선이 안철수 현상과 단일화 국면에 함몰돼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KBS가 대선보도를 하며 시류에 휩쓸려 ‘중계보도’를 하는 것은 옳은가. “단순히 후보자나 후보자 캠프가 구축한 프레임을 중계방송하듯이 사실을 피상적으로 전달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보도 프레임 구성의 공정성 부문). 보고서 원안은 KBS의 중계보도 양상을 더 아프게 꼬집고 있다.

KBS의 구구절절한 반박문은 ‘연구진들의 진의를 왜곡하지 말라’, ‘정파적 차원에서 문제제기하는 점을 반성하라’는 당부로 마무리된다. 공영방송으로서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공정 선거보도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은 KBS인데 도리어 경고를 하고 있다. “지난해 4·11 총선과 대선 양대 선거를 가장 공정하고 성공적으로 치렀다”던 길환영 KBS 사장의 자화자찬이 이해되는 이유다.

김수정 기자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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