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작가의 '프로야구 카툰'에서 각 팀을 표현하는 캐릭터들. 카카오톡 플러스의 '야구친구' 계정은 이 사진을 프로필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 최훈 작가가 야구 카툰을 더 이상 네이버에 연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앞으로는 현재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계정으로 운영되는 ‘야구친구’에 프로야구 카툰 등을 연재하겠다는 결정이었다. 네이버 연재의 대우가 ‘야구친구’보다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은 사람들에게 의외의 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미디어스는 최훈 작가에게 접촉하여 이러한 결정의 의도를 물어보았다.

최훈 작가의 설명은 흥미로웠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제대로 된 매체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야구 웹툰을 그리게 되면서 배우게 된 것들이 많다. 느낀 것 것 중 하나는 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 설명했다. 최훈 작가는 “흔히 (야구 기사를 내는 스포츠) 신문은 ‘찌라시’로 폄하되고 기자는 ‘기레기’로 불리는데, 사실 스포츠 신문 기자들 보면, 정말로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기사는 그들이 아는 만큼 나오지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기자 본인이 아는 만큼 쓸 수 있는 매체,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야구친구’ 사람들이 그런 걸 만들기를 원한다는 걸 알았기에 기획단계부터 참여했다”라는 것이다.

물론 최훈 작가는 야구에 대한 지식이 많기는 해도 직접 기사를 쓰는 입장은 아니다. 그는 “나는 만화 그리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홍보’ 역할 정도다. ‘야구친구’를 안착시키기 위해 내 만화를 홍보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야구친구’에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네이버가 용납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냐고 묻자 그는 “그렇지는 않다. 사실 그만둔다고 했을 때 네이버에서 여러 가지 좋은 제안들을 해왔다. 사실상 ‘야구친구’와 네이버 웹툰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관대한 제안들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컨텐츠가 일단 네이버에 올라가게 되면 그걸 ‘야구친구’에서 다시 볼 사람은 별로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고심 끝에 ‘야구친구’를 돕기 위해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최훈 작가가 설명하는 ‘야구친구’라는 프로젝트는 특정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뉴미디어를 활용한 독립언론 프로젝트’라 할만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기업 광고를 먹고 살 수밖에 없기에 기업의 이해관계를 거스르는 기사를 쓰기가 힘들다. 가령 <시사in>과 같은 주간지나 본지 같은 매체비평지는 기존의 언론에서 ‘삼성’을 다루는 기사를 쓰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탄생했다는 비화를 가지고 있다.

기업 광고에서 자유로운 독립언론이 되려면 상당수의 유료구독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는데, 모든 기사가 공개되는 인터넷 시대에 유료구독자를 만들어내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클릭수에 의존하다보면 인터넷에서도 다시 광고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프로야구는 정치와는 또 다른 영역이지만 지역사회가 아니라 특정 기업이 구단을 운영하는 한국 프로야구의 특수성이 있다. 그래서 스포츠신문의 보도는 구단주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구심을 가진 팬들이 많다. 가령 제작년에 있었던 SK 구단의 김성근 감독 해임 사건은 많은 팬들의 관심사였지만 보도 방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구단의 홍보에 휘둘리는 기사가 너무 많다는 불만도 팽배하다.

▲ '야구친구' 계정을 친구 추가하면 카카오톡에서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기존 매체의 자본화 경향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 ‘뉴미디어’는 종종 새로운 대안으로 여겨지곤 했다. 90년대의 PC통신이나 2000년대의 인터넷 게시판은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으로 여겨졌다. 포탈이 대세가 되자 블로거들은 ‘메타 블로그 서비스’를 만들었다. ‘구글 에드센스’나 그것을 모방한 ‘올블로그’처럼 웹의 조회수를 기반으로 광고료를 지급받는 형식의 수익모델도 생겨났다. 하지만 뉴미디어는 빨리 빨리 변했고, 대부분의 ‘메타 블로그 서비스’는 망하면서 사람들은 SNS에 주목하게 되었다. SK가 최근 인수했던 ‘이글루스 블로그’를 다시 독립시키며 사실상 운영을 포기한 것도 ‘메타 블로그 서비스’의 사업성이 사라진 상황과 관련이 있다.

웹진의 몰락과 블로고스피어의 하락 이후 스마트폰 환경에 맞춘 새로운 컨텐츠 유형에 대한 시도는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애플 생태계의 팟캐스트와 앱은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진보매체들은 서둘러 앱을 만들었고 팟캐스트는 ‘나는 꼼수다’라는 기념비적인 성공사례를 남겼다. IT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앱개발 비용이 천만원을 넘어설 정도였으나 이제는 상당히 대중화가 되고 뉴스앱을 만들어본 경험이 쌓여서 개발 비용은 백만원대까지 떨어진 상태”라고 귀띰한다. 복수의 진보언론에 문의한 결과 대체로 업체와의 협상을 통해 앱개발 비용은 거의 지불하지 않는 방식으로 앱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소통형 공론장은 ‘아고라’ 형의 게시판에 몰려 있다. ‘디시인사이드’나 ‘오늘의 유머’, ‘일간베스트’ 등의 사이트가 아직도 흥하고 ‘삼국 카페’가 여성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각종 뉴스를 ‘폰으로 보지만 PC에서 떠드는’ 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이 와중에 SNS는 유일하게 쌍방향이 가능한 매체로 주목받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리고 카카오톡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이유다. 카카오톡은 그 자체로는 SNS라 보기 어렵지만 ‘카카오 스토리’를 만드는 등 SNS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중이다. ‘애니팡’과 ‘드래곤플라이트’ 등 카카오톡 기반의 게임이 히트치면서 놀라운 수익을 벌어들이는 등 카카오톡을 활용한 여러 가지 사업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요즘 전자콘텐츠의 경쟁 구도는 네이버와 카카오톡의 대결로 압축되는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최훈 작가가 ‘떠나온 곳’과 ‘새로 찾은 곳’의 대결구도다. 카카오톡은 현재 ‘카카오 페이지’란 이름의 새로운 모바일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페이지 링크) 반면 네이버는 ‘네이버 웹툰’으로 수 십명의 웹툰 작가를 데뷔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장르소설 연재를 시작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관련 기사 링크) 스마트폰 환경을 선점하고 ‘모바일의 네이버’로 거듭날 기세인 카카오톡에 맞서 ‘모니터의 네이버’가 자본력을 동원해 따라가려는 추세다.

‘카카오 페이지’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전망이 갈린다. 설명에 따르면 수익의 30%는 애플에 지불하고 나머지를 카카오톡과 콘텐츠 제작자가 나뉘는 방식이다. ‘카카오 페이지’에서 1초코는 100원에 해당한다. 누리꾼들은 마치 이모티콘을 사듯 10초코(1천원) 정도로 콘텐츠를 사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애플에 3초코를 떼주고 나머지를 카카오톡과 콘텐츠 제작자가 나누는 방식이 된다.

카카오톡 측에 확인한 결과 나머지 수익의 분배비율은 카카오톡 측이 2를 가져가고 콘텐츠 생산자에겐 5가 돌아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출판계 관계자는 “500원을 출판사가 수금해서 인건비 주고 저자에게 준 후 이문을 남길 수 있을까? 그게 관건이다”라고 진단했다. 카카오톡 측은 "현행 방식도 확정된 건 아니고 콘텐츠 사업자에게 더 큰 몫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에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만화 출판사 등에서는 ‘카카오 페이지’로 콘텐츠가 집중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워블로거'와 같은 사람들에게도 '카카오 페이지'의 실험은 흥미로울 수 있다.

현재의 ‘야구친구’는 일단은 ‘카카오 페이지’도 아닌 ‘플러스 친구’에 속해 있다. '플러스 친구'는 광고형 계정의 경우 첫달 2천만원의 개설비를 내고 매월 1천만원씩을 지불해야 하지만 콘텐츠형 계정의 경우는 입점료가 없다고 한다. '야구친구'는 '광고 수주'와 '유료 콘텐츠'에 대한 계획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야구친구의 한 관계자는 "모바일 야구 게임사를 대상으로 이미 광고를 따낸 상황이다. 카카오톡 '야구친구'는 계속 독자에겐 무료로 가겠지만 '카카오 페이지'에서는 유료 콘텐츠에 대한 실험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훈 작가는 “‘야구친구’는 한동안 카카오톡과 동행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앱이라든지 이런 걸 활용해 카카오톡을 모르는 이들도 서비스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으로 알고 있다”라고 부연한다.

하지만 모든 모바일 채널이 카카오톡으로 집중되는 상황에서 순수 모바일 기반 매체가 카카오톡을 벗어나 생존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또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읽을 경우 어느 정도 길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여부도 문제다. 당장 이 기사는 A4 3장에 근접하는 길이인데 이 정도 길이의 기사를 폰에서도 문제없이 읽는 이들의 숫자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최훈 작가의 카툰이 ‘야구친구’와 함께 하는 것은 든든한 지원이 될 수 있다. 카툰은 기사보다 핸드폰으로 보기에 훨씬 편하고 그러다보면 기사에도 손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두 시쯤 대체로 느지막하게 올라오는 최훈 작가의 프로야구 카툰을 보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네이버를 접속했다가 카툰을 찾기가 의외로 힘들다는 경험을 한 사람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최훈 작가와 ‘야구친구’의 동행은 오히려 그의 카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도 있다.

최훈 작가는 “이 기획이 ‘야구친구’에만 머무를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야구친구’가 제대로 안착이 되면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한 것이 나올 수 있고 나중엔 ‘정치친구’ 같은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가 기대하는 것은 모바일 환경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독립언론이라 할 만하다. 모바일 환경을 활용해 기업광고를 통하지 않고 유료 구독자를 확보한 언론의 가능성에 대한 낙관론이 가능한 반면, 카카오톡이라는 단일 플랫폼이 ‘대세’가 되어 모바일 환경 역시 자본화가 진행될 거라는 비관론 역시 가능하다.

최훈 작가와 ‘야구친구’의 실험은 이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의 가능성을 실제로 시험하고자 한다. 그들의 실험은 조류에 맞을 뿐 아니라 어쩌면 올드미디어를 장악당해 대선에서 패배했다 여기며 ‘국민TV방송’ 운운하는 일부 야권 인사들의 그것보다 더 성찰적이다. 진보언론 역시 이러한 실험에 관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또한 스스로도 모바일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 야구친구 계정 화면. 벌써 구독자가 46만을 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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