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사장이 강제 해임되고 보수언론 출신 부사장이 임명되는 등 EBS 경영·관리 체계에 일대 변화가 예고됐다. 이를 두고 '공산전체주의·반국가 세력에 맞서겠다'고 강조해 온 윤석열 정권이 EBS를 통해 이념전쟁을 벌이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보수진영은 영화 '건국전쟁'의 흥행에 고무된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김홍일, 이하 방통위)는 오는 26일 유시춘 EBS 이사장에 대한 해임 전 청문을 진행한다. 방통위는 지난 4일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유철환)가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힌 지 일주일 만에 유 이사장 해임을 결정했다. 유 이사장의 임기는 오는 9월까지다. EBS 안팎에서 차기 이사장 자리를 두고 강규형 이사(국가기록관리위원장)와 이준용 이사(자유언론국민연합 공동대표)가 경쟁 중이라는 설이 돌고 있다. (관련기사▶'2인 체제' 방통위, 유시춘 EBS 이사장 해임절차 돌입)

지난 2년 간 공석인 EBS 부사장에 김성동 월간조선 전 편집장이 내정됐다. EBS법상 부사장 임명권한은 사장에게 있다. 하지만 EBS 부사장 임명에 정부가 개입해왔다는 게 정설 아닌 정설이다. 김 전 편집장은 과거 '신천지 홍보 기사' 논란을 빚었다. 편집장 시절에는 좌파들이 북한에 일조한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훌륭한 대통령으로 선전·선동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폄훼한다는 글을 썼다. (관련기사▶EBS 부사장에 '신천지 홍보 논란' 월간조선 전 편집장)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KBS·MBC에 이어 가장 정치적이지 않아야 할 공영방송인 교육방송 EBS 이사장 해임까지 이르렀다"며 "EBS마저 정권의 입맛대로 장악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비판에 나섰다. 

(EBS)
EBS 사옥 (EBS)

EBS가 '이념전쟁'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서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며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우리가 매몰됐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서 여소야대에다 언론도 전부 야당 지지세력들이 잡고 있어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한다"고 했다. 발언 당시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이 한창이었다. 

문화일보 논설위원 출신이 사장으로 취임한 KBS에서 지난달 11일 대표 역사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이 갑작스럽게 종영했다. KBS는 '역사저널 그날'이 시즌제 방송이라며 5월 경 리뉴얼 후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앞서 보수성향의 KBS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역사저널 그날'의 일부 제작진이 진행자 변경 등에 반발해 내홍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특히 KBS노동조합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이번 제작거부의 원인이 단순히 MC와 작가 교체만은 아닐 것"이라며 "2020년에도 총선을 앞두고 '역사저널 그날'은 다분히 편향적인 아이템들을 다뤘으며 관점도 편향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7일 KBS '영화가 좋다'는 잊고 있던 역사적 진실이라며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요주의 픽'으로 꼽았다. KBS는 "(이승만 전 대통령)재임 기간 중 그의 업적을 재조명·재평가 해 주목받고 있다. 그중 하나가 농지개혁, 그리고 문맹퇴치"라며 "농지개혁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교육재단 육성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하며 자유민주주의 기틀을 마련하고 이것은 곧 훗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토대가 됐다"고 전했다. 

KBS는 중간중간에 인터뷰이인 김덕영 감독, 류석춘 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 이호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 대표 등의 주장을 담았다. 

이에 대해 민주당 선다윗 대변인은 "독재자 미화 영화인 '건국전쟁' 홍보는 되고,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참사에 대한 추모 다큐는 안 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라고 비판했다. KBS는 '총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 제작·방영을 불허했다. 

KBS '영화가 좋다' 2월 17일 방송 갈무리
KBS '영화가 좋다' 2월 17일 방송 갈무리

EBS는 2013년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의 제작을 돌연 중단시켜 논란을 빚었다. EBS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의 제작은 70% 정도 진행된 상태로 해방 직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후손들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었다. 반민특위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친일파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지난 2014년 수능 연계교재로 출판된 EBS 한국사 교재에서 박정희 정권의 국회 해산 내용이 교육부 압력에 의해 삭제된 사실이 드러났다. 2017년에 출판된 2018년도 수능 연계 교재는 제주 4·3 사건의 원인을 '좌익 세력의 무장봉기'로 서술하고, 박정희 정권에 대한 문항을 경제정책과 새마을운동 등 '공'만 나열했다는 논란을 빚었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10월 KBS 보궐이사로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가 갔다. 방송사인데 '방송'자가 1도 안 붙은 사람들을 보내고 있다"면서 "EBS가 이념의 전쟁터가 될까 우려된다. 영화 '건국전쟁' 관객이 100만 명을 넘었는데, EBS를 활용한다면 훨씬 전파력이 크다고 판단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방송계 관계자는 "제2의 '건국전쟁' 같은 영상을 만드려고 하지 않겠나"라며 "과거 EBS가 '민주주의 5부작' 등을 만들었을 때 보수정권에서 추천한 이사들이 항의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EBS 서남수 이사장과 일부 이사들은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편을 이념 편향 프로그램으로 규정하고 프로그램 검증과 게이트키핑을 주문해 파문이 일었다. 

EBS '다큐프라임-민주주의 5부작' 예고편 갈무리
EBS '다큐프라임-민주주의 5부작' 예고편 갈무리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개선되지 못한 공영방송 거버넌스 정책, 김유열 EBS 사장의 불안정한 리더십 등을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공산전체주의' '이념세력과의 대결' 얘기 많이 했었다. 역사, 이념과 관련한 시도들을 할 우려가 있다"며 "'건국전쟁'에서 보았듯 우파에서 점점 문화전쟁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상황인 걸 고려하면 EBS 인터페이스를 통해 시도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2000년 방송법 체제의 공영방송 거버넌스는 실패한 것이다. 언제든 정권이 바뀌면 공영방송과 구성원들이 흔들리는 것"이라며 "앞서 TBS 출연금 지원 중단, TV수신료 분리징수, YTN 공기업 지분 매각 등이 있었다. 근본적으로 공영방송 거버넌스의 실패에서 오는 여파"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EBS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재원을 뒷받침하지 않고 있다. EBS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거버넌스와 재원을 마련해주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관심이 없고 오히려 공적재원을 도구화해 공영방송을 흔들고 있다"고 했다.

또 김 위원장은 김유열 EBS 사장의 리더십 문제를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김 사장은 현 정권과 불화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해보려 하는 것 같은데, 성과가 없으니 내부적으로 비판이 있는 것 같다"며 "김 사장이 단체협약 해지라는 독단적 형태로 노조와 대결을 벌이고 있는데, 외부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민주적 소통과 노사갈등 해소, 리더십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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