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배우 이선균 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와 무분별한 언론보도가 야기한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처벌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995년부터 2021년 3월까지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한 신고는 700여 건에 달했으나 기소는 전무했다. 

인권연대와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회는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선균 재발 방지 검·경 수사 중 피조사자 자살 원인 및 대책>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안성훈 한국형사법사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사 과정에서 별건 수사와 피의사실 공표, 언론의 선정적 보도 때문에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이 사실상 100여 명”이라고 밝혔다.

인권연대와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회는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선균 재발 방지 검·경 수사 중 피조사자 자살 원인 및 대책'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사진=미디어스)
인권연대와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회는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선균 재발 방지 검·경 수사 중 피조사자 자살 원인 및 대책'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사진=미디어스)

2014년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10년간 자살사건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피조사자 자살 사건의 범죄 유형은 횡령·배임이 23%로 가장 많았으며 뇌물범죄 21%, 성범죄 15%, 마약 10% 순이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수사 도중 자살하는 피조사자의 경우 공직자 및 사회지도층 인사, 유명 연예인 등 화이트칼라의 비율이 매우 높다”면서 “인용한 자료를 보면 10년 전 자료인데, 최신 자료가 없는 것은 법무부가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사건의 외부 노출 ▲수사기관 또는 언론 보도를 통한 피의사실 공표 ▲관련 당사자들의 해명과 방어 과정을 통한 사건의 스캔들화 등의 과정을 통해 피의조사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했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이 과정에서 언론 보도는 ▲범죄 사실 전달에 집중해 범죄 전체상 오도 ▲범죄자 또는 사건 주변인물 인권 침해 ▲사실확인 없는 기사로 당사자들에 대한 피해 야기 ▲형사사법기관의 시각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부정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피의조사자의 자살은 수사기관의 강압수사 및 정치적 목적을 가진 편파수사 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사회적 반향이 매우 크다”면서 “문제는 이러한 자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선임연구위원은 수사기관의 흘리는 피의사실정보와 SNS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의 경쟁적 피의사실 보도로 피의자의 인권침해가 확산되고 있으나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된 경우가 없다며 피의사실공표죄 적용의 현실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형법 제126조(피의사실공표)는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안성훈 한국형사법사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일 '이선균 재발 방지 검·경 수사 중 피조사자 자살 원인 및 대책' 긴급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사진=미디어스)
안성훈 한국형사법사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일 '이선균 재발 방지 검·경 수사 중 피조사자 자살 원인 및 대책' 긴급 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사진=미디어스)

토론자인 김희수 변호사는 이번 ‘이선균 씨 사망 사건’을 수사기관과 언론의 ‘사회적 타살’로 규정했다. 김희수 변호사는 이선균 씨 마약 수사 과정에서 언론보도를 통해 유출된 ▲관련자 진술 ▲이 씨의 마약 검사 과정 ▲통화 녹취·문자메시지 등을 거론하며 “수사 기밀자료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수사 참여자들이 기자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면 거의 불가능했을 보도로 피의사실공표죄를 자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로 인해 고인의 인격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침해당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사문화된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인권침해를 방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21년 3월까지 피의사실공표죄 신고가 764건이 접수됐으나 기소는 단 한 건도 되지 않았다. 김 변호사가 제안한 ‘이선균 재발 방지법’은 피의사실공표죄와는 별개로 수사기관이 직무수행 중 알게 된 ▲피의사실(내사사실 포함) ▲인적 사항 정보 ▲내사 범죄 의혹 정보 및 피의사실 관련 정보 ▲수사과정 중 취득한 인권침해 소지 수사 정보 등을 ‘유출할 때’ 형사처벌하는 내용이다. 

김 변호사는 “피의사실공표죄는 누군가에 대해 불특정 다수인한테 공개를 해야 성립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문화된 요인이 분명히 있다”며 “수사기관에서 관련 자료를 기자에게 몰래 던져주는 것은 둘이 입을 다물고 증거가 없으면 공표가 되지 않는다. 그 경우를 막기 위해 공표가 아닌 ‘유출 행위 자체’를 명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처벌 사례가 쌓이면, 이러한 인권 침해가 확 줄 것”이라면서 “수사기관이 피의자에게 이익 제공을 약속으로 허위진술을 요구할 때에 대한 처벌조항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규원 한겨레21 선임기자가 '이선균 재발 방지 검·경 수사 중 피조사자 자살 원인 및 대책' 긴급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김규원 한겨레21 선임기자가 '이선균 재발 방지 검·경 수사 중 피조사자 자살 원인 및 대책' 긴급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김규원 한겨레21일 선임기자는 기소 사례가 없는 이유에 대해 “처벌 받아야 하는 사람이 수사 주체인 검찰과 경찰이기 때문이고, 공범이라고 할 수 있는 언론도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선임기자는 피의사실공표는 당사자가 범죄자로 낙인찍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는 명백한 불법 행위라며 “당사자는 무죄를 받아도 기사가 아예 나지 않거나, 코딱지만 하게 난다. 수사관이나 검사는 수사와 기소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많고, 피의사실공표 사건은 여론 재판 성격을 띄어 법관의 판결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김 선임기자는 ‘이선균 마약 의혹 사건’ 보도행태에 대해 질타했다. 김 선임기자는 “현재 언론계에서는 수사 단계에서 기사를 쓰는 것에 대해서도 제한을 두고 있는데, 내사단계는 범죄 혐의가 있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이를 기사화하는 것은 신뢰하기 어려운 사실을 바탕으로 보도하는 것”이라며 “피내사자의 인권 침해 소지가 큰, 언론윤리상 매우 문제성이 있는 취재·보도”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에서 상업적 목적의 파파라치 보도가 너무 많았다”면서 “술집 실장과의 통화, 부동산 거래 내역 이런 것까지 다 보도됐는데, 정말 동료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남의 사생활을 이렇게 보도하는 것에 어떤 공공성이 있고, 어떤 종류의 알권리인가”라고 말했다. 김 선임기자는 “이것은 언론 행위가 아닌 파렴치한 행위”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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