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구약성서 창세기에 의하면 바벨탑 이전에는 모두 하나의 언어를 쓰고 있었다. 소통이 자유로운 시대였다. 제약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그 자체로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신이 우려할 정도였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창세기 11장 6절)   

동일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그들의 지혜와 파워를 동원해 도시를 세우기로 했다. 도시 안에 탑을 쌓고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날리고, 흩어지지 않고 모여 살기로 결정했고 실행에 옮겼다. 충분히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신은 인간의 계획을 용납할 수 없었다. 신은 이런 프로젝트를 인간의 교만함으로 이해했고 교만함의 근거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서 기인했다고 판단했다. 신은 인간의 무모함을 제어하기로 했고 회복 불가능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솔루션이라고 판단했고 바로 실행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사람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되자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고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바벨탑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바벨탑 이야기를 인간 교만에 대한 징벌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언어'에 관한 고대인들의 인식이다. 창세기가 쓰인 BC 1400년 경은 이집트 신왕국 시대였고 지중해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도시들이 활발하게 교류하던 시기였다. 도시와 문명은 다양하게 존재했지만 공용어는 없었고 문자도 통일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타 지역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전문 통역사의 도움을 빌려야만 했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대인들 역시 각기 다른 언어 사용으로 큰 불편을 겪었고 동일 언어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동일 언어는 결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처럼 선악을 구별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어 죽음을 얻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분열은 신처럼 되고 싶은 욕망에 대한 신의 불가역적인 형벌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 형벌이 조금씩 그리고 서서히 만기를 다해가고 있다. 다시 모두가 바벨탑 시대처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의사소통에는 장벽이 없는 시기가 다가왔다. 

사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통역기는 그동안 계속 있어왔다. 휴대용 통역 단말기도 인기가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통역 어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솔루션들이 어느 정도는 꽤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사용하기가 쉽지 않거나 통역에 걸리는 시차 때문에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하기에 망설임이 있었다. 이런 장애를 해결한 통역 솔루션이 최근에 나왔다. SK텔레콤이 출시한 실시간 통역 서비스 솔루션은 별도의 어플이 아니고 스마트폰만으로 서비스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거의 시차 없이 송수신자 두 사람의 대화를 통역해 준다. 

갤럭시 'AI 라이브 통역 콜' [삼성전자 제공]
갤럭시 'AI 라이브 통역 콜' [삼성전자 제공]

이 서비스는 발신자의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 서버로 보내면 AI가 텍스트를 번역하는 방식이다. 번역된 텍스트를 다시 음성으로 변환해 상대방에게 전해주는 방식이다. 서버를 한 차례 거치기는 하지만 통역되는 속도가 빨라서 전화기 너머 상대방에게 별다른 시차감을 주지 않는다, 물론 아직 개선되어야 할 사항들은 있다. 통역 가능한 언어가 제한적이고 적절한 단어 찾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AI 학습능력도 향상될 것이고 그만큼 더 정교한 통역도 기대할 수 있다.  곧 출시될 유사 솔루션들도 있어 경쟁을 통한 품질 향상도 기대된다. 

이 서비스가 보편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어느 정도 정착되면 언어는 더 이상 의사소통의 장애물로 남지 않게 된다. 특히 이 솔루션이 의미 있는 이유는 일반인들의 일상적 소통에 사용가능하다는 것이다. 문자는 어느 정도의 형식을 요구하지만 말은 더 자연스럽고 더 즉각적이다.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과 자기 언어로 일상적으로  대화하게 되면 타인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방인이 아니라 항상 소통이 가능한 이웃으로 존재하게 된다. 모두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바벨의 시대가 다시 오고 있다. 장애 없는 소통이 신에게는 교만의 상징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인간들에게는 기술이 가져온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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