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반성을 한다 혁신을 한다 하지만 뭘 어쩌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대통령과 여당의 태도는 혼란만 더해가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을 변화로 포장하려니 헛발질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요한 위원장이 이끄는 여당의 혁신위는 1호 안건으로 ‘대사면’을 제안하는 것을 검토했다고 한다. 이준석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김재원 최고위원 등이 그 대상이다. 몇 차례의 ‘망언’으로 징계 대상이 된 김재원 최고위원은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징계를 물러준다면 나쁠 게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본인이 밝힌 대로 선거에 출마할 것도 아닌 데다 징계 사실이 재론되는 것 자체가 득이 되는 일이 아니어서 반응이 좋지 않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조용히 넘어가도 상관없을 일 아니었겠는가.

가장 따져볼 게 많은 건 이준석 전 대표인데, 징계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대사면’을 수용하는 건 쉽지 않다. 징계는 정당하지만 대승적으로 용서를 해주겠다는 건지 징계가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겠다는 건지도 알 수 없고, ‘대사면’을 당헌 당규상 어떤 절차에 따라 하겠다는 건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치공학으로 봐도 이준석 전 대표 입장에서 보면 ‘대사면’은 독이 들어있을지 확인할 수 없는 술잔과 같다. 이준석 전 대표 ‘축출’은 본질적으로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진행됐다. ‘체리 따봉’ 문자와 근래 공개된 입당 전 통화 녹취가 그 증거다. 최근 분위기에 맞춰 여당이 이준석 전 대표와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더라도 대통령의 입장이 변했다는 게 확인되지 않았다면 이준석 전 대표는 공천 과정에서 심지어는 본선거에 들어간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그때 가서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해봐야 소용 없는 것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면담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면담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최근 기류를 보면 대통령의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입장은 변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대로에 가까운 걸로 보인다. 친윤계 인사들이 ‘이준석-유승민 신당’을 기정사실화 하고 ‘배신자’ 프레임을 만드는 데 골몰하거나 차라리 공천을 주고 알아서 낙선하게 만드는 게 낫다는 식의 얘기를 언론에 흘리는 경우를 보면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대사면’은 수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건, 그러면 혁신위는 수용될 가능성이 없는 얘기를 지금 왜 하고 있느냐는 거다. 거부당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악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그냥 “어찌됐건 다 같이 술 한 잔 하고 풀고 시작하자”는 식의 접근이었다면 정치적 무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둘 중 어느 경우든 혁신의 미래는 밝지 않다.

‘영남 스타 의원 수도권 출마’ 제안도 비슷하다. 혁신위원장 개인 차원의 생각이라는 전제가 붙은 얘기이긴 하지만 의도에 의문이 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첫째, ‘영남 스타 의원’이란 누구를 말하나? 인요한 위원장은 김기현 대표와 주호영 의원을 얘기했는데, 그마저도 그게 맞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가 애매하다. 둘째, 그들이 수도권 지역구에 나갈 경우 승산이 있는가? 아니면 패배하더라도 수도권 선거에 도움이 되는가? ‘스타’에게 기대할 법한 바람이 일어나는가? 그런 기대를 갖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셋째, 이들이 비운 지역구에는 누가 출마하는가? ‘윤심 전당대회’의 목적이 ‘용산 낙하산’ 공천을 위한 것이라는 평을 다시 떠올려보자. 오히려 이게 핵심이고 목적인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만일 혁신위의 목적이 ‘용산 낙하산’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돼버린다면, 그게 혁신으로 인식될 수 있겠는가?

혁신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지금까지 뭘 잘못했는지에 대한 평가와 합의부터 먼저 이뤄져야 한다. 해법은 그에 근거해서 나와야 한다. 그래야 맥락을 잡을 수 있다. 혁신위는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패배를 계기로 구성되었다. 뭘 잘못했는지에 대한 교훈은 명확하다. 여당과 용산의 관계를 바로잡을 필요성에 대한 평가가 우선이라는 거다.

그런데 혁신위의 인적 구성을 보면 이런 평가부터가 제대로 이뤄질지부터 의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평가를 삼가겠다. 그러나 유일한 현역 의원인 박성중 의원의 경우 비공개 최고위에서 자기들끼리도 문제가 있는 인선이라고 했다는 것 아닌가. 오죽하면 27일에 중앙일보가 사설에서 “매사 강경 일변도여서 혁신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물까지 등장했다. 오만과 독선이라는 여당의 환부를 제대로 도려낼 수 있을지 의문인 인선이다”라고 했을 정도이다.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 예배에서 기도하고 있다. 이날 추도예배에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추경호 부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도 함께 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 예배에서 기도하고 있다. 이날 추도예배에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추경호 부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도 함께 했다.(연합뉴스) 

대통령이 ‘탑 다운’ 방식으로 셀프 혁신이라도 하고 있다면 또 모르겠다. ‘이념보다는 민생’이라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던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하던대로 하기로 다시 마음을 먹은 듯한 모습이다. 박정희-박근혜라는 키워드 자체가 ‘이념 드라이브’나 별 차이가 없는데 집착하는 모습도 그렇고, ‘야당이 주도하는 정치집회’라는 이유로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식을 결국 불참한 것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경호 문제를 핑계로 댔다면 이해라도 해보려고 했을 거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는 다른 일정이라도 기획을 했다면 긍정적인 대목을 찾으려고 노력이라고 하려고 했을 거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기가 어릴 적에 다니던 교회에 가서 개인적 감상을 얘기하는 걸로 이 모든 일을 대신했다. 울산 사람으로 알려져 있고 서울 성북구와는 별 관계가 없는 여당 대표는 대통령 가는 자리에 이유도 없이 그냥 따라갔다.

그나마 혁신위원장은 개인자격으로 추도식에 가면서 “계란을 맞을 각오”를 말했다. 이런 말은 세브란스 병원 교수 출신 외부 인사가 아니라 지도자가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뭔가? 이러면서 유권자에 혁신과 변화를 믿으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일 것이다. 차라리 혁신이든 변화든 말이라도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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